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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남미 좌파운동의 혁신 키워드… 민중∙좌파∙생태
[글로컬 오디세이] 남미 좌파운동의 혁신 키워드… 민중∙좌파∙생태
  • 김은중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 승인 2021.05.12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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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973년 칠레 군부 쿠데타'와 살바도르 아옌데 당시 대통령 사망 47주기였던 지난해 9월 11일 거리로 나선 칠레 시민.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탄압 받아온 칠레의 소수민족 마푸체족의 깃발을 두르고 있다. 사진=AP/연합
'1973년 칠레 군부 쿠데타'와 살바도르 아옌데 당시 대통령 사망 47주기였던 지난해 9월 11일 거리로 나선 칠레 시민.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탄압 받아온 칠레의 소수민족 마푸체족의 깃발을 두르고 있다. 사진=AP/연합

 

냉전이 종식되고 ‘역사의 종언’이 선포되었던 1990년대 초반 이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전례 없는 정치사회적 변화로 소용돌이쳤고 ‘분홍빛 조류(pink tide)’가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그러나 21세기 처음 십 년이 지나면서 분홍빛 조류는 밀려올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퇴조했다.

대륙의 정치적 변화의 전위에 섰던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사후 친차베스 진영과 반차베스 진영으로 분열되어 극심한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고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가 하면, “브라질 날아오르다”라는 제목으로 2009년 11월호 <이코노미스트>의 표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브라질 경제는 불과 4년 뒤 “브라질은 추락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또 다시 <이코노미스트> 표지의 불명예스러운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아르헨티나 대선을 시작으로 칠레, 브라질, 파라과이에서 보수 우파 정권이 재집권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지형은 급격히 우경화되었다.

 

비판적 지식인 저물고, 인민이 주체로

 

저명한 좌파 지식인 에미르 사데르(Emir Sader)는 “라틴아메리카 비판적 사유의 위기”라는 기고문에서 진보 정권에 대한 우파의 반격이 재개되는 상황에서 비판적 인텔리겐차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진보 정권들이 직면하고 있는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비판적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촉구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비판적 사유와 사회적 투쟁을 결합시키고,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없애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위기와 더불어 전 지구적인 공통 의제로 떠오른 사회적 불평등의 폭발적인 증가, 기후변화, 이로 인한 대규모 난민 발생,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좌파운동이 고려해야 할 질문들이 있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좌파운동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좌파운동을 진보적 혹은 좌파적 사유로 국한시킬 수 있는가? 사데르가 언급한 위기는 진보 정권의 위기인가, 좌파의 위기인가? 진보적 사유 혹은 좌파적 사유는 공동체들, 운동들 그리고 하위주체 인민(people)의 비판적 사유를 모두 포괄하는가? 더 나아가, 사회적 변화에서 좌파운동의 역할은 무엇인가?

전통적 좌파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바라보면 라틴아메리카 좌파운동은 위기에 처해 있지 않으며, 전통적 좌파의 사유를 넘어서서 사회적이고 인식론적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확장된 사회적∙인식론적 공간에는 좌파의 사유와 더불어 지난 20-30년 동안 비판적 사유의 원천으로 등장한 두 개의 중요한 흐름이 포함되는데, 하나의 흐름은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사유이고, 또 다른 흐름은 더 이상 인간 행동의 환경 또는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 생활에 관여하기 시작한 ‘어머니 지구(Mother Earth)’에 대한 사유이다.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사유는 사파티스타 투쟁으로부터 구체화된 이후 멕시코 남부로부터 콜롬비아 남서부까지, 그리고 거기에서 대륙 남쪽의 마푸체 투쟁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경험을 포괄하는 자치주의 운동이다. 또한 어머니 지구에 대한 사유는 환경운동이나 생태학 분야로 국한되지 않고 ‘무한한 우주로서의 자연’에서 ‘과정으로서의 자연’으로의 사유의 전환이다.

 

자치주의와 생태주의가 이끄는 좌파운동

 

요컨대, 199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좌파운동에는 좌파적 사유,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제시하는 자치주의, 지구적 사유라는 세 갈래의 큰 흐름이 합류하고 있다. 세 갈래의 흐름은 분리된 개별적 영역이 아니라 때로는 겹쳐지고, 때로는 되먹이고(feedback), 때로는 갈등하면서 공진화(coevolution)한다. 대륙 전체에 걸친 원주민들의 회의, 도시와 농촌 운동의 연대, 저항 공동체 의회, 청년과 여성, 농민과 환경운동가로 구성된 단체 등 다양한 범주의 공동체와 사회운동이 정치적∙이론적인 차원에서 좌파운동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운동은 근대성 비판과 탈식민 이론을 중심으로 정치생태학, 사회적 연대 경제, 공동체 경제, 공유[재](the commons) 문제 등을 포함하는 생태학과 대안 경제를 위한 논쟁에 참여하고 있으며, 자치를 핵심 원리로 표방하고, 포스트-발전, 탈채굴주의, 부엔 비비르(Buen Vivir), 상호문화성, 문명의 이행 같은 다양한 의제들을 공론화하고 있다.

 

 

김은중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멕시코국립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성과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전환-변화와 갈등 상, 하』(공저), 『포퓰리즘과 민주주의』(공저) 등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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