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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또 하나의 헌법 개정운동
일본, 또 하나의 헌법 개정운동
  • 이은경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 승인 2021.04.28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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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서울대 일본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현 나루히토 천황의 조카인 마코 공주(오른쪽)와 그의 약혼자 코무로 케이. 사진=AP/연합
현 나루히토 천황의 조카인 마코 공주(오른쪽)와 그의 약혼자 코무로 케이. 사진=AP/연합

 

몇 년 전 일본 황실의 마코 공주(현 천황의 조카)의 결혼 상대가 발표된 이후, 금전문제 등 깔끔하지 않은 남자 측의 가정사로 여론이 들끓고 그로 인해 결혼이 기약 없이 미뤄지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한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지난 연말 줄곧 딸의 결혼에 부정적이었던 그의 부친이 “결혼을 허락할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다시 한 번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는 “헌법에도 결혼은 양성의 합의에만 기초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딸의 결혼을 허락할 뜻을 내비치면서도, “결혼과 혼약은 다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납득하고 기뻐해주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혼약에 해당하는 의식(納采)은 할 수 없다”는 식의 알쏭달쏭한 말을 덧붙였다. 흥미로운 점은, 하필 그가 내켜하지 않는 딸의 결혼과 관련해서 최근 일본의 보수우익 세력이 끊임없이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일본의 헌법 제24조(이하 24조)를 언급한 사실이다.

 

자민당과 일본회의가 함께 꾸는 가족주의의 꿈

 

일본의 보수우익 세력이 끊임없이 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뉴스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평화주의를 상징하는 ‘제9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이, 결혼에 관한 내용을 담은 24조를 개정하려는 또 하나의 개헌 시도가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혼인(결혼)은 양성의 합의에 의해서만 성립하고,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을 기본으로 상호 협력에 의해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조문이 개헌파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줄곧 개헌의 기회를 엿보는 집권 여당 자민당도, 일본 보수의 상징적 단체가 된 일본회의도, 그 뒤에 자리잡은 더 과격한 우익 세력도 24조의 수정을 원하고 있다. 24조가 이기주의, 개인주의의 주범이자 일본의 가족과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이유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가족주의의 강화이자 나아가 이에 기초한 애국심의 강화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양성평등을 규정한 24조의 수정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체가 힘을 합하여 국가를 형성한다”, “가족은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된다”와 같은 표현의 추가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서로 돕는 것은 비난할 이유가 없는 훈훈한 미담에 가깝지만, 헌법에 의해 의무로 규정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가가 나서서 가족주의를 강화하고, 가족 상호의 부담을 증가시키려는 저의는 충분히 의심스럽다. 여기에 교육기본법(2006)을 통해 ‘보호자가 자녀 교육의 제일 책임자’임을 명문화하고, ‘가족의 날’ 혹은 ‘가족의 주간’을 제정(2007)하여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할 때에는, 정부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길 뿐 아니라 심지어는 국가가 사적 공간인 가정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듯한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자민당에서 헌법 전문에 추가하려는,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 그리고 기초적 단위로서 존중된다”라는 일견 훈훈해 보이는 표현은, 가족을 이루지 못한 적지 않은 이들을 ‘사회’의 바깥으로 밀어낼 것이다.

 

평화헌법의 약한 고리, 24조

 

24조 개헌을 위한 민간 보수세력들의 지원 사격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싱글맘이 늘어나고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개인주의와 여성해방운동의 영향이라는 억지 주장에는 쓴웃음이 나지만, “강한 가족이 강한 국가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헌신적으로 육아를 담당할 모친이 필요하다”, “‘양성의 합의만’으로 성립한 결혼은 파국에 이르기 쉽다”는 등의 주장에 이르면,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잠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붕괴’에 대한 우려나 ‘가족의 유대’ 혹은 ‘가족의 수호’라는 명분 앞에 대놓고 반박을 하기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24조는 남녀평등을 규정한 그 내용이 ‘보수 세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혁신적이어서일 뿐 아니라, 개헌을 위한 가장 ‘약한’ 고리이기에 개헌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가족 유대의 강화 등을 명분으로 24조의 수정이 성사된다면, 다른 조항(예를 들면 제9조!)의 개헌도 함께 논의하기가 수월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가족보다 당사자끼리의 관계와 애정을 중시하는 결혼이 마뜩찮은 보수세력은 헌법을 고치려 하지만, 딸의 결혼이 맘에 들지 않는 아버지는 ‘헌법에 근거한 결혼’을 비하하면서 ‘공동체가 기뻐하는 혼약’과 선을 긋는다. 양자 모두 자기들끼리 좋아서 하겠다는 결혼을 진정으로 축하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이은경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2021), 『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공저, 2010),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가지 시선』(공저, 2018) 등 다수의 책과, 약 20여 편의 학술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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