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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종 국가에서 '민족학'의 역할
다인종 국가에서 '민족학'의 역할
  • 정민기
  • 승인 2021.04.21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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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의 ‘아시아 혐오’ 개선 운동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캠퍼스 내에서 아시아 혐오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해주십시오. 아시아계 미국인에 관련된 강좌를 개설해주십시오. 아시아계 학생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교내 상담센터에 아시아계 미국인 심리학자를 고용해주십시오.”

미국 밴덜빌트대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 연합회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공개 편지에 담긴 내용이다. 미국의 고등교육 전문지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이하 <크로니클>)은 지난 6일 연합회 회장 밸러리 김 씨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김 씨가 학교를 상대로 공개편지를 쓴 계기는 지난달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연쇄 총격 사건이다. 김 씨는 “총격 사건 이후에도 학교 측에서 아시아계 학생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개교기념일 행사 관련 메시지만 보내왔다”고 밝혔다. 김 씨는 “얼굴을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모욕적이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아시아 학생을 둘러싼 편견

<크로니클>에 따르면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차별을 개선해달라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여름에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벌인 흑인 학생들도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돕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학교가 우리의 요구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 같지 않다”며 그 이유가 “아시아계 학생의 비율이 적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일리노이대 온라인 프로그램 매니저 셰론 이 씨는 “학교 측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끈기가 있어서 괜찮을 것이라고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고정 관념이다”라고 했다.

송민형 보스턴 칼리지 교수(영문학·아시아 미국학 회장)는 지난달 5일 <크로니클>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인종차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시아 미국학 연구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미국학 50년 연구가 돋보인 순간

애틀랜타 총격 사건 다음날 관할 보안관은 총격사건에 대해 “그(총격범)는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거의 밧줄 끝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어제는 그(총격범)에게 정말 나쁜 하루였습니다”라고 했다. 이 발언은 총격범을 우호하려는 발언이라고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 언론사는 보안관의 말을 재인용하며 사건을 축소시켰다.

반면 아시아 미국학을 연구해온 여러 학자는 지난 50년 동안 진행돼 온 연구를 활용하며 총격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예를 들면, 앤 챙 프린스턴대 교수(영문학과)는 지난달 23일 <디 애틀랜틱>을 통해 미국 내에 만연한 아시아 여성을 향한 편견과 성적 도착을 날카롭게 분석한 글을 발표하며 이번 사건을 둘러싼 계급, 성, 젠더 문제를 짚었다. 

송 교수는 “이런 학자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면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 한다”고 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학은 아시아 미국학 연구가 흑인, 히스패닉과 같은 다른 인종의 연구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한 대학은 이번 총격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도덕적 신념과 사려 깊은 성찰을 갖춘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다. 민족학 연구는 학생들에게 인종차별의 뼈아픈 역사를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려준다. 또한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민족학 연구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데 꼭 필요한 학문이기 때문에 민족학 연구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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