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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평_해외유명작가전 열풍을 진단하다
사진비평_해외유명작가전 열풍을 진단하다
  • 신수진 사진평론가
  • 승인 2004.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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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침체 사진전으로 돌파…애호가층 폭넑게 형성돼

국내 화랑계는 지금 사진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불과 육 개월 내지 일년 사이에 상업화랑은 물론이고 문턱 높은 미술관까지 가세하여 사진전 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 상당수가 사진의 역사를 통틀어 소위 대가의 반열에 들어있는 대표 작가들의 전시를 유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셀 아담스(Ansel Adams, 와이트월 갤러리, 5. 20 - 6. 20), 으젠느 앗제(Eugene Atget, 김영섭 사진화랑, 6. 5 - 8. 5),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5. 28 - 8. 22), 헬뮤트 뉴튼(Helmut Newton, 조선일보 미술관, 7. 7 - 8. 22)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y Cartier-Bresson, 갤러리 뤼미에르, 6. 25 - 10. 10) 등 벼르고 별러 비행기를 타야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원본 사진들을 동네 산책하듯 휘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만 레이(Man Ray, 김영섭 사진화랑, 9. 4 - 11. 30)나 신디 셔먼(Cindy Sherman,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9. 1 -11. 21)의 대표작을 하루 안에 충실히 살펴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진지한 사진 애호가들에겐 일면 감격스러운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이 말처럼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인가.

사실 사진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인 예술품 시장의 큰 흐름 속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지 오래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에까지 그 경향이 바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불과 이삼년 전까지만 해도 사진 전문 갤러리는 어쩌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극성 애호가가 성과에 대한 큰 기대 없이 벌이는 무모한 취미생활 이상이 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고, 지금까지 국내 시장의 제반 여건으로 볼 때 사진 애호가 혹은 수집가의 수가 갑작스럽게 증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계 전반과 예술품 시장 내에서 사진에 대한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고 실제로 상당수의 주목할만한 전시들이 성공사례로 등장하고 있다. 화랑에서 개최되는 전시는 당연히 상업적인 목적에 충실한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다. 작품 판매량이나 관람객의 수가 성패의 기본 척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사진 열풍을 경기 침체로 인한 미술품 시장의 불황을 타계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해하자면, 이러한 상업 화랑의 속성에 주목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터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작품 가격이 낮은 사진이 시장의 대안으로 떠올랐을 가능성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사진을 주로 다루는 화랑들은 소수이긴 하지만, 사진 전문을 표방하고 거의 최근 일년 사이에 문을 연 곳들이다. 말하자면, 사진이 단순히 기존 시장 내에서 회화에 대한 대체 상품으로 등장 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사진에 대한 애호가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프로세스의 급속한 보급으로 근래 들어 사진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전시와 함께 기획되는 일반인 대상 강좌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수강생이 몰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잠재된 애호가의 층이 두텁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현재 삼사십 대의 청장년층은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를 통해 만들어진 시각 이미지(photographic images)에 익숙한 비디오 세대이다. 이들이 구매력을 갖기 시작하면서 무엇이 더 많은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매체인가 하는 감수성의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이것은 극소수의 매머드급 콜렉터에게만 의존하고 있던 기존의 시장구조에 비추어 보면 매우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전시의 대부분이 국제무대에서 오랜 시간동안 검증이 끝난 대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는 것은 그만큼 국내 시장의 안목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관객의 요구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가 있으나 그것을 뒤받침 해줄만한 시스템의 부재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상업화랑의 전시들로만 사진의 붐을 논하기보다는 수집과 기획, 그리고 교육 기능에 충실한 미술관의 활동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사진에 대한 관심이 장기적으로 국내 예술 및 사진계의 발전과 성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어지려면, 무엇보다도 국내 사진가에 대한 관심이 수반되어야 한다. 국제 갤러리에서 마련한 「리얼 리얼리티(Real reality, 2. 17 - 3. 6)」전은 배병우라는 스타급 사진가와 함께 권오상, 이윤진, 이중근 등의 신인들도 크게 주목을 받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여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사진영상페스티벌(7. 17 - 8. 21)에서는 국외의 정상급 사진가의 작품 뿐 아니라 국내 작가인 김아타의 작품이 전시 개시일 전에 매진되는 드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의 사진 붐이 미술계의 불황타계를 위한 대안이든 상대적으로 사진이미지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구매력 상승에 따른 결과이든, 당분간은 지속될 경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진이 숨 짧은 유행처럼 소비되지 않게 하려면 지금이라도 단단한 대비책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름 난 작품들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더 많은 국내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예술가들이 오늘날 세계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은 1980년대 이후 그들 기업과 정부가 국제적 교류를 위한 전략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고 보호받고 육성되어야할 문화의 뿌리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진가들에 대한 관심과 존중으로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야 할 때이다.

신수진 / 연세대 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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