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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日작가의 ‘이중의 고독’···전쟁책임의 예술 표현
100세 日작가의 ‘이중의 고독’···전쟁책임의 예술 표현
  • 하혜린
  • 승인 2021.04.05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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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한국과의 만남은 구원이었다.”
연세대 박물관,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80여 년의 작품 흐름 담아 회고전 열어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전하는 「쓰러진 자를 위한 기도」 연작은 20여 점에 달하는 판화로 구성돼 있다. 
사진=하혜린 기자

“전쟁의 기억을 더욱더 이야기함으로써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1980년의 광주를 그린 뒤 전쟁 책임을 묻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했어요.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해내겠다고요.” 

예술의 가치 중 하나는 사람과 사람, 나아가 사람과 역사를 이어준다는 데 있다. 지난달 12일 도미야마 다에코의 예술과 작품세계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올해 100세를 맞은 일본 작가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것들을 시사해줄 수 있을까. 

 

사진=유튜브 학술대회 캡처

도미야마 다에코. 그는 1921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만주로 이주해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조선, 러시아, 중국 등 저마다의 사정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마주했다. 이후 실업과 전쟁, 제국주의 침탈과 식민 지배를 관통하며 도미야마는 ‘경계’를 뛰어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는 소외되거나 배제된 목소리들을 향해 귀 기울였다. 

한국이 작가의 마음에 들어온 계기는 한국의 '어느 시인(김지하)'의 시가 일본에 들어온 뒤부터다. 작가는 김지하 시인의 시를 접하며 크게 매료됐고,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투옥돼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그는 시인 김지하를 돕고자 했다. 그러던 중 오월의 광주에서 대일본제국의 잔재를 발견하게 된다. 

 

도미야마 다에코는 1970년 민주화 운동과 투쟁의 상징이 된 김지하 시인을 돕고자 했다. 서울에 수감돼 있던 재일교포 출신 서승을 비롯해 민주화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양심수Ⅰ」, 1971, 종이에 석판화, 38X26cm. 사진=하혜린 기자

“상흔을 마주하며 정체성 형성됐다.” 

1980년 5월, 광주를 거치며 도미야마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삶에 깊은 상흔으로 자리하게 됐음을 인지했으며, 일제를 향해 전쟁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역사를 직시하기 위한 예술 행위를 실천했다. 그 방향은 조선인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 일본의 전쟁책임 등으로 향했다. 

전쟁을 비판하거나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작가들은 많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나라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하기와라 히로코 오사카부립대 명예교수는 도미야마 다에코가 처했던 두 가지 어려움을 ‘이중의 고독’으로 표현했다. 

 

「남태평양 해저에서」, 1985,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사진=연세대 박물관

첫 번째 고독은 ‘가해자 측면에서 어떻게 전쟁 책임을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두 번째 고독은 ‘예술가로서 생각의 전달을 어떻게 예리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도미야마는 선례가 없는 상황에서 본인만의 그림을 그려야 했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신지영 연세대 교수는 도미야마 작업의 의의에 대해 “도미야마는 얼굴만으로는 가해자를 표현할 수 없다고 봤다”며 “그는 가해성을 인종화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피해성과 가해성에 대한 성찰과 인식이 단지 일본과 한국의 관계 속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님을 되짚었다. 피해성과 가해성의 중첩을 보는 순간, 그것을 인종화하지 않은 것이 도미야마 작업의 큰 가치라고 신 교수는 주장했다.

 

「기억의 바다로: 도미야마 다에코의 세계」 전시관 전경. 사진=연세대 박물관

연세대 박물관은 학술행사와 더불어 도미야마 다에코의 작품 17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리영희, 한명숙 등 민주화 운동가들과 이응노, 윤이상 등 예술가와 주고받은 편지, 다양한 자료도 함께 공개된다.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도미야마의 인식과 예술혼을 통해 가해성과 피해성, 나아가 우리에게 내재돼 있는 저마다의 제국주의를 직시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6월 30일까지. 

하혜린 기자 hhr21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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