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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 김순애·정금순의 삶…가부장제·호미질·여성운동가
[문화 비틀어보기] 김순애·정금순의 삶…가부장제·호미질·여성운동가
  • 김수아
  • 승인 2021.04.09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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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의 기원: 나주 여성농민 생애사』최현숙 지음 | 글항아리 | 352쪽

구술 생애사는 담는 목소리를 타자화하지 않기 위해 
구술자의 언어와 어떻게 만나야 할까 
일상 속 언어를 어떻게 다뤄야할까가 관건

“남들 보기에는 심난스럽고 불쌍해 보였을랑가 몰라도 나는 너무 좋았어요”(261쪽) “이 책을 읽으면 도시에서 주로 살아온 여성이 여성 농민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저자가 담아 낸 삶의 조각들을 따라 가다보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차이’를 바라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구술 생애사의 주체는 구술자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여성 노동자였고 나주여성농민회 활동가였던 김순애와 정금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과 대화하고, 기록하면서 한편으로 저자가 알지 못했던 노동과 삶의 현장에 대한 후기를 정리한 저자의 시각 역시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구술 생애사의 기록자는 언제나 내가 담아내는 이 사람의 목소리와 그의 모습이, 타자화의 한 형태가 아닌가를 고민한다. 

저자는 때로는 과감하게 개입하고, 여성 농민 활동가들의 삶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가부장제에의 순응과 포기가 드러날 때마다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이 작업이 쉽지 않았던 것이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특히 김순애와 정금순의 삶 속에서, 청자와 독자가 순간순간 울컥 치밀어오를 정도로 고단한 여성의 삶이 드러날 때, 왜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 불필요한 죄책감을 말하는지 따지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불쑥불쑥 드러난다. 그래도 “저절로 숙연해지는, 산다는 것이, 생계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엄혹한 것인지, 그리고 그 엄혹함에도 불구하고 그 노동이 보람되는”(344-345쪽) 여성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저자의 시선이 결국 여성 농민의 삶에서 억척의 기원과 힘의 원천을 찾아내게 하고 있다.

 

 

 여성 농민의 삶이 보여주는 힘의 원천

김순애의 목소리 안에서는 가족 내에서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운동가의 모습, 그리고 정치와 일상의 경계에서 만나는 어긋남이 들려온다. 민주노총하고 우리 농민이 사는 게 달라서 민주노총 행사에서는 말소리가 작아지지만, 농민 행사에서는 살아온 것이 비슷하고 말이 같아 당당해진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같은 한국 사회에서 산다고 하지만 그간 얼마나 서로 다른 말을 해왔는가를 새삼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서로 말을 당당하게 나눌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내는 김순애와 정금순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정금순은 농촌의 현실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을까를 우려하면서도 전남의 농민 수당 등 정책적 전환들을 대안으로 들여다보게 하고, 여성농민에게 친화적인, 친환경 농기계 사업과 같이 호미질 하는 여성의 몸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이 사회의 무지와 무관심을 김순애는 열정이 담긴 목소리로 질타한다. 

언제나, 우리가 다루어야 할 것은 언어이고 이 말들을 어떻게 이어야 할 것인가이다. 이는 구술을 편집한 저자의 고민이었기도 하지만 읽는 독자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관계 속의 상처, 정치 운동과 농민 운동 간의 괴리,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의 고민이 나누어지는 이 구술생애사 기록을 통해서 우리 삶의 언어들을 넓히고 타자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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