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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엘리트체육, 한국대학 교육의 직무유기
대학엘리트체육, 한국대학 교육의 직무유기
  • 정재용 KBS 스포츠취재 기자
  • 승인 2004.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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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대학체육을 말한다 1

▲정재용 KBS 기자 ©

군사 정부 시절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체육 특기자 제도는 한국 교육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한국 현대 스포츠는 학생 운동 선수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희생시킨 대가로 지금까지 성장해 온 것이다. 최고 교육 기관인 대학 역시 30 여 년 이상 학생 운동 선수들의 희생을 방치해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한국 사회의 안정성을 국제적으로 홍보하고 내부적으론 국민들의 단결심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스포츠 육성 정책을 펼쳤다. △국민 체육 진흥법(1962년) 제정 △태릉 선수촌 건설(1966년) △대한 체육회 설립(1968년) 등 엘리트 체육 육성을 위한 토대를 세운 뒤 1972년 체육 특기자 제도를 시행했다.

체육 특기자 제도의 핵심은 학업 성적과 관계없이 운동 능력에 따라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는 특혜를 주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병리적인 교육열을 활용해 당시 경제 여건으로는 불가능했던 전문 운동 선수 대량 양산 시스템을 완성한 것이다. 이후 대한민국은 1976년 양정모의 첫 첩꽁?금메달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기초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해야 했던 수많은 체육 특기자들의 어두운 삶이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대학 졸업장은 있지만 실제 평균 학력은 중학교 졸업 수준도 되지 않는 체육 특기자들은 졸업 또는 은퇴 이후 사회 적응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다.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해 연금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체육 지도자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여건 역시 제한적이며 열악한 현실이다. 대부분의 체육 특기자들은 사회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체육 특기자 제도는 심각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서울 올림픽 성공에 매달린 80년대 전두환 군사 정부 아래서 오히려 더욱 철저한 지원을 받으며 한국 스포츠계에 확고한 뿌리를 내린다.

필자는 지난 97년 세계 대학생들의 축제인 시칠리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우리 대학 대표 선수들을 취재하면서, 대학 스포츠의 현실은 한국 교육계의 직무 유기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선수촌에서 외국 학생들을 만나도 말 한 마디 나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문화행사나 학술 행사에도 참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대학생 대표들의 현실이다. 그저 코치들의 강압적인 지시대로만 통제 받으며 움직이는 우리 대학생들을 보면서 한국 사회 미래 지도자들의 모습대신 설명할 수 없는 연민을 느껴야 했다.

문제는 한국 교육계의 문제의식 부족이다.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적 성장은 체육 특기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학에 학생 선발 재량권이 주어지면서 체육 특기자 제도 개선을 위한 주변 여건은 더욱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여전히 체육 특기자 제도를 체육계의 문제로만 방치하고 있다.

체육특기자 교육, 대학이 앞장서서 반대

이는 지난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체육 특기자 대입 최저 학력 제도 도입을 추진했을 때 드러난 대학의 반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 대학에선 대학계 내부의 합리적인 절충안을 찾기 이전에 현실적으로 최저학력제도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현실론을 앞세워 사실상 이 제도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결국 각 대학 자율로 최저학력 기준을 정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제도는 사실상 사문화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우수한 선수를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의 변별력도 없는 어처구니없이 낮은 점수를 최저학력 기준으로 선택함으로써 교육적 의무와 자존심을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대학은 체육 특기자 제도를 교육적인 차원에서 고민하기 이전에, 승패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현장 지도자들의 의견만을 수용한 것이다. 지난 30 여 년 이상 정상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군사정부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체육 특기자들을 이제는 교육계에서 또 다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체육 특기자 제도 개선, 대학 엘리트 체육 정상화 나아가서 한국 학교 체육 정상화의 열쇠는 대학이 쥐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 운동 선수들이 입학부터 졸업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하고 일정 기간을 통해 점진적으로 시행하도록 유도한다면 중·고등학교에서는 따라올 수밖에 없다.

대학 교육계 내부의 문제 의식과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다. 필자는 지난 5월 K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학교체육을 살리자’ 제작을 위해 미국 교육계 지도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체육 문제에 대한 대학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은 대학 총장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학스포츠 평의회(NCAA)에서 대학 스포츠에 선수로 참여할 수 있는 최저학력 기준을 설정해 제시하고(4.0 만점 기준에 2.0이상) 기준 점수에 미달한 선수는 시합에 참여할 수 없도록 감독한다. 고등학교 스포츠를 총괄하는 NFHS(Nation Federation of State High School Association)에서는 대학 기준에 상응하는 고교 최저 학력 기준을 설정하고 각 고등학교에서 철저히 시행하도록 지도한다.

기준 성적에 미달하는 학생은 원천적으로 대학 진학을 물론 스포츠 경기 참가가 불가능하도록 철저히 관리함으로써 체육은 결코 교육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켜나간다. 한 예로 조지아 주립 대학에서는 농구 선수들에게 학점을 주기 위해서 상식 이하의 시험 문제를 제출했다가 적발돼 코치, 감독의 해임은 물론 결국 총장까지 교체되고 수 년 간 NCAA 토너먼트 참가를 제한 받는 등 엄청난 파문을 겪기도 했다.

대학체육이 중고교 교육까지 망쳐

이른 바 3월의 광란(MARCH MADNESS)으로 알려진 미국 대학농구 NCAA 토너먼트는 한국 스포츠 팬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미국 최고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이다. 지난 시즌 이 토너먼트의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코네티컷 대학의 에메카 오카포는 3년만에 대학을 졸업한 수재다. 오카포는 NBA 전체 2순위로 지명됐고 미국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정됐다. 대학 엘리트 체육의 교육적 기능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한국 대학 교육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험 시간에 들어와서 딱 한 줄 ‘운동부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써 놓고 죄인처럼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우리 대학 운동선수들의 뒷모습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중, 고등학교에서 정상적인 기초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 4년 간 운동만 강요받다 의미 없는 졸업장 하나 달랑 들고 사회에 방치되는 체육 특기자들, 이들을 외면하는 슬픈 현실은 명백한 한국 대학의 직무 유기다.

오늘 이 순간도 중·고등학교에서 이른 바 선수로 활동하는 체육 특기자들 중 80퍼센트 가량은 오로지 대학 진학을 위해 운동을 선택하고 있다. 2001년 기준으로 중·고·대학에서 운동 선수로 분류된 학생들의 숫자는 6만8천2백46 명이다. 한국 대학 교육 지도자들은 이들을 또다시 기초 학력조차 갖추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시킬 것인지, 건강한 몸과 지성, 사회적 덕성을 고루 갖춘 바람직한 사회인으로 교육시킬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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