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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살만한 곳인가’ 12편의 소설의 던지는 질문
‘이 세계는 살만한 곳인가’ 12편의 소설의 던지는 질문
  • 박강수
  • 승인 2021.04.30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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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__『2021 올해의 문제소설』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392쪽|푸른사상

 

김숨∙백수린∙서장원∙김지연∙서이제…
한국문학의 ‘문제적’ 생태계 들여다보기

 

책머리에서 ‘문제적인’ 작품은 이렇게 정의된다. 첫째, 다양한 문학적 전범이 공존하는 문학 생태계를 보여주는 작품. 둘째, 우리 시대의 현실을 비판적이고 전복적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 문제의식을 산출하는 작품. 요컨대 거칠게 요약하면 문학의 다양성과 시사성에 기여하는 작품군이다. 선정위원들은 이러한 ‘건강한 시선’에서 비롯된 문제의식만이 ‘올바른 문학’을 판단하는 준거가 돼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을 재고”하게 해준다고 썼다. ‘건강하고 올바른’ 예술이라는 형용은 탐탁지 않지만 문학에 대한 가장 깊은 사유는 가장 ‘우수한’ 작품보다 가장 ‘문제적인’ 작품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명제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록된 작품은 12편이다. 12명의 작가가 묘파하는 12개의 세계 속에서 다채로운 삶의 단면이 어우러진다. 조선소의 계약직 노동자들은 철가루를 털고 땀냄새를 풍기며 다급하게 점심식사를 해치우고(김숨, 「철의 사랑」), 초광속 여행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머나먼 외계 행성에서는 누군가 지구를 향해 자신들 문명의 충격적 비밀을 고백하는 비밀편지를 띄운다(김초엽, 「오래된 협약」). 돌과 대화하는 남자와 종종 날아서 달에 가곤 한다는 남자가 함께 소풍을 다녀오고(이유리, 「치즈 달과 비스코티」), 대기업 합숙면접장에서 마주한 경쟁자의 미모에 정신을 빼앗긴 여성 청년 구직자의 복잡한 심사가 생중계되기도 한다(장류진, 「펀펀 페스티벌」). 지난해 한국문학의 발자국이 찍힌 영토는 넓고 다층적이다.

 

“그들에겐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니까”

 

다만 이 다양성을 얼마나 ‘문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갈릴 수밖에 없겠다. 특정한 관계(가족 구성원 및 친구와 화해), 특정한 화자의 경험(2030 청년층의 대학-취업-아르바이트-백수 생활)이 여러 작품에서 어조와 정조를 바꿔가며 반복되고 있으며 이 반복은 한국사회의 ‘보편적’ 문제의식을 상기시키며 공감대를 이룰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일견 따분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어 보인다. 어떤 트렌드의 첨단에 서 있는 쪽을 문제적으로 볼지, 그런 흐름과 동떨어져 있는 쪽을 문제적으로 볼지는 주관의 영역이고 이는 머리말의 정의가 무색하게도 얼마간 직관적인 느낌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는 ‘문제적’이라는 표현의 숙명이기도 할 것이다. 20년 넘게 이어온 ‘올해의 문제소설’ 앤솔로지는 ‘문제적’을 규정하는 문제와 씨름하는 속에서만 이어갈 수 있을 듯 하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현실의 규범에 억압된 충동(욕망)이 ‘그럴싸한’ 우회로를 통해 삐쳐 나오는 것을 이야기라고 봤다(「소설은 왜 읽는가」, 『장르의 이론』, 문학과지성사, 1987). 작가는 실제 세계 속에서 억눌린 욕망을 발견하거나 자각하고 이에 근거해 ‘변형된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소설의 세계이고 동시에 실제 세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다. 작가가 설계한 욕망의 우회로를 역순으로 풀어 소설의 세계에서 실제 세계를 읽어내는 일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에 같은 글에서 김현은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세계인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여기에 호응하는 문장을 첫 번째 수록작인 김숨의 「철의 사랑」에서 발췌한다. 조선소에서 거대한 배가 만들어지고 그런 배를 만들다 사람이 죽기도 한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모를 수 있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에겐 조선소가 전부지만, 그들에겐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니까.”(46쪽)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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