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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과 동학의 억지 만남…시대정신 잘못 읽었다
유학과 동학의 억지 만남…시대정신 잘못 읽었다
  • 김상일 / 한신대 철학
  • 승인 200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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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 『도올심득 동경대전1』(김용옥 지음, 통나무 刊, 2004, 286쪽)

지난 외환 위기 때에 아시아 국가들이 줄줄이 환란을 당하는 이유를 두고 서방 언론들은 ‘아시아적 가치’ 특히 유교적 가치 때문이라고 대서특필한 적 있다. 가족주의, 정실주의, 패거리주의 같은 유교적 가치관이 환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때에 싱가포르의 전 수상 이광요는 아시아적 가치 잘 못 없으며, 서양의 자유 민주주의 그 이상의 가치가 동양에도 있으며, 문제가 되는 것은 도리어 서양적 가치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양의 시장 경제와 자유 민주주의 시급한 도입과 동양 근대화에 이들 서양적 가치의 공헌을 인정하는 터였다. 그리고 이들 서양적 가치와 동양적 가치는 서로 양립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도올 김용옥은 김대중보다는 이광요의 입장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도올은 아마도 김대중의 입장을 두고 舍本逐末이라고 일축하면서 “서양의 근대성을 우리 역사의 내재적 논리로서 이식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32쪽)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 서양의 ‘민주’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극히 일부 계층에만 해당하는 것이었고, 지금 까지도 그 의미 자체가 변한 게 없다고 한다. 서양의 ‘민주’는 한 번도 “민전체가 민전체를 지배한다는 개념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많은 다수의 합의(consent)가 지배하는 개념은 동양의 ‘民本’이라고 결론한다.(42쪽)

그러면서 도올은 이 책의 핵심 주제가 되는 이런 민본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리스어에서 하나의 신조어를 만들어 내 그것을 ‘플레타르키아 pletharchia'라 한다. 계층적 제약이 없는 다중들의 근본이라는 뜻이며 이것이 바로 동양의 민본인 동시에 수운이 그리던 이상 통치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도올은 이 신조어로 수운의 생애와 사상을 풀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도올이 “우리 역사가 추구한 민본성, 플레타르키아는 그 문헌적 연원을 유교적 전통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47쪽)라고 하는 데 있다. 그의 전공이 갖는 한계 때문일까. 아무튼 플레타르키아의 유래를 맹자에서 찾아 중국과 한국의 기철학과 불교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플레타르키아를 문헌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동북아 전통이라는 거대한 사상적 대해에 플레타르키아라는 배를 띄워 놓고 도올은 노를 젓고 있다. 한국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어 유교와 불교 그리고 샤머니즘이 서로 습합되면서 플레타르키아가 어떻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는가를 일별하고 있다. 이런 도올의 노 젓는 모습은 시원시원하고 호연지기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가 내려놓은 플레타르키아의 다음과 같은 정의와 그것의 근원을 유교에서부터 찾는 것 하고는 알맞지 않는다. 수운의 플레타르키아를 두고 “초월과 내재, 미신과 상식, 비합리와 합리, 유신과 무신, 인격과 비인격의 세계가 항상 혼재되어 있다”(184쪽)라고 했다. 도올이 내린 플레타르키아는 비이원론적 세계관을 총칭해 하는 말이라 해도 좋다. 그는 이러한 수운의 플레타르키아를 수운의 천주관(2장), 수운의 생애(3장)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pleth(다중)와 arche(본원)의 합성어로서 플레타키아를 ‘민본’과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arche'는 도올이 그렇게 첨예하게 반대하는 서양의 개체적 자아 그리고 거기서 서양의 근대화와 시민의식을 만든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arche에서 모든 이원론이 유래한다. 만약에 플레타르키아가 이러한 내용이라면 도올이 맹자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는 책 기술 방법론은 잘못된 것이다.

도올, 문명사에 대한 정립 다시 해야

이러한 오류는 도올이 문명사에 대한 정립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19세기는 동서양을 망라한 대반역의 세기였다. 소위 야스퍼스가 정의한 차축시대(주로 기원전 4~6세기)에 등장한 모든 가치들을 전면적으로 거역하는 반역의 세기였다. 차축시대의 축이 되는 인물들은 그리스의 플래토와 아리스토텔레스, 인도의 붓다, 동북아의 공자, 맹자, 노자 등이다. 차축시대란 동북아의 천추전국시대가 아니던가. 서양에서 19세기의 대표적인 반역아들은 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이다. 이들은 차축시대의 유산을 ‘관념론’이란 이름으로 전면 부정한다. 수운도 “유도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교훈가)라고 했다. 그리고 동학에서는 차축시대를 先天時代라고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다. 선천시대는 가고 후천시대가 온다는 것이 동학의 역사관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맹자는 누구이고 공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춘추전국시대라는 동양의 차축시대의 인물들이 아니던가. 그 운이 다했다고 한 유불에서 플레타르키아를 찾아내 그렇게 말한 수운에게 적용한 것은 언어의 도착 현상이 아닐까. 도올은 홍수전과 수운을 비교하면서 두 사람에게 적용된 샤머니즘의 질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올은 책에서 샤머니즘에서 문명의 근원을 찾아 그것이 차축시대에 들어와 어떤 대접을 받다가 동학에서 어떻게 유불도와 습합이 돼 나타났는지를 설명해 놓았어야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에 도올이 이런 시각에서 책을 다시 쓴다면 그는 그의 전공의 한계를 넘어서(맹자가 아닌) 한국 샤머니즘적 전통에서부터 화두를 꺼냈어야 할 것이다. 우리 문화 전통에는 우리만의 고유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무속과 차축시대 사이에 끼어 있는 층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仙層’이다. 이를 최치원은 ‘풍류도’라 했으며 신채호는 ‘신교’라고도 했다. 도올이 동학에서 정의한 플레타르키아의 비이원론적 요소가 모두 이 선층에 축적돼 있었던 것이다. 백두산 일대에 근원지를 두고 있었던 선풍 운동을 우리는 새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에 맹자의 '민본'은 서양의 '민주' 만큼이나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수운의 플레타르키아는 무의식의 막창까지 내려가 신들려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퇴계 학풍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신들린 공자’였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 것이 아니라 공자가 신들려야 유교도 살고 나라도 산다. 수운은 19세기의 반역 아였다. 그러나 그는 플레타르키아적 반역아였지 플로레타리아적 반역아는 결코 아니었다. 이 점이 서양의 다른 반역자들과 수운은 달랐던 것이다. 세간에서 도올을 두고 신들린 무당 같다는 말을 하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버드 박사가 신들린 것, 이것이 우리의 가능성이 아닐까.

도올의 책에는 기상천외의 놀라움을 주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수운이 을묘년에 신비 체험 속에서 받았다는 ‘을묘천서’를 두고 도올은 그것이 “‘천주실의’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는 점이다.(211쪽) 이런 도올의 주장에 대해 필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려 한다. 매우 흥미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신의 이름에 관해서 지금의 천도교에서 사용하는 ‘한울님’에 대해 필생의 과업으로 비판하고 ‘하날님을 고집해온 故 이세권 선생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너무 표영삼 선생의 주장에 일변도적으로 기운 것도 지적해 둘 점이라고 본다.

필자는 Claremont Graduate School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운교의 불천신사상과 화이트헤드의 신관 비교', '동학의 신관', '동학의 철학적 원리' 등의 논문이, '원효의 판비량론', '수운과 화이트헤드'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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