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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뭉치는 성향이 불평등 심화시킨다
끼리끼리 뭉치는 성향이 불평등 심화시킨다
  • 정민기
  • 승인 2021.04.2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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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네트워크 | 매슈 O. 잭슨 지음 | 박선진 옮김 | 바다출판사 | 480쪽

매슈 잭슨 스탠퍼드 교수(경제학)가 이 책에서 다루는 네트워크는 ‘휴먼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는 원래 물리학에서 출발한 이론인데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거칠게 말하면 물리학의 네트워크 이론을 사회에 적용하면 휴먼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휴먼 네트워크 연구자와 구별되는 잭슨 교수의 장점은 인간을 네트워크의 한 노드(점)가 아니라 ‘뇌가 따뜻한 개인’으로 본다는 것이다. 잭슨 교수는 기체 분자나 은하계의 상호작용에 적용됐던 네트워크 이론을 그대로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 갖고 있는 문화와 규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반영했다.

물리학에서 출발한 네트워크, 사회에 적용돼

예컨대 잭슨 교수는 ‘동종 선호(homophily)’라는 현상을 핵심 개념으로 사용한다. 동종 선호는 자신과 같은 인종, 젠더, 종교, 나이, 직업, 교육 수준을 선호하는 인간의 성향을 뜻하는 개념이다. 이는 비슷한 문화나 규범을 가진 사람일수록 행동이나 반응을 더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마찰이 적어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잭슨 교수는 불평등과 사회적 분열을 심화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동종 선호를 묵인하고 강화하는 사회적 구조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교육 수준을 받은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정부의 별다른 조치가 없는 빈민가와 부촌의 분열은 갈수록 심화된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란 사회적 환경에 갇히는 ‘비유동성’을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빈민가 아이들은 ‘성공에 필요한 정보나 기회로부터 떨어진 섬’에 갇히게 된다.

예컨대 빈민가 아이들은 부촌 아이들보다 교육에 대한 정보를 훨씬 적게 받는다. 빈민가 부모는 교육에 큰 가치를 두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육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의 영향도 크다. 많은 일자리가 지인과의 네트워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1951년에 MIT 경제학자 조지 슐츠는 미국의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구직 경로를 조사했는데 ‘절반 이상’의 노동자가 친구를 통해 일자리를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위에 백수인 친구 많을수록 취업할 확률 낮아진다

잭슨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기숙사 빌딩 같은 층을 쓰는 다트머스대 학생들(홀메이트)을 살펴본 결과 한 학생의 졸업 후 취업률은 홀메이트의 취업률과 상관 관계를 가졌다. 한 학생의 홀메이트들의 취업률이 오르면 그 학생이 고용될 확률이 전체 학생들 평균에 비해 24% 증가한 것이다. 쉽게 말해 백수인 친구가 많을수록 취직할 확률이 떨어진다.

현대 한국사회는 온라인 채용이나 공개 채용이 많기 때문에 휴먼 네트워크의 효과가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고위 경영진으로 갈수록 추천을 통한 구직활동이 높아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성 간부 비율이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앞서 말했듯 동종 선호는 성별과 젠더에도 적용된다. 즉, 남성은 여성 친구보다 남성 친구가 더 많다. 따라서 어느 기업의 고위 남성 간부가 새로운 간부를 뽑는 채용 정보를 주변 친구에게 권유한다고 할 때 그 친구가 남자일 확률이 여자일 확률보다 훨씬 높다.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으로 ‘기본소득’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잭슨 교수는 기본소득이 불평등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데 그칠 뿐 질병 그 자체를 치료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은 비유동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비유동성은 상당 부분 부모나 자녀들이 취할 수 있는 정보와 기회를 제한하는 동종 선호로부터 비롯된다. 잭슨 교수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동종 선호를 강화하는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잭슨 교수의 25년 네트워크 과학 연구를 집약한 책이다. 오랫동안 인기 강좌를 수업해온 베테랑 교수답게 책의 구성이 매우 친절해서 이쪽 분야에 문외한이라도 내용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불평등, 능력주의, 기본 소득 등 현재 논란이 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보고 싶다면 이보다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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