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06 16:59 (월)
보들레르가 열어젖힌 ‘시의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보들레르가 열어젖힌 ‘시의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 정민기
  • 승인 2021.04.30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들레르와 시의 현대성 | 도미니크 랭세 지음 | 정명희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248쪽

파리 예술사에서 1857년은 역사적인 해다.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여는 두 차례의 법정 소송 스캔들이 터졌기 때문이다. 1857년 1월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는 소설 『마담 보바리』가 ‘불륜을 미화’한다는 죄목으로 기소됐고, 같은 해 7월 샤를 보들레르(1821~1867)는 시집 『악의 꽃』이 ‘공중도덕과 종교정신을 위반한다’는 죄목으로 기소됐다.

이 사건으로 두 작품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일시적인 관심에 그쳤다. 당시 두 작품의 혁신적인 측면을 알아본 사람은 드물었다. 보들레르가 사망한 이후 프랑스 비평계는 “지대하고 성가신 영향력”이 사라졌다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프루스트, 누보로망, 랭보, 말라르메와 같은 문인들은 “두 작품이 전통 시대를 마감함과 동시에 각자의 방식으로 현대성의 시대를 열어 젖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뒤를 이었다. 이로써 현대 문학이 탄생했다.

이 책은 19세기 중반에 등장한 두 가지 현대성 중 하나, 즉 보들레르의 ‘현대성’을 다룬다. 저자 도미니크 랭세는 보들레르가 시인이기 이전에 저널리스트이자 문학·미술비평가였음을 환기하고 그의 비평문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랭세의 분석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보자.

형식의 구속력을 갖춘 낭만주의

첫째, 보들레르는 낭만주의와 형식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을 보여줬다. 보들레르가 비평을 쓰기 시작한 19세기 중반 무렵 유럽은 지난 한 세기 넘게 이어져 온 낭만주의 사조의 열기가 식어가는 상황이었다. 보들레르 역시 낭만주의에 반기를 드는 사상논쟁에 참여하면서 비평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보들레르는 낭만주의의 덫과 오류를 고발하면서 그것을 넘어선다. 예를 들어 보들레르는 낭만파 시인 뮈세를 ‘나쁜 시인’이라고 칭하며 낭만파 시인들이 “내성에만 탐닉하고 단순히 심정을 서정적으로 토로하는데 그친다”고 비판했다.

보들레르는 낭만파 시인들에 만연했던 ‘내면성의 과잉’을 끝내고 ‘형식의 완벽성’을 중시한다. 그는 시 형식상의 구조가 갖는 중요성을 깨닫고 시집을 하나의 건축물처럼 구성했다. 또한, 보들레르는 형식이 구속력을 가져야 관념이 더욱 강렬하게 솟아난다고 주장하며 매우 절도 있는 운율법을 신봉했다. 랭세는 이것을 “자기 통제된 낭만주의” 또는 “과도함이 청산된 낭만주의”라고 부른다. 요약하자면, “체험된 순간의 직접성에만 집착하는 낭만주의의 미학”과 “미의 신성불가침한 규범 속으로 도피하는 형식주의의 미학”을 모두 극복한 것이 보들레르가 생각한 현대성 개념의 첫 번째 특징이다.

자연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는 사조를 거부

둘째, 보들레르는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고 예찬하는 자연주의를 거부한다. 『악의 꽃』의 어휘를 분석해보면 서정시의 전통 용어인 ‘마음’, ‘영혼’, ‘사랑’, ‘아름다움’ 등의 빈도수는 매우 적은 반면, ‘가로등’, ‘쓰레기 수레’, ‘캥케 등’과 같이 도시화와 산업의 영향으로 생긴 신조어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신성하고 고상한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운문시에서 이런 어휘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시인은 보들레르가 처음이었다. 

보들레르는 운문시에서 음산하고 파멸적인 파리의 모습을 다루면서 미학사의 오래된 전통과 이중으로 충돌한다. 랭세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들레르의 시를 ‘반자연의 시’라고 부른다. 반자연의 시는 루소(1712~1778)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의 선한 자연과 충돌하고, 자연을 체계의 중심 테마로 삼는 19세기의 수많은 사상 조류들과 충돌한다.

셋째, 보들레르는 시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지평을 넓혔다. 보들레르는 “말 안에는 뭔가 신성한 것”이 있고 “하나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일종의 강신술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들레르의 시는 풍부한 이미지로 초현실적인 은유들을 과감하게 시도한다. 또한 “검은 빛”이남 모순어법을 사용해 악의 아름다움을 불협화음으로 표현했다.

보들레르는 생전 단 한 권의 시집만 펴냈다. 그럼에도 서점의 판매량과 박사논문, 중등과정 졸업시험 등 프랑스에서 보들레르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시인들보다 항상 많다. 이 책은 보들레르의 시와 사상이 어떤 이유로 이토록 오랫동안 주목을 받는지 설명한다. 기존의 예술 사조를 뛰어넘어 제3의 길을 걸어나가고, 자연을 향한 오랜 철학적 관점을 뒤바꾸고, 이미지와 모순어법을 통해 시적 언어의 지평을 넓힌 보들레르의 혁명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훌륭한 책이 될 것이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