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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팬데믹 시대, 라마단의 빛과 그림자
[글로컬 오디세이] 팬데믹 시대, 라마단의 빛과 그림자
  •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1.04.22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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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단국대 GCC국가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9년 3월 19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린우드 모스크 앞에서 나흘 전 벌어진 총격사건의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AP/연합
2019년 3월 19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린우드 모스크 앞에서 나흘 전 벌어진 총격사건의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AP/연합

 

전세계 20억 무슬림에게 성스러운 한달 간의 라마단이 4월 13일 시작됐다. 이슬람에서 아담은 최초의 인류일 뿐 아니라 첫 무슬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류에게 전달한 최초의 사자다. 반면 사자 무함마드는 아담을 필두로 아브라함, 모세, 예수와 같은 수많은 전임자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완성하는 역할을 부여 받았다. 무슬림들은 그런 그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처음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당일을 `결정의 밤(또는 권능의 밤)'으로, 그 기간이 포함된 이슬람력 9월을 ‘성스러운 라마단’으로 기념한다. 이 한달 동안 무슬림들은 꾸란 전체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축복을 새긴다.

 

상처 입은 ‘라마단 무바락’

 

은총으로 가득 라마단이 최근에는 점점 무슬림들에게 긴장과 두려움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라마단이면 무슬림들은 마주치는 이들에게 ‘라마단 무바락(축복받은 라마단)’, ‘라마단 카림(너그러운 라마단)’과 같은 인사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요 몇 년 간 라마단에는 무슬림들을 향한 증오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2019년 3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된 뉴질랜드의 알-누르 모스크와 린우드 모스크의 총격사건은 전세계의 무슬림과 비무슬림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살해범은 일부러 무슬림이 많이 모이는 라마단의 기도시간 모스크를 택해 17분간 기도 중이거나 도망가는 신도들에게 반자동 사격과 조준 사격을 가했다. 이날의 참극은 입원 직후 사망한 인원을 포함해 51명의 사망자와 49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후 이들을 추모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추모객 역시 다음 테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무슬림들에게 라마단 기간은 그 자체로 성스럽기에 "뽑아 들었던 칼을 칼집에 집어넣는다"고 할 정도로 서로가 다툼을 삼가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라마단의 평화 무드는 적에게 이때만큼은 도발이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게 되고, 때론 이를 역이용한 책략으로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3차례 동안 이스라엘에게 일방적 패배를 당해온 이집트는 라마단 기간이자 이스라엘의 휴일인 욤 키푸르에 전쟁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그 설욕을 되갚았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슬람 세계가 치르고 있는 가장 큰 전쟁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동안 해가 뜬 직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체의 음식이나 음료의 섭취할 수 없고, 흡연이나 성관계 등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라마단 기간의 활동은 금식 중인 낮 시간 보다 오히려 야간에 매우 활성화된다. 무슬림들은 이 기간 동안 천국으로 가는 문이 열리고 지옥으로 가는 문이 닫히면서 악마들이 사슬에 구속되어 훨씬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평소 야간 활동을 삼가하던 여성들도 이때는 보다 자유롭게 일몰 후 활동을 늘려서, 모스크를 방문해 합동 예배를 올리거나 여흥을 즐기기도 한다. 특히 라마단에는 친지들이나 가까운 이웃끼리 한집에 모여 앉아 식사와 담소를 나누면서 선물을 주고 받는 활동이 크게 늘어나 연례 ‘코로나 특수’를 누린다. 하지만 올해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은 이러한 라마단 활동으로 인해 통제되었던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할 것을 우려해 오히려 라마단 기간 동안 통행금지나 모임의 제한 등을 강화하는 추세다.

 

자선과 연대의 한달 속 소외된 이들

 

더욱 안타까운 경우는 라마단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라마단 기간은 부자와 가난한 이들이 다같이 한 달간 허기와 목마름의 고통을 공유하고 소비와 기부가 활성화되며 마을 곳곳에 무료 급식소가 설치되어 가난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어깨를 맞대고 식사하고 기도 하면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기간이다. 하지만 백신 보급이 거의 안되어 있는 지역에서는 코로나 방역과 자선을 병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마찬가지로 세계 도처에 세워져 있는 난민 수용 시설들에는 고향을 가지도, 일가 친척을 만날 수도 없는 무수한 이들이 고통스러운 라마단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씁쓸하게도 라마단의 사기 행각은 해마다 그 규모를 불리고 있다. 라마단에 넉넉해지는 자선을 노리고 해외에서 아랍에미리트로 원정 구걸을 온 일당들은 벌써 여러 번 해외 토픽에 올랐다. 최근에는 라마단 기간 동안 자선 단체를 사칭해 보이스 피싱 등의 방법으로 선량한 이들의 기부금을 갈취하려는 이들까지 증가 추세이다. 올해 아랍에미리트는 미등록 자선단체의 기부금 모집 행위를 약 1억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예정이라면서 직통 신고 전화번호를 고지했다. 질병과 기만, 공포와 갈등이 아직 만연한 라마단이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선량한 이웃의 사랑이 라마단을 맞이한 모든 이들의 마음에 닿기를 기도한다.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연구원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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