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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 독서계를 장악한 '관계'의 거미줄
트렌드 : 독서계를 장악한 '관계'의 거미줄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8.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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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접속하고 싶다"…관계의 진보가 미래 바꿔

사이와 관계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이는 거리감을 주고, 관계는 연결된 느낌을 준다. 개인주의가 창궐한 지난 1990년대 한국사회를 지배한 것은 '사이'였다. 적절한 거리가 삶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믿음은 한국땅의 숨막히는 집단 문화에 대한 탈출의 시도였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적절한 연결'이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내면의 확장, 개성의 발견 같은 삶의 밑바닥에 돋친 공허함의 가시에 찔려본 사람들은 이제 '연결된 느낌'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것은 중산층 문화의 각분야에서 매우 뚜렷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스포츠나 정치사건과 연루된 대중규합은 그 '연결'에 대한 갈망의 낡은 표현이다. 민족주의적 동원정치, 시민의식의 성장 같은 80년대식 가설은 '연결'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의 양극으로서 '연결'과 '관계'의 변증법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볼 때 보다 흥미로운 시야가 확보되는데, 그런 심리학적 추측들을 요즘 독서계의 잘 팔리는 테마종목에 적용해 보면 몇가지 지점에서 공통된 코드가 나온다.


우선 평전을 보자. 요즘 평전이 많이 나온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몇 년간 혁명가들에 대한 평전이 가장 많았고, 학자, 예술가들에 대한 평전들도 많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들이 있었다. 혁명가들의 평전에서는 애잔하게 남아있는 운동권 정서와 소통한다든지, 위인들의 범인적 면모를 엿보게 해준다든지, 영웅소설이 하던 역할을 평전의 서사가 대체했다는 시각들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책을 '선택'하는 것과, 실제로 그 책을 통해 '무엇'을 읽느냐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평전 붐을 설명해온 것은 그 책들이 '선택'된 이유들을 나열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평전이 5년이 넘게 인문교양서에서 영역을 넓혀온 것을 설명하려면 '무엇'이 읽히는가를 간파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이 바로 '관계'다. 사람들은 위인들이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었으며,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에 매우 흥미로워 한다. 마르크스를 예로 든다면 그에게 돈을 빌려준 친구들, 외로울 때 조언해준 자들, 부인과 하녀, 엥겔스와의 구체적인 관계가 무엇인지가 관심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 평전의 저자 프랜시스 윈은 그걸 잘 묘사했고, 최근의 책들 가운데 가장 호평을 받은 비트겐슈타인 평전, 호치민 평전도 '관계'묘사가 큰 묘미가 있었다는 평을 받았고, 국내에 번역된 평전으로서는 古典의 대접을 받는 '중국의 붉은 별'의 에드거 스노우도 모택동과 참모들이 거느린 '인맥의 비밀'을 푸는 데에서 놀라운 수완을 보여줬다.


이런 설명이 좀더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살펴보자. 일단 '불황'이라는 코드가 잡힌다. 박사실업자가 부지기수고 대졸자 80%가 놀고있다는 이런 공포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사람'에 관심을 돌린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연줄을 동원해서 취직자리를 알아보든지, 언론이 망하는 일은 없다는 속설을 깨고 도산 위기에 몰린 몇몇 거대언론 기자들도 어디로 자리를 옮길까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불황기에는 바로 '인맥'이 생존의 비결이라는 듯이 서점가에 가보면 인맥과 관련한 무수한 책들이 나와있다. '인맥의 지도를 그려라', '좋은 인맥을 만드는 43가지 방법', '파워인맥' 같은 상품들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는데, 이는 부동산 투자서와 함께 불황시대라는 틈새시장을 분할 점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책들이 담고있는 얄팍한 매뉴얼 따위가 아니다. 그것대로 따라한다고 인맥부자가 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맥'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고 있다는 것. 그동안 인맥을 학벌이나 지연과 동일시해온 측면이 있다면, 이런 책들은 인맥이 개인의 노력과 포지셔닝에 따라 창출될 수 있는 금맥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가령 인터넷 커뮤니티와 언론, 면 대 면 마케팅 같은 새로운 조류는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인맥의 형성요인들이다. 실용서적들에서 잡아낼 수 있는 이런 흐름들은 '인맥'이 인간의 '사회성' 형성에 있어서의 매우 필수적인 역할모델로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케 한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의 네트워크를 갖출 때 한 개체가 진정한 '사회성'을 갖는다는 메시지며, 인맥은 자기가 필요할 때 써먹는 '비상금'이 아니라, 인맥을 형성하면서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친화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네트워크과학의 하위분야로서 '연줄망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와 연관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는 학맥과 지연을 중심으로 주요 거점들을 사례 연구하는 수준이지만, 이런 연구들이 구체적인 성과물로 우리 앞에 나타날 때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구조가 전시대와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구체적인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관계'에 촉각을 세우다보면 최근 '느림'을 강조하는 책들이나 자본주의와 연 끊고 사는 '대안문화소개서' 같은 책들의 물량이 많이 퇴조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것의 즐거움'이야 워낙 스타작가라서 예외로 친다면, 이쪽 냄새를 풍기는 책들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탑100에 한권도 포함돼 있지 않다. 그 대신 '설득의 심리학', '플로우(flow)', '생각의 지도' 같은 심리학 서적들이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이 두 현상은 서로 연결돼 있다. 사실 느림이나 반자본주의 선언들은 '개인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면서, '자연친화적 담론'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실천해 몸으로 체크해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이념이나 주장은 유행에 그치기 쉽다.('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느리게 사는 것의 여유'(동문선 刊)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출판사의 사재기 작품이라는 점을 이런 심증을 굳히게 한다). 아무튼 요즘 '나는 컴퓨터가 싫다', '플러그를 뽑는다' 같은 책들은 한국에서 영 재미를 못 본다. 대신 '자아'를 부드럽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주는 '플로우', 타인에게 다가가기 전에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생각의 지도', 적극적으로 말을 걸라고 주문하는 '설득의 심리학'들이 층계를 이루면서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이런 것들은 평전과 인맥에 대한 책들과 보완관계를 이룬다. 물론 그 관계의 핵심엔 '인간'이 들어있다. 그것에 대해선 또 다른 해석과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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