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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학사
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학사
  • 교수신문
  • 승인 2021.04.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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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은 지음 | 이혜인 옮김 | 푸른역사 | 388쪽

 

17세기 조선 유학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이 같은 통설에 대해 저자는 17세기 유학자들의 저작과 20세기 초 한·중·일 3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저서를 토대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첫째,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 17세기 유학자들이 주자학에 대한 회의나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둘째, 발전 배경이 전혀 다른 조선 유학과 도쿠가와 일본 유학의 ‘주자학 연구’와 ‘주자학 비판’은, 20세기 초반 식민과 반식민 항쟁이라는 권력구조에 무리하게 연결되어 단순한 비교 대상이 되었다. 셋째, 17세기 사료들을 상세히 읽어 보면, 주자학 연구가 매우 정밀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주희의 저작 속의 변화나 모순을 발견해 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확인한 17세기 조선 유학사의 양상이다.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조선 지식인의 생각을 새롭게 쓰다

저자는 조선 유학사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조선만이 아닌 한·중·일 3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조(1392~1910) 중기에 해당하는 17세기 유학자들이 처해 있던 상황과 그러한 상황에 대한 그들의 대응이 어떠했는지 밝히려는 작업을 17세기가 아닌 20세기 진입 전후에 대한 서술로, 조선 유학자들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짊어지고 있던 시대적 사명에 대한 서술로 시작한 건 그래서다.
왜 동아시아적 시야가 필요한가. 저자에 의하면 ‘동아시아’는 한·중·일이 자타의 역사를 확실히 인식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공간이며, 특히 조선 유학사는 형성 과정에서도 그리고 근대적 학문의 연구 대상이 되기 시작하던 때에도, 국경을 초월하여 존재했다고 한다. 즉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천하’에 기초하여 그 ‘천하’ 속에서 자신들의 바람직한 존재 방식을 사색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천하’의 시야에서 그들의 저작을 관찰해야만 17세기 조선의 사상사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
또한 19세기 말엽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시기는 동아시아 각국이 자타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때다. 조선 유학사의 의의를 찾아내는 작업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애국운동가, 저널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시대적 사명감을 짊어지고 조선의 역사를 연구하며, 식민 종주국 일본의 학설에 대해 학습과 반론을 계속했다.

주자학 일색인 조선민족은 열등한가

저자는 20세기 진입 전후의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조선시대 지식인에 대한 ‘오해’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 ‘오해’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식민지 시대에 조선 유학사는 ‘주자학 일색’이며 ‘비독창적’이라는 말로 ‘멸시’를 받았다. 이에 대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주자학 일색이 아니며, 독창적’이라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분투했다. 이러한 방식의 대응은 어쩌면 현재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대응을 멈춰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우선, 주자학 일색이라서 독창성이 없고 그래서 조선 민족이 열등하다는 논리는 식민지 시대 일본인 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인 학자는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제국주의 정부에 부화뇌동했을 뿐인가? 이 책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혹시 일본 사회의 역사적 배경에 의한 것이 아닐까? 우리 학계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이러한 주장을 일소하기 위해 조선 시대는 주자학 일색이 아니라 여러 사상이 다양하게 공존했으며 독창성이 풍부하고 따라서 조선 민족은 열등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쳐야 하는가?

일본을 알자

저자는 우선, 20세기 초 식민 종주국 일본의 학술에 주목한다. 그들의 학술 사상이 태어난 역사적 배경인 근세 일본 사회를 설명한다. 도쿠가와 일본, 즉 에도시대 일본 유학의 발전상은 중국이나 조선과 완전히 달랐다. 무사계급이 통치하는 사회에서 유학이라는 학문의 권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독창’적 경서 해석이 빈번하고 ‘독창’이 평가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유학 경서에 대한 해석에서 해석자의 독창성에 어디까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해석학의 근본적 가치가 과연 독창에 있는 것일까? 경서 해석학에서 누군가의 새로운 해석이 기존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독창성을 지닌다고 해서 높은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은, 20세기 진입 전후에 들어온 서양적 학술 관점을 과도하게 적용한 것이거나, 조선시대 유학사를 주자학 맹종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유학사를 부정하는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는 서로 다른 사상사

