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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타오른 선구적인 예술가 김우진과 윤심덕
불꽃처럼 타오른 선구적인 예술가 김우진과 윤심덕
  • 김재호
  • 승인 2021.04.2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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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영 지음 | 408쪽 | 푸른사상사

1920년대 중엽, 개화기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사의 찬미>를 부른 가수로 잘 알려진 성악가 윤심덕과 청년 문사 김우진은 현해탄 정사라는 돌발적인 행적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양악의 불모지였던 조선에서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한 윤심덕의 연인이 유부남이자 사대부집 장남이었음이 알려지고, 게다가 동반 자살로 끝난 그들의 비극이 당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는 식민지 치하라는 암울한 시대, 새로운 정신을 접한 근대 지식인들과 낡은 전통 윤리의 충돌, 그 속에서 개화기의 신문화 운동에 앞장섰던 두 선각자의 비극적인 사랑과 삶의 여로를 추적한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행적이 언급된 각종 기사와 문헌들을 참고하고, 유족들이 증언한 새로운 사실과 미공개 사진이 수록되어 더욱 주목된다.

근대적 사실주의 문예가 겨우 실험되던 시절, 표현주의 극을 처음 시도한 김우진은 당시 촉망받던 전도유망한 극작가였다. 대지주 사대부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본 명문의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하며 영문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던 김우진은 해박한 문예지식과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부친의 엄격한 유교 교육을 받았기에 봉건체제와 새로운 서구사상 사이에서 고뇌하기도 했다. 한편 눈에 띄는 재능을 인정받아 관비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윤심덕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였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근거 없는 모욕과 추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풍부한 성량과 당당한 용모로 대중들을 사로잡던 그녀는 유부남이었던 극작가 김우진과 사랑에 빠지면서 세상의 비난과 질시를 한몸에 받았다. 

동우회 순회극단에서 처음 만나 정사로써 생을 마감한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은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쳐 나가고자 했던 그들이었지만, 결국 시대에 잠식되어 예술적 혼을 실현할 수 없었다.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인 윤심덕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양악의 발전이 지연되었고, 서구 연극을 우리나라에 수용하고자 했던 김우진이 사라짐으로써 신극 발전이 주춤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대를 앞장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조선의 예술을 일으키고자 불꽃처럼 타올랐지만 결국 난파하고 만 윤심덕과 김우진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그들의 영혼을 위무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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