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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시대, '꼴값' 디자인
금값 시대, '꼴값' 디자인
  • 원명진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 승인 2021.05.1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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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_ 원명진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반짝거림이 루비나 사파이어 보석과 다르고, 농밀하면서도 치밀한 밀도는 가슴을 멎게 하면서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노란색을 띠는 금속. 인류 문명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금속으로 자리 잡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환금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금속. 물질적인 특성도 우수하여 부식되지 않은 성질로 변질이 없고, 전도성과 연성이 뛰어나 얇고 넓게 펴서 사용할 수 있어 활용성이 매우 높은 금속. 이처럼 영속성, 희소성 그리고 활용 가능한 확장성으로 금속계의 제왕인 금속.

황금은 예로부터 태양을 상징했다. 태양처럼 높고 빛나는 존재.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도 황금 투구를 쓰고 있어 강렬한 신성함을 뽐낸다. 그래서 연금술에서도 금은 태양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 태양의 상징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동양에서도 금관은 곧 왕의 상징이었다. 고귀한 예술품의 재료로 각광 받아 국보급 유물에 많은 금이 사용되었다. 한국의 금관과 불상. 일본의 금각사. 인도의 암리차르 황금 사원. 미얀마의 불교사원 쉐다곤 파고다 등 황금빛은 태양 빛을 받아 눈이 멀 정도다. 

매년 김장철이면 금배추, 금고추로 주부들의 마음은 쇠덩어리처럼 무겁고, 최근 대파값에 놀란 주부들이 직접 파를 심어 먹기로 작정하면서 ‘파테크’라는 말까지 유행되는 시대다. 금가루를 뿌린 참치회 값은 두 배, 금장 두른 아파트 로고는 일반 빌라 값의 10배, 금테 두른 의원님 뱃지 값은 셈하기조차 힘든 무한대. 그야말로 몸에 금테를 두르기만 하면 태양보다 월등한 가치가 되는 동시에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정말 매장(埋藏)된 금보다 매장(埋葬)되어야 할 하찮은 가치들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시대다. 

시각장애인에게 스마트폰은 한낱 금속 덩어리

스마트폰이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매일 통화하고 음악을 들으며 문자를 주고받고, 비즈니스도 척척 수행하는 신통방통한 금속 물건. IT 기술은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의 일상도 더욱 즐겁고 다채로워진다. 당연히 시각장애인에게도 스마트폰이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에서 스마트폰의 접근성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저 통화 정도만 할 뿐, 즐겁고 다채로운 일상이 불가능하여 전혀 스마트 하지 않은 한낱 금속 덩어리에 불과하다.

필자는 건융아이비씨(KunYoong IBC, 백남칠 대표)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혁신적인 점자 블루투스 키보드, ‘T-dot(이하 ’티닷‘)’ 개발에 참여했다. 티닷은 5가지 혁신적인 장점이 있다. 첫째, 기존의 스마트폰에서 불편했던 문자 입력을 점자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용하여 불편함을 완전히 해결했다. 둘째, 제품 중앙에 위치한 조그키(jog key, 5방향)를 이용해 네비게이팅의 기능을 강화하여 앱의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셋째, 인체공학적 삼각대 폴딩구조 디자인으로 타이핑이 편리하고 목에 걸고 이동 중에도 문자 입력이 가능하다. 넷째, 무게는 기존 단말기의 10%인 59g으로 매우 가볍다. 다섯째, 가격은 기존의 단말기보다 10배나 싸서 경제적인 부담을 대폭 줄였다. 이제 시각장애인들은 티닷으로 터치 화면에 대한 두려움 없이, 보다 간편하게 IT 기기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되어 다양한 정보의 고립에서 벗어나 원활하고 편리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일상생활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노력의 성과로 티닷은 ‘2021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프로덕트 부문 ‘골드(Gold)’를 수상했다. 10,000여 아이디어 중 기능성(Function), 차별성(Differentiation), 영향력(Impact)에서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마디로 ‘꼴값’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꼴은 형상(shape)을 의미한다. 값은 가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기능이나 쓸모를 말한다. 미국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1856~1924)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철학으로 미국의 마천루를 탄생시켰다. 불필요한 요소를 없애고, 목적에 따른 합리적인 방법과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적용한 원칙을 지킨 디자인. 즉 멋진 꼴값을 완성했다. 이는 기능적 형태가 가장 아름답다는 ‘기능주의’의 가치다. 

디자인의 기본 전제는 효용가치에 있다. 더불어 디자인의 근본문제는 인간의 진정한 요구에 따른 디자인의 질에 따라 결정된다. 개인적인 것을 넘어 사회적인 것. 티닷에게 ‘골드’ 수상을 안겨준 의미는 바로 꼴(형상)과 값(쓸모)에 있을 것이다. 동료 민자경 세종대 교수의 그래픽 손길이 더해져 농익은 황금빛이 되었다. 앞으로 진정한 ‘꼴값‘이 제대로 대접받는 시대를 기대한다. 이미 해외에서 금값이 된 미나리처럼.

원명진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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