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0:55 (금)
학과 폐지, 깨진 ‘테뉴어’ 약속
학과 폐지, 깨진 ‘테뉴어’ 약속
  • 김재호
  • 승인 2021.04.14 0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긴축재정으로 시간강사가 강의 채워
테뉴어 교수들과 신진 학자들의 공존

종신재직권을 의미하는 ‘테뉴어(Tenure)’는 교수들의 꿈이다. 평생 안정적으로 교육과 연구를 할 수 있으니 학자로서 인정을 받는 셈이다. 그런데 지난달 미국의 고등교육 전문지 <크로니클>에 ‘테뉴어의 약속이 깨지다’라는 사례가 소개됐다. 코로나19로 미국의 일부 대학들이 사회학 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작은 규모의 사립대로서 미국 북동부 메인(Maine)주에 있는 세인트 조지프스대의 카트리나 후프 교수. 그는 이곳에서 테뉴어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서 6년, 테뉴어 트랙에서 6년을 버텼다. 후프 교수는 사회학과 학과장이 되어 간호학 분야로까지 연구 영역을 넓혔다. 또한 대학의 일상 업무를 위한 수많은 위원회에서 일했다. 9년 전 후프 교수는 테뉴어를 획득해 평생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테뉴어는 종신재직권을 의미했지만, 대학 사정에 의해 종신이라는 의미가 사라질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하지만 지난해 3월 팬데믹이 닥치면서 미국 전국의 대학이 문을 닫았다. 후프 교수가 몸담았던 대학과 캠퍼스에서 사회학 프로그램 등 일부 교과과정이 없어지면서 프로그램 관계자 등 7명이 해고됐다. 심지어 후프 교수는 테뉴어 및 주요 인사결정 위원 중 한 명이었는데도 말이다.

<크로니클>은 전통적인 테뉴어 트랙이 그동안 배타성을 조장해왔다고 비판했다. 대학 내 특정 관계자들이 위원회에 참여하여 객관적인 기준 없이 테뉴어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에는 학자들의 약 60%가 테뉴어를 얻었거나 테뉴어 트랙에 있었다. 하지만 현재 고등교육에선 약 33% 수준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시간강사와 저임금을 받는 겸임교수들이 채운다. 198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대학의 긴축재정은 미국의 고용 연령차별법과 맞물려 40대 이상 교수를 나이가 많다고 그냥 해고할 수 없게 됐다. 이로써 나이든 교수들은 무기한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진학자와 교사들은 취업시장이 어려워졌다.

테뉴어 트랙의 배타성

테뉴어 혹은 테뉴어 관련 프로그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등교육의 급속한 확산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공표한 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다. 예를 들어,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로스(1866∼1951)는 스탠포드대에서 쫓겨났다. 왜냐하면 그는 사회주의자인 유진 데브스(1855∼1926)를 옹호하고 철도 산업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또한 로스는 아시아 이민을 반대했다. 이 때문에 스탠포드대 기부자와 신탁자에 의해 학교의 명성을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로스는 몇몇 다른 교수들과 함께 학교에서 잘렸다.

분명한 건 점점 더 열악해지는 대학 환경 속에서 테뉴어는 위원회 등 행정 관리 하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최근 미시시피대의 유망한 젊은 학자 개럿 펠버는 테뉴어를 거절당했다. 하버드대 코넬 웨스트는 교수위원회에서 테뉴어를 추천했지만 대학 측에 의해 거부 당했다. 그는 결국 하버드대를 떠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램지는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있던 베네딕틴대 스포츠 경영학 교수이자 학과장이었다. 2009년, 그는 테뉴어를 얻었지만 6년만에 캠퍼스가 문을 닫으면서 테뉴어를 잃었다. 램지 교수는 맥머래이대로 옮겨 테뉴어를 받았지만, 이 학교 역시 2020년 3월에 폐교를 선언했다. 가까스로 램지 교수는 일리노이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교수도 분명 노동자이다. 테뉴어를 받는다는 건 장기적인 프로젝트와 대학에 대한 헌신적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테뉴어 교수들은 후임 교수들을 뽑는데도 냉정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자신이 평생 있게 될 직장의 직원을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학문적 평판을 쌓는데 역시 테뉴어는 유용하다. 다만, 대학에서 교수 일자리 부족과 테뉴어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는 어려운 문제다. 신진 학자들의 자리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한편, 테뉴어를 누구에게 부여하는지에 대한 인적 비용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학생들은 왜 글을 쓸 수 없는가』(2018)를 쓴 존 워너는 테뉴어를 받은 적이 없다. 20년 동안 대학에서 일했지만 충분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신문제작과 시장조사 회사로 옮겼다. 대학에서의 글쓰기 관련 교육 개혁은 표준화, 평가, 성적 매기는 책임에 기반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러한 평가 체계만 통과하려 하면서 수동적인 글쓰기에 익숙해졌다.

테뉴어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자는 의견도 있다. 교육과 연구, 공공성과 정책개혁 및 대중의 참여는 학자로서 고민할 지점이다. 하지만 자유시장주의자들은 테뉴어 때문에 쉬운 해고와 구조조정이 어렵다고 분개한다. 이와 동시에 몇몇 교수들은 조합을 결성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한다. 일부 대학은 테뉴어 대신에 장기 계약을 권하지만 인센티브와 기간은 또 다른 문제다. 

코로나19는 지역 국립대와 소규모 사립대에 타격을 입혔다. 재정 위기를 공표하지 않고도 학과 축소나 폐지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