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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21.04.1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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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모 지음 | 창비 | 316쪽

 

4·16재단 공모 '모두의 왼손' 대상 수상작
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세월호참사 7주기를 맞아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세월호에서 학생 20여명을 구해 ‘파란 바지 의인’이라 불리는 김동수씨의 증언을 기반으로 세월호 생존자의 트라우마와 참사 이후의 삶을 그렸다. 용산참사, 제주 강정마을 투쟁, 제주 4·3 등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그려온 만화가 김홍모가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4·16재단 공모 ‘모두의 왼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에 수익금이 기부되는 『홀』 북펀딩은 목표 금액을 하루 만에 달성하며 화제를 모았으며, 시민 총 1천여명이 힘을 보탰다.

세월호의 도착지였던 제주에는 지금도 김동수씨 같은 생존자가 24명 살고 있다. 다수가 그처럼 세월호에 트럭을 싣고 뭍을 오가던 화물차 기사로, 세월호참사 때 생계수단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홀』은 김동수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지만 그와 같은 세월호 생존자, 그리고 더 나아가 참사피해자의 삶을 그리며 사회가 재난과 그 피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이런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세월호 7주기, 『홀』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깊고 어두운 홀 같은
그날의 기억

작품은 생존자 ‘민용’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제주 화물차 기사인 민용은 육지에서 일을 마치고 동료 기사들과 함께 인천항에서 제주행 세월호에 트럭을 싣는다. 안개가 짙게 껴 출항이 늦어지자 차를 빼서 목포로 향할까 고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출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세월호에 탑승한다. 다음 날인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아침식사를 마치고 쉬던 중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어진다. 동료들과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으로 올라가려던 차, “아저씨, 여기 좀 도와주세요!” 하는 외침이 들린다. 세월호 선내 중앙의 홀은 배가 직각으로 기울어지면서 낭떠러지가 되었다. 민용은 소방호스를 이용해 홀에서 학생들을 끌어올렸고, 구조된 학생들이 그가 입고 있던 파란 바지를 기억하면서 이후 ‘파란 바지 의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스무명이 넘는 학생을 구하고 본인도 구조되었지만 그날 이후, 민용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다. 시간이 지나도 구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떨쳐지지 않았다. 수차례 자해를 시도할 정도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그에게 여전히 세월호의 기억은 ‘홀’, 깊고 어두운 구멍과도 같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생존자의 트라우마와
참사 이후의 삶

『홀』은 세월호 생존피해자의 사연을 다루지만, 상당 분량을 피해자 개인이 아닌 가족의 시점과 이야기에 할애한다. 작품의 1부가 민용의 시점에서 세월호참사 당시의 상황을 그린다면 2, 3부는 참사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둘째,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한 첫째, 그리고 민용의 아내 시점으로 진행된다. “세월호 친구들이 살고 싶었던 내일”이자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빠의 4월 16일”을 살아가는 민용의 가족은 참사 후 ‘변해버린’ 민용의 든든한 지지대가 된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의 삶에는 도망치고 싶고 원망스러운 순간도 찾아온다. 『홀』은 그 순간들까지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재난의 피해가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과 공동체로까지 연장된다는 점, 그리고 그 피해의 복구를 위해서는 가족과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미류는 “진상규명은 사건의 조각들을 이어붙여 함께 기억할 말들을 만드는 일이다. 구하지 않은 국가에 책임을 물을 때, 죄책감과 분노와 슬픔을 떠도는 마음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참사의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생존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는다.

기억하겠습니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홀』은 김동수씨를 비롯해 제주에 살고 있는 세월호 생존자 24명뿐만 아니라 여전히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전국 172명 생존피해자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월호 생존자 중 단원고 학생이 아닌 ‘일반인’ 생존자는 거주지가 각기 다르고 다른 승객과 연결고리가 없어 상대적으로 덜 기록되었고, 덜 기억되었다. 『홀』은 그 빈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김동수씨가 헤어나오기 어려운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가족 덕분이기도 하지만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처럼 세월호를 듣고, 기억하고, 다시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홀』을 통해 김동수씨의 시점에서 세월호를 함께 기억함으로써 세월호참사는 세월호에 탑승했던 이들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겪었고 지금도 겪어내고 있는 일이 된다. 그것이 바로 ‘잠시라도 잊고 싶은 사람’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만나는 통로가 아닐까. 세월호 7주기, 『홀』을 함께 읽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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