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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우사인 볼트, 그리고 LH사태 
박태환, 우사인 볼트, 그리고 LH사태 
  • 교수신문
  • 승인 2021.04.2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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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교수·과학기술정책대학원

 

김소영 편집기획위원(카이스트)

박태환 선수가 15살 나이로 처음 출전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400미터 자유형 예선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한 것은 아쉬운 장면이었다. 당시 나는 어떻게 한번 부정 출발했다고 그대로 실격시키는지 섭섭한 마음이었다. 스포츠라는 것이 실수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고귀한 경험인데 첫 번째 실수는 용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사실 우리처럼 대입으로 인생 대부분이 결정되는 재기불능 사회에서 스포츠만큼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감동을 주는 분야도 별로 없다.

한동안 잊고 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미터 결승에서 우사인 볼트가 부정 출발로 실격하면서 다시 부정 출발 규정이 궁금해졌다. 볼트의 실격은 그해 미국의 유명 스포츠잡지에서 올해의 스포츠뉴스 1위에 뽑힐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터였다. 

사실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부정 출발로 실격되면 가장 손해를 보는 게 당사자인데 부정 출발 규정을 굳이 강화할 필요가 있을까. 개인이 잘못된 행동(부정 출발)을 하고 그 개인이 처벌(실격)받는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부정 출발 규정을 찾아보니 수영이나 육상에서 원래 두 번째 부정 출발부터 실격시켰는데 첫 번째부터 실격시키는 ‘원스타트 아웃’규정은 역사가 오랜 이들 종목에서 비교적 근래 도입한 것이었다. 수영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적용되어 박태환 선수가, 육상은 2010년 국제육상연맹이 규정을 바꾸면서 볼트가 새 규정의 희생양이 되었다.

‘원스타트 아웃’이 도입된 주된 이유는 스포츠 윤리가 아니라 스포츠 기록, 즉 부정 출발로 인한 경기력 저하였다. 생각해보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마지막 8개 레인에 서는 이들은 전 세계 수십만 명의 프로 선수 중에서 선발에 선발을 거듭해 그 자리에 도달한 최상의 엘리트 선수들이다. 이 정도 되면 경기력 차이는 미미하고 조그마한 자극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누군가 부정 출발하는 순간 선수들 모두의 기록이 나빠진다. 즉, 부정 출발은 윤리나 양심의 문제를 넘어 효율과 성과의 문제인 것이다.  

요컨대 부정 출발이 선수의 개인적 행위이고 그 결과인 실격 역시 당사자만 받는 사적 결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의 행위가 집단적 결과로 초래하기 때문에 통념보다 더 엄격히 다루는 것이다.

최근 보궐선거 승패를 가른 LH 사태를 돌아보면, 투기꾼들의 부정을 찾아내 각자 부정의 크기만큼 처벌하면 될터이지만 이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집단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 온 국민의 허탈감과 배신감, 좌절감은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분노를 넘어 노동 의욕 상실, 사회적 신뢰 붕괴 등 엄청난 집단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장기 불황에 코로나까지 엎친 데 덮친 상황에서 미래 성장동력 운운하기도 버거운 현실이다. LH 사태는 그나마 성장의 주인인 젊은이들이 미래를 꿈꿀 희망을 꺼뜨리고,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에 기웃거리게 만드는 집단적 ‘저성장’ 동력을 창출했다. 그 대가는 실수로 부정 출발해도 완전 실격시키는 스포츠의 엄중함에 못지않아야 할 것이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교수·과학기술정책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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