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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전고려대교수] "너무 지쳤다... 교수의 눈물은 온라인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강수돌 전고려대교수] "너무 지쳤다... 교수의 눈물은 온라인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 정민기
  • 승인 2021.04.12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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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6년이나 앞두고 명예퇴직한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가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지난 25년 간의 봉직 기간을 회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가 인터뷰 도중 지난 25년 간의 봉직 기간을 회상하며 캠퍼스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정민기 기자

올해 2월말, 강수돌 고려대 교수(융합경영학부·59세·사진)가 명예 퇴임했다. 고려대 교수 정년 퇴임 기준이 만 65세이므로, 6년이나 일찍 교수직에서 물러선 셈이다. 강 교수는 어떤 이유로 이토록 이른 퇴임을 결정한 것일까. 

강 교수는 “너무 지쳤다”고 했다. 지역사회와 환경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강 교수는 이미 심신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두 학기 연거푸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그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지난달 19일, 고려대 세종 캠퍼스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절박한 느낌이 들었어요. 주변에 과로사로 쓰러지시는 분들을 보면서 의미 있는 일을 계속 하려면 일단 살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 6년이나 이른 퇴임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소위 말하는 ‘최고의 직업’을 공식적으로 버리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심신이 너무 지쳤어요. 조만간 나올 제 책에 고백하기도 했는데요. 제 스스로가 ‘일중독자’였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과로로 건강이 많이 악화됐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지금 멈추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절박한 느낌이 들었어요.”

△ ‘중독’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써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과로사 예방에도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왔고요. 

“네. 일 중독 연구를 많이 해왔죠. 2007년에 『일중독 벗어나기』(메이데이), 2018년에 『중독의 시대』(개마고원)을 썼습니다. 올해 겨울에는 『중독 공화국』이란 제목으로 신간이 나올 겁니다. 일 중독 연구를 하다보니 그 결말이 과로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과로사로 쓰러지시는 분들도 많이 봐왔고요... 때 이르게 쓰러지시는 분들을 봐오면서, 제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계속 하려면 일단 살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 과도한 업무에 빠진 이유 중에 ‘교수 업적 평가’도 영향을 미쳤나요?

“교수 업적 평가가 일 중독에 아무런 영향도 안 미치는 건 아니지만, 주된 원인은 아닙니다. 교수 평가가 예전보다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건 사실이지만 정해진 기준을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아무리 교수사회가 소위 ‘빡세졌다’고 해도, 상대적인 특혜를 누리는 직업군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제가 일 중독에 빠진 이유는 정해진 성과를 넘어서는 목표, 이를테면 좋은 논문이나 책을 쓰겠다는 목표들을 자발적으로 세워왔기 때문입니다. 또 지역사회와 환경을 지키려는 대학 외 활동까지 자처하면서 일이 너무 많아진 것도 한 몫을 했죠.

△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한 활동이라면, <녹색평론> 177호에 실은 글과 관련된 내용인지요. 세종시 농촌 난개발 문제를 고발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네 맞아요. 이번에 <녹색평론>에 실린 글은 제가 지난 15년간 지역 사회와 환경을 파괴하는 건설업자와 그들과 연루된 공무원들에 맞서 싸우면서 찾아낸 내용을 종합적으로 담은 글입니다. 세종시 인근의 농촌 난개발 문제를 다뤘어요. 지역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정말 버티기 힘들 정도로 지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깡으로 버텨왔는데 이제 한계가 온 것 같아요.”

△ 지난 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강의가 온라인으로 전환됐습니다. 이것도 퇴임에 영향을 미쳤나요.

“네, 원래는 퇴임 시기를 2022년 정도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을 두 학기 연거푸 하면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2020년 1년 동안은 정말 억지로 수업을 했어요.”

 

 

온라인 수업을 두 학기 연거푸 하면서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었어요. 작년 한 해 동안은 정말 억지로 수업을 했어요.

 

 

△ 온라인 수업의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까.

“온라인은 교육을 기술적인 관계로 만듭니다. 교육을 단순히 ‘수업 진도 나가기’로 보는 거죠. 온라인 강의에는 소위 말해서 ‘쓰잘대기 없는 잡담’이 끼어들어갈 구석이 별로 없어요.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학생에게 말을 걸거나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는 시간이 모두 생략됐습니다. 학생들의 참여도도 물론 낮고요. 그래서 진도는 평소보다 2배나 빨리 나갑니다.”

△ 수업 방식에도 제한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네, 학생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가 사라졌습니다. 토론수업이나 발표 수업이 생략되어 버렸어요. 억지로 토론과 발표를 진행할 수 있긴 한데, 실제로 만나서 하는 과정에 비하면 학생들이 얻어가는 게 1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 잡담이 줄고 진도가 빨리 나가면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좋은 것 아닌가요?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어요. 수업 진도에 해당하는 ‘지식’이 대학 강의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교수의 목소리 톤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통해서 ‘지혜’를 배웁니다.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되고 사회를 향한 정의로운 태도 같은 것들을 배우는 거죠. 예를 들어 봅시다. 한 교수가 수업 시간에 어느 노동자가 투쟁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낍니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배웁니다. 이 과정이 대학 교육에서 모두 빠지게 된다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일 거예요.”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의 눈물'이 사라진지는 오래됐습니다.