식민지 시대에 한국 역사가 일본 식민 당국에 의해 폄훼되는 상황은 기본적으로 일본적 배경을 가진 유학사 서술의 맥락이 조선 유학사 비판에 사용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자학 추종 일색이라는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서 조선시대의 양명학파를 발굴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 뒤로도 반주자학자나 주자학 비판자를 발굴하는 연구가 알게 모르게 이러한 논리를 반박하는 취지로 진행되었다. 저자는 지금 이 시대에 서서, 조선 유학은 주자학 일색이 아니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보다 주자학이 비독창성이나 열등함을 나타낸다는 관점 자체의 문제, 경서 해석에서 독창성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관점에 내재된 문제를 제기한다.

오해에서 이해로

저자는 20세기 진입 전후 지식인들이 국가·민족의 위기에 직면하여 조선 유학사에서 ‘근대적’ 사상의 맹아를 찾아내려 한 상황을 고찰한다. 그들은 17세기 문헌에서 기존 사상, 즉 주자학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견해를 ‘발굴’해냈다. 20세기 지식인에게는 분명 이러한 문제의식이 존재했다. 하지만 17세기 유학자들도 역시 그러했는가?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하나하나 확인해간다.
17세기 조선의 유학자들이 자신들의 사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 그들이 기존의 권위 있는 경서 해석과 다른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학설은 어떤 과정에서 출현한 것인가? 그리고 당시 사회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그것은 권위를 지닌 기존 사상체계에 대한 도전이었을까? 새로운 학설을 제시한 사람은 자신을 주자학 비판자로서 인식하고 있었을까? 조선 유학사에서 이 새로운 해석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조선 유학자들이 살았던 세계는 20세기 진입 전후의 지식인들이 직면한 동아시아 정세와 크게 달랐다. 그러므로 서양식 식민에 대항하여 나라를 구할 방법을 모색한 근대의 지식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천하 의식을 지닌 조선의 유학자가 ‘나라’를 위해 혹은 ‘천하’를 위해 세운 뜻이 같을 수는 없다. 우리는 조선조 유학자들이 처한 현실 사회와 그들의 사고방식을 알아야 한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은 근대적 민족국가로서의 한국의 주권을 되찾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그러한 지식인들에게는 과거 조선 유학자들의 시점에 서서 그들이 일생을 걸고 추구한 것이 무엇인지, 조선 유학사란 대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 책은 조선 유학사에 관한 그 시대 이래의 자리매김을 바꿔보려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지식인들의 뜻을 본받아 21세기 학술계에 주어진 사명의 일부를 충실하게 완수하고자 한다.

새로운 역사적 단계로 진입하다

요컨대 저자는 지난 사상사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주자학 위주의 사회 일각에서 반주자학이라는 동향이 근대의 맹아로서 등장했다는 가설을 부정하고 ‘주자학과 다른 학설은 반주자학을 목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의 틀’이 없었다고 선언하거나 반주자학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선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의 서술 목적은 ‘맞다’, ‘틀리다’라는 선언에 있지 않다고 한다. 선학들의 연구는, 식민지 조선의 주권을 회복하는 일의 일환이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 이래 축적된 조선 유학사에 대한 ‘오해’는 시대의 산물이다. 결코 ‘잘못’으로 치부하고 망각해버릴 대상이 아니라 연구하여 연원을 밝혀야 하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 이러한 ‘오해’를 빚어낸 시대적 필연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한 시대 조류의 역사적 단계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식민사관’에 저항하며 분투했던 한 시대를 이제는 역사 속에서 편히 쉬게 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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