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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아시아 여성영화 포럼에 관한 보고서
[특별기고] : 아시아 여성영화 포럼에 관한 보고서
  • 교수신문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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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03 17:23:34
김소영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서울여성영화제가 올해로 3회를 맞는다. 97년, 제1회 여성영화제를 시작하면서 우리들은 영화제가 일회성 행사가 되지 않기를 바랬다. 영화제 자체가 여성문화의 새로운 폴리스, 영화를 통해 공유되는 ‘공론 영역’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여성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되는 영화의 프로그램만큼이나, 말과 행위의 장인 포럼과 심포지엄이 매우 중요한 장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래서 4월의 햇살로 일렁이는 동숭동에서의 일주일은 관객과 논객이 함께 하는 시간이 된다.

연대와 소통 양식
우리는 가난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꿈은 서울여성영화제가 동아시아와, 넓게는 동남아시아 여성영화들과의 연대를 이뤄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서울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실질적 재원이 없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시아 여성영화 포럼이 제안되고 김은실 교수(이대 여성학과)가 그 조직 및 집행을 맡았다. 대만여성영화제를 만들었던 황위샨 감독(대만 예술국립대학 교수), 일본 야마가타 다큐멘타리 영화제의 아시아 뉴 커런트 부문 코디네이터인 후지오카 아사코씨 그리고 중국의 다이진후아 교수(북경대 비교문학과), 인도의 테자스위니 니란자나(사회문화 연구소 수석연구원) 등이 쾌히 참석 의사를 밝혔다. 또 국내에서 활동하는 여성영화인들 중 북경 영화아카데미 졸업생이자 현재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도성희씨, 영화사 봄에서 홍보를 맡고 있는 변준희씨 등도 이러한 연대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예컨대, 학자들과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아시아 여성 영화라는 범주를 논하면서 생산과 유통 양식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포럼이라는 형식을 펼쳐놓고 아시아 여성 영화를 이야기하는 데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늘 반복되는 지적이지만 ‘아시아’에 관한 담론 뒤에서 발견되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유령, 일본의 신동아공영권이라는 영토주의, 또 초중국을 꿈꾸는 문화 중국주의, 아시아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된 신유교주의 등이 그것이다. 또 ‘여성영화’라는 담론의 기원에는 서구중심적 페미니즘이 있다. 이것이 바로 아시아 여성영화라는 범주의 설정에 따르는 이론적, 역사적 짐이다. 또 실제적으로 아시아의 여성지식인들이나 영화인들은 서구를 경유(학술회의나 영화제)하지 않고 서로를 만나는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새로운 공론장에서 소통의 양식 자체를 창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곤궁들이 일단 가시화되어 문제로 설정되면 풀어나가려는 노력 역시 서서히 출현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길을 만들고 희망이 지도를 그리게 하는 것이다.
황위산이 펼쳐 보인 대만여성영화제의 지도는 귀감이 될 만한 것이었다. 올해 7회째를 맞는 대만여성영화제는 여성운동가들과 영화전문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제로 대안적인 사회 운동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후지오카 아사코씨가 전하는 일본의 상황은 다르다. 다큐멘타리나 비주류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국제적인 영화관련행사의 중요한 자리에 포진하고 있으나 여성문화운동과 맥을 함께 하는 여성영화제나 여성영화인 네트워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일단 여성영화나 여성영화인으로 분류되는 경우 마치 자신들이 ‘게토’화되는 듯한 생각 때문이다.

여성문화의 ‘연행성’ 현재화 고민
인도 여성영화의 예들은 주로 다큐멘타리 장르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테자스위니 니란자나의 설명이었다. 즉, 1970년대에 이르러 외국 혹은 인도의 영화학교에서 감독수업을 받은 여성감독들이 등장했으며 대다수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고, 각 텔레비전 채널, 또는 정부 각 부처의 지원을 받거나 해외 지원을 받고 있다.
북경대학의 다이진후아 교수는 “고통과 온정의 배후 : ‘예쁜 엄마’와 그 밖의 영화 몇편 ”이라는 글을 통해 현재 중국영화에서 나타나는 여성문제 재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예컨대 공리라는 세계적 스타를 하층민으로 등장시키는 ‘예쁜 엄마’라는 영화는 ‘쿠칭시(눈물 짜는 이야기)’라는 중국 특유의 영화 서사를 사용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과 계급의 사회 문제를 모성의 문제로 환원시킨다고 분석한다. 나는 아시아 여성 영화라는 범주를 미학적인 것이 아닌 양식적 문제로 접근하자고 제안했다. 여성영화를 여성의 문화 내부에서 발견되는 표현 양식의 맥락에서 이야기한다면, 자수, 회화, 영화, 디지털과 같은 다채로운 매체를 동반하며, 일기, 편지, 제문, 이야기, 자서전 등 다양한 장르를 수반한다. 중국의 여성문자인 누수나 조선시대의 언문제문과 같은 과거의 여성문화를 현대적 매체로 번역할 때, 현대의 여성들이 어떻게 그들을 타자화시키지 않은 채 ‘연행성’(performativity)을 현재화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이 제기될 수 있다.
이상의 포럼을 통해 일단 첫 번째 만남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공유하게 됐다. 과연 아시아 여성영화는 서구 중심적 인터내셔널 페미니즘과 아시아의 배후 담론들, 그리고 영화의 지배적 재현양식, 이 모두에 대한 대항의 서사와 비주얼을 짜나갈 준비가 돼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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