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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대학원∙중단된 연구… 학자가 줄어든다
폐쇄된 대학원∙중단된 연구… 학자가 줄어든다
  • 박강수
  • 승인 2021.04.14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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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가

재정 감소, 박사 학위자 일자리 감소, 유학생 감소….

바이러스가 앞당긴 학문의 ‘오래된 미래’

미국 유학 비율 높은 한국 학계에 미칠 영향은?

 

학문의 미래가 긴축에 들어갔다. 미국 국제교육협회(Institution of International Education)의 인구조사 보고서 ‘오픈도어스(opendoors)’에 따르면 미국 전체 고등교육기관 학생은 지난 해 기준 약 197만2천명이다. 2013년 정점을 찍은 뒤 꾸준한 감소세다. 눈에 띄는 변화는 유학생과 국제학자들의 숫자다. 미국에서 유학중인 학생은 전년 대비 1.8%가 줄었다. 2005/06년 이후 14년여만에 첫 감소다. 미국에서 재직 중인 해외 학자는 지난해보다 무려 9.1%가 줄었다. 약 6년만에 첫 감소이고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크게 줄었다.

문제는 아직 여기에 2020년 가을학기 이후의 본격적인 팬데믹 여파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미국 고등교육계에서는 코로나19바이러스 피해가 학자 계층 전체의 장기적인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고등교육 전문지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이하 ‘크로니클’)은 지난 2월 15일 ‘학자 계층의 축소(The Shrinking of the Scholarly Ranks)’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통해 현재의 비상 상황이 일시적 위기에 그치지 않고 가속돼 “학자의 수가 대폭 줄어든 새로운 균형(New Plateau)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전했다.

 

연구 축소∙중단된 이공계 대학원 93%

 

<크로니클>은 △입학 연기와 정원 축소 △시설 폐쇄와 연구 중단 △예산 및 재정 지원 삭감 △국제 경쟁력 상실과 해외연구자 감소 등의 원인을 지목하며 이 모든 난관으로부터 벗어나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크로니클>에서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이후 오는 2021년 가을학기에 신입 대학원생을 받을 수 없다고 밝힌 학과는 131개 이상이다. 이 목록에는 하버드, 프린스턴, MIT 등 대학의 학과도 다수 포함된다. 기사는 “정원을 축소해 운영 중인 대학원은 그보다 더 많다”며 “예산이 삭감되면서 정원 축소 압박은 적어도 2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구 중단’의 폐해는 더 가시적이다. 입학을 미룬 잠재적 학자예비군이 아닌 현역 연구자들이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카고대의 여론조사 기관 NORC가 지난 1월 발표한 「대학원의 코로나19 대응」 보고서에 그 실태가 잘 드러나 있다. 이공계 대학원 300곳의 학과장이 응답한 조사 결과를 보면 팬데믹 영향에도 여전히 모든 실험실을 운영한 대학원은 7%에 불과했다. 반면 캠퍼스가 ‘셧다운’되면서 전 실험실을 폐쇄한 곳은 14%, 일부 실험실을 제한적으로 운영한 곳은 79%였다. 도합 93% 이공계 대학원 실험실이 코로나19로 멈춰서거나 축소 운영된 셈이다. 이어서 대부분의 학과장들(91%)은 “박사 학위 취득자를 위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라면 지금 미국 안 간다”

 

<크로니클>은 미국교육연구협회와 스펜서재단이 공동 발간한 연구 보고서 「현장의 목소리들(The Voices from the Field)」을 인용해 더 생생한 연구자들의 고초를 전달한다. 조사에 응한 박사 과정 연구자들은 “캠퍼스가 폐쇄되면서 도서관 자료 접근이 금지돼 논문을 미뤄야” 했거나 “(연구 방법론을) 현장 수집 데이터에 기초한 실용적 접근에서 더 이론적인 방식으로 변경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크리스 골드 스탠포드대 취업교육센터 코치는 “3분의2 정도 완성되거나 개념화 단계를 마친 수많은 연구들이 이런 식으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숫자로 확인했듯 이 모든 어려움은 해외 연구자와 유학생들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크로니클>이 접촉한 전문가들은 국제항공편이 막히고 비자 발급이 어려워진 상황뿐 아니라 미국 학계 자체의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고 있다. 홀든 소프 <사이언스> 편집장은 “(미국보다 나은 방역을 보여준) 중국, 싱가포르, 호주, 독일 등에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고, 루이스 에체고옌 텍사스대-엘파소 교수는 “만약 내가 지금 ‘포닥’이고 선택권이 있다면 절대 ‘지금’ 미국에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 숫자는 꾸준히 줄어 왔지만 중국에 밀렸던 2018년 이후 줄곧 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다. 출처=교육부 '2020년 국외 고등교육기관 한국인 유학생 통계'

 

박사 인력 양성은 곧 재정 지원의 문제

 

핵심은 재정이다. <크로니클>은 “팬데믹은 박사 학위 과정과 예산 지원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폭로했다”고 표현한다. 데보라 스튜어트 대학원협의회 명예회장은 “(연구 중단 등) 연기가 12개월짜리일지 5년짜리일지는 연방 지원금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전망은 밝지 않다. 앞서 살펴봤던 NORC 보고서에 따르면 이공계 대학원 300곳의 학과장 가운데 3분의2가 “학과 예산이 삭감될 것이며 이중 대부분 삭감이 교원 등 학부 채용 부문에서 이루어질 것”이라 내다봤다고 한다.

팬데믹이 촉진한 다른 변화들과 마찬가지로 고등교육의 위기 역시 실은 수십 년간 이어온 흐름이었다는 것이 <크로니클>의 진단이다. “학술 관련 고용 시장은 지속적으로 줄어 왔으나 박사 학위 취득자가 취업할 수 있는 비학술 분야에 대한 무시는 개선되지 않았고, 여전히 학위 취득의 타임라인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전환기의 혼돈 속에서 바이러스는 고등교육 체제를 재구성할 기회의 공간을 만들어줬다. 다만 기사는 루이스 교수의 말을 빌려 비관으로 마무리된다. “썩 낙관하긴 어렵다. 우리는 ‘현상 유지’의 수호자들이기 때문이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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