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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부정한 양명학자 …남녀대등설 등 파격 주장
공자를 부정한 양명학자 …남녀대등설 등 파격 주장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4.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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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분서(전2권)』(李贄 지음, 김혜경 옮김, 한길사, 2004)

自序에서 저자는 “(분서는) 마음 맞는 벗들의 편지 물음에 대한 답장으로 요즘 학자들의 폐단에 대해 자못 절실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들의 고질병을 정면에서 꼬집었으니, 그들은 필시 나를 죽이고 싶겠지…”라며 비장하게 야유한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이 책으로 인해 저자는 혹세무민의 죄로 감옥에 갇혀 76세에 자살했다. 책의 역사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중국에서조차 세심한 역주를 붙인 ‘분서’의 완역본이 없는 실정이다. 출간 당시부터 근대화시기까지 금서로 묶여있었으며, ‘분서’에 담긴 저자의 사상 자체가 중국 사상사에서 비주류에 해당하기 때문.

한국에 원문 전체가 번역돼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처음이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한길그레이트북스’가 1975년 북경에서 나온 중화서국판을 번역한 것. ‘故心慘憺’하며 10년 동안 번역했다는 역자의 말을 증명하듯 1천 7백개의 역주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며, 전문가를 위한 한문 원문도 실려 있다.

중국 ‘양명학 좌파 사상가’로 불리는 이지에 대한 기존의 연구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民國 초기 吳虞가 씌운 것으로서 문화대혁명 시기까지 지속된 ‘儒敎叛徒’라는 타이틀이 가장 일반적인 것. 이지는 성인과 대등한 입장에서 경전을 분석하려 노력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경전해설서인 ‘四書評’에서 이지는 공자의 시비가 모든 사람의 시비가 된 것을 비판하며, “무릇 하늘이 사람을 내시면 절로 그 사람의 쓰임이 있는 것이니, 공자에게서 인정받은 다음에야 그 사람의 존재가치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반드시 공자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면 천고이전에는 공자가 없었으니 결국 제대로 된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았단 말인가”라고 개탄한다.

‘분서’의 ‘夫婦論’에서는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 어려우니,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박해, 둘로 나뉘지 않는 ‘부부’ 그 자체를 ‘만물의 시초’라 규정한다. 생리적 차이를 제외한 능력의 측면에서 남녀가 대등하다고 본 것. 당대에 이런 사유가 용납되기 어려웠다. 결국 그의 ‘부부론’은 장문달의 ‘이지 탄핵 상소’에서 “사대부 집안의 여인들을 암자로 꼬여내 불법을 강론했는데, 침구를 들고 와 자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라는 것으로 변질돼 그를 감옥에 가두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지를 하층계급과 상층계급 문학과의 연계를 이룬 문학가로 평하는 시각도 있다. ‘분서’의 ‘童心說’에서 이지는 “동심을 항상 지닐 수만 있다면 도리가 행해지지 않고, 견문은 행세하지 못하며, 언제 지어도 훌륭한 글이 되고, 어떤 사람이 지어도 좋은 글이 되며, 어떤 체제의 글을 지어도 빼어난 글이 아닌 경우가 없게 된다”라고 말하는데, 오늘날에 봐도 새롭다.

이런 요소 때문인지 서구의 유명한 유학자 드 배리 등은 이지를 근대적 지식인으로 재조명하고자 한다. 중문학 교수인 역자 또한 “부정적 측면들을 흡수하고 통합과 개성화의 한마당으로 나아가려 할 때” 이지의 진정한 가치가 되새겨질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친다.

그러나 역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지가 무선무악을 기치로 내걸지만,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라, 이미 무선무악의 경계에 진입해 있는 우수한 소수만의 특권”으로 간주한 점을 보건대, 완벽한 근대인으로서의 이지의 재탄생엔 고려할 요소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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