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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혼란의 시대
대혼란의 시대
  • 교수신문
  • 승인 2021.04.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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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 고시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56쪽

20주년을 맞아 출판할 환경 도서를 준비하면서 생각한 것은 ‘환경과 불평등의 관계’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획한 책이 2020년 7월에 펴낸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와 이 책 『대혼란의 시대』다. 전자는 ‘환경인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역작이다. 롭 닉슨은 이 책에서 “글로벌 사우스에서 살아가는 빈자의 환경주의에 천착한 일군의 작가/활동가를 조명하고, 그들이 주목한 느린 폭력의 사례들을 제시한다. 더불어 초국가적 관점에서 환경 정의 문헌을 검토해 환경 저술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적·지역적 접근법의 한계를 이해하고자 한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를 비서구적 관점에서 담아낸 독보적인 『대혼란의 시대』도 환경 불평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와 일치한다. 『대혼란의 시대』에서 저자는 “우리는 정말로 ‘대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묻는다. 고시는 미래 세대는 당연히 그렇게 여길 거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시대의 문화가 지구 온난화에 맞서는 데 실패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기후변화의 규모와 위력을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을 문학·역사·정치 차원에서 탐구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볼 수 있는 기후 사건들은 전례가 없는 특성 탓에 우리의 사고 체계나 상상 형식과 유별나다 할 정도로 불화한다. 이는 특히 진지한 문학 소설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폭풍우나 기이한 토네이도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주류 문학으로서 소설이 다루기에는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인 것이다. 따라서 그런 기후 사건은 저절로 판타지 소설, 공상 과학 소설 혹은 기후 소설(cli-fi) 같은 장르 소설의 몫으로 넘어간다. 이처럼 1부는 진지한 문학이 기후변화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현상을 조명한다. 그런데 일반 독자에게 호소하기에는 내용이 다소 문학 이론적이다. 하지만 2부와 3부에서 논의를 역사와 정치 분야로 확장하면서 한층 더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는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를 비서구적 관점에서 담아낸 독보적인 책.

인도 출신의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가 쓴 이 책은 “기후변화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부제가 붙어 있다. 이는 이 책에 실로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이 책을 3부, 즉 문학·역사·정치로 나누었는데, 이 세 가지 문화 양식이 하나같이 기후변화를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그것이 야기하는 위험을 보지 못 하도록 가로막는 가정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후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아직껏 다른 시대를 위해 주조된 녹슨 무기로 무장한 인문학과 인문과학을 향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위기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안을 고민하도록 촉구한다. 그 해법은 세계적 차원의 집단적 실천과 인간 존재를 새롭게 그리는 우리의 상상력 복원에 있다고 본다.

책의 전체적인 개관과 함께 이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를 간단히 밝히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올 5월이면 ‘에코리브르’가 탄생한 지 20주년을 맞는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분야를 넓히고 때로 ‘생태/환경’ 도서 출판을 줄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출판사 이름에 걸맞게 ‘생태/환경’ 도서를 꾸준히 펴내고자 노력한 시간들이었다.

역사에 관한 글쓰기에서도 기후 위기는 이따금 지나치게 단순화되곤 한다. 2부에서 저자는 탄소 경제의 세계사는 더러 직관에 반할뿐더러 모순적인 수많은 요소들과 뒤엉킨 복잡한 서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비서구인의 관점에서 화석 연료와 세계사의 관계를 조망한 점, 아시아가 기후변화의 주인공이자 피해자이면서 방조자이기도 하다고 밝힌 점 등에서 2부의 논의는 단연 두드러진다.
저자는 3부에서 문학과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인 정치 역시 집단적 실천의 장이라기보다 개인적인 도덕적 심판의 장으로 달라졌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소설도 정치도 개인의 도덕적 모험으로만 시계를 좁히면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의 규모는 더없이 방대하므로 집단적 결정을 내리고 그를 행동화하지 않으면 개인의 선택은 거의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개별화한 상상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소설이라는 프로젝트가 굳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생하는 식이 될 필요는 없다. 픽션 - 소설뿐 아니라 서사시와 신화까지 포괄한다 - 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정법으로 세상에 접근하는 것, 세상을 마치 그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인 양(as if) 그려내는 노력이다. 다시 말해, 대체할 수 없는 픽션의 빼어난 능력은 바로 여러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능력이다. 다른 형태의 인간 생존을 상상해보는 것이야말로 정확히 기후 위기가 제기하는 과제다. 기후 위기는 세계를 오직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끝내 집단적 자멸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대신 세계가 어떻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다른 모든 패를 능가하는 으뜸 패”임에도 대중과 우리 지도자들은 대체로 그 이슈를 없는 것인 양 취급한다. 저자는 우리가 취하는 ‘부인론적’이고 ‘혼란한’ 마음가짐의 원인을 탐구하며 산업화한 국가들이 한사코 인정하길 거부하는 진실에 대해 들려준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모두의 책임으로 누구도 그에 따른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기후 위기가 서구에서 탄소 경제를 발달시킨 방식 탓에 초래된 거야 어김없는 사실이지만, 그 문제가 수많은 상이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후 위기를 우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타자(他者)’가 야기한 문제라고 여길 수 없다. ……인류가 발생시킨 기후변화는 종으로서 인간 존재 자체가 빚어낸 의도치 않은 결과다. 상이한 인간 집단들이 더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후변화에 기여했음에도, 지구 온난화는 궁극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모든 인간 행동이 이루어낸 총체적 결과물이다. 지구에서 살다 간 모든 이는 인간이 이 행성의 지배 종이 되도록 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과거에 존재했든 지금 존재하든 오늘날의 기후변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 책은 서구의 기후변화 논의에서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신선한 내용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치여 제국 및 제국주의가 기후변화에 주는 함의를 도외시한 점, 석탄이 석유보다 노동자들의 연대에 기여함으로써 그들의 정치의식을 한껏 드높였다는 점 등이 그러한 예다. 고시는 또한 역사적으로 인도와 중국의 경제 발전이 억제됨으로써 의도치는 않았지만 전 세계의 탄소 배출량 증가세가 - 만약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비해 - 한층 늦춰진 현상을 상기시킨다.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아시아(특히 남아시아)에 주어진 숙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2부에서 “그 어떤 기후 전략도 아시아에서 효과를 보고 수많은 아시아인이 그것을 채택하지 않는 한 전 세계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전 지구적 위기를 서구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는 측면에서 비서구적 관점을 담아낸 이 책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소중하고도 독보적인 저서다.
저자의 결론과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문단에서 전하는 메시지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실천을 위한 투쟁은 분명 지난하고 벅찰 것이며, 그 투쟁을 통해 무엇을 성취하든 기후변화로 인한 몇몇 심각하고 파괴적인 결과는 돌이키기에 이미 너무 늦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투쟁을 통해 이전 세대보다 더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세대가 출현하리라고 믿고 싶다. 또한 그들이 지금 인류가 빠져 있는 ‘대혼란’을 뛰어넘으리라고, 다른 비인간 존재들과의 유대 관계를 재발견하게 되리라고, 마지막으로 이처럼 새롭고도 유구한 전망을 달라진 예술과 문학 속에 담아내리라고 믿고 싶다.”

이 책은 그런 미래 세대의 출현을 앞당기기 위한 저자 나름의 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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