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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의 유산
도연명의 유산
  • 교수신문
  • 승인 2021.04.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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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웨이 지음 | 조성환 옮김 | 파람북 | 616쪽

16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두 사람의 고고한 영혼의 대화

이 책에서 저자는 도연명에게 덧씌워진 미사여구를 과감하게 벗겨버린다. 박제되고 밀랍 인형 속에 갇힌 도연명을 밖으로 탈출시켜 민낯의 도연명을 목도하게 한다. 따라서 독자가 책에서 만나는 도연명은 온실 속에서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국화’가 아니라, 사시사철 들판에서 온갖 풍상을 겪고 버티면서 자란 들국화를 떠올리게 한다.
책에서 저자는 동서를 넘나들며 고금의 무수한 명사들을 끌어들인다. 공자를 비롯해 노자와 장자, 굴원, 왕유, 소동파, 왕국유, 루쉰, 후스, 주쯔칭,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워즈워스, 번스, 몽테뉴, 루소, 쇼펜하우어, 그리고 물리학자 호킹 등 무려 32명을 동원하여 도연명 작품과 비교 분석하고 이들의 공통점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모두 7강으로 구성되어 있고 저자가 뽑은 키워드는 무려 127개 항목에 달한다. 번득이는 작가의 영감, 상상력과 추리력을 발휘하여 다양하고도 신선한 도연명 독법(讀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키워드는 하나의 잣대로 꿰어진 것이 아니기에 독자들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더라도 무방하다.

위진 시대 ‘정글의 법칙’과 도연명의 ‘버티기’

루쉰은 “내 잡문에 쓴 것은 언제나 코이고 입이며 털이다. 하지만 그것을 합쳐 보면 거의 하나의 형상인 전체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연명을 묘사한 코와 입, 털을 하나하나 떼어내어 따로따로 볼 것이 아니라, 루쉰의 말대로 저자가 뽑은 키워드를 하나로 합쳐서 도연명을 바라보면 그의 진면목을 확연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뽑은 키워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정글의 법칙’과 ‘버티기’이다. 저자는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를 무시무시한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시대로 간주한다. 따라서 적자생존의 환경에서 살아남자면 육체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버텨내야 한다. ‘정글의 법칙’과 ‘버티기’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도 적용된다. 현재 전 세계는 코로나 전염병과 싸우고 있지 않은가.

저자가 보기에 도연명은 잔혹한 ‘위진 시대 정글’의 가장자리에 살았던 서생이고, 완강한 몸부림을 통해 최종적으로 ‘버티고’ 자신의 존엄을 지켜낸 사람이다. 무엇이 풍격이고 무엇이 존엄인지 시인은 영혼으로 대답하였으며, 이는 후인에게 남겨준 최대의 유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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