 

 

△ 온라인뿐만 아니라 대면 강의실에서도 ‘교수의 눈물’을 보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예 맞습니다. 교수사회는 매우 보수적이에요. 사회 정의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는 교수가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70~80%는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교수가 문제의식이 없으면 학생들은 문제의식을 더욱 갖기 힘듭니다.”

△ 요즘 대학생들은 주로 어떤 목표를 갖고 대학에 오나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대학을 다니는 핵심 목표는 ‘취업’입니다. 70년대 중반 대학생들의 주된 관심사가 민주주의, 정의, 인권, 대의, 역사의식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죠. 그때는 취업 이외의 가치들을 배우는 게 이른바 ‘대학생활의 진수’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변해왔습니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전문대가 더 선구적입니다. 종합대학은 소기의 목적과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어요.”

△ 종합대학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종합대학은 학문 공동체를 염두해서 만든 것입니다. 학문 공동체는 사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요. 이를테면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현대사회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이나 불평등·차별 문제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공계 분야에서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대안 에너지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테고요.... 인간은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생태위기·기후변화를 초래해왔습니다. 이 사실을 직시하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런 성찰이 있어야 진정한 발전이 가능해요. 그런데 대학에 이런 체계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곧 학점 때문에 재판이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 체계에 대한 반성 없는 대학에서 학생들은 점점 취업과 관련된 학점이나 자격증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학생들이 성과주의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지요. 대학은 학생들의 고정관념을 망치로 깨트려야 하는데, 요즘 대학은 오히려 경쟁을 부추기기만 합니다. 학생들은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아요. 오히려 그 구조 속에 들어가서 대학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더 놓은 곳으로 올라가 특별 대우를 받고 싶어하죠.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능력주의, 실력주의, 성과주의가 만연합니다. 학점에 얼마나 열을 올리는지, 이러다간 조만간 학점 때문에 재판이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 학생들이 공정성에 예민해진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현재 학생들 사이에 만연한 공정성 개념은 1차원적인 개념입니다. 저는 공정성 개념이 한 차원 더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학생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공정성은 ‘비례성 원리’에 기초한 공정성입니다. 노력한 양에 비례하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일 잘하는 사람 돈 더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평가됩니다. 비례성 원칙은 부정부패를 해결하는 데 걸맞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구조적인 차별’이 정당화된다는 단점이 있죠. 0차원(부정부폐가 만연한 사회)에 비해서 1차원(비례성 원리가 적용된 사회)가 더 나은 것은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1차원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올바른 사회는 아닙니다.”

 

 

공정성 개념이 한 차원 더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한 단계 더 발전된 공정성 개념은 무엇인가요?

“형평성 원칙에 기반한 공정성입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조금 덜 받아도 괜찮으니 물질적으로 힘든 사람을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영한 것입니다. ‘너는 공부를 못했고 노력을 안 해서 월급을 그 정도밖에 못 받는게 당연한거야’라는 태도는 한계가 있어요. 그런데 요즘 대학은 상대평가 제도로 학생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기고, 사회 비판도 없습니다.”

△ 대학 사회에 대한 회의감도 퇴임의 이유 중 하나였나요?

“글쎄요... 제가 그 질문에 '예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면 대외적으로도 명분이 있고 멋있겠죠.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김예슬 씨(2010년 고려대 자진 자퇴생)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사실 대학 자체의 회의감은 진작부터 느꼈어요. 지금 제가 퇴임하면서 그 이야기만 콕 집어 말하는 건 조금 위선적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참고 지낸거죠. 대학이 무너진 지는 오래됐어요. 제가 97년에 교수가 됐는데 그전부터 연세대 송자 총장이 CEO 총장 개념을 내세우면서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사회 비판, 정의, 대안 제시, 진리탐구 이런 것들은 주변화됐어요. 대학이 비즈니스가 된거죠. 이런 현실을 보면서 내 스스로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학자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과정이 일 중독과 겹친 것 같아요.”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좀 천천히 가고 싶어요. 집 앞에 텃밭을 가꾸면서 자연과 대화하고 건강을 회복해야죠. 그러면서 일기 쓰듯 꾸준히 무언가를 쓰려고 해요. 시간적 압박 없이 여유를 갖고 편하게 글을 쓰려고 합니다. 또 지금까지 그래왔듯,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소수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너무 비장하고 외롭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즐겁게 연대하면서 나아가고 싶어요... ‘외로운 소수자’가 아니라 ‘즐기는 소수자’가 되고 싶어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소수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너무 비장하고 외롭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소수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너무 비장하고 외롭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인터뷰, 사진 =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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