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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 교수신문
  • 승인 2021.04.0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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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외 13명 지음 | 푸른역사 | 296쪽

700리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역사와 문화
흐드러지게 핀 봄날 꽃들과 그 곁에 반짝이며 이어지는 남한강, 혹자들은 오랜만에 밟았을 흙길의 아름다움까지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5개의 광역시, 열 곳이 훨씬 넘는 지방자치단체를 지나치는 동안 마주한 각 지역의 역사 유적과 문화 덕에 열흘이 넘는 여정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길을 걸었을 뿐인데 자연스레 따라온 신체의 활력과 마음의 힐링, 인문 역사 공부가 필진들의 산 경험에서 전해진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에 이어 새로운 걷기 문화의 장이 책을 넘길 때마다 가까이 다가온다.

누구나 갈 수 있는 퇴계의 길
임금의 만류에도 끝내 고향으로 물러난 퇴계가 그토록 추구하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퇴계 생애 마지막이 된 이 귀향길에 오롯이 녹아든 그의 소망과 가르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가 걸었던 때로부터 450년이 지나 그 의미를 되살리고자 떠난 이 재현 행사(2019)는 생각지 못한 큰 관심을 받았다. 참가자들은 매년 개최를 원했고, 지켜봤던 이들도 함께 걷길 원했다. 언론에서는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소개하기도 했다. 도움을 주었던 각 기관과 지역에서도 격려가 이어졌다. 모든 마음이 더해져 2020년 제2회 재현 행사를 준비했지만 코로나19로 연기되었다. 이윽고 올봄 조용한 분위기 속에 작은 걸음으로 4월 15일부터 28일까지 다시 떠나려 한다. 앞으로도 해마다 한 차례씩 재현 행사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행사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누구나 삶을 돌아보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도록 여정을 자세히 담아냈다.

퇴계의 사상을 풀어주는 ‘인문 나침반’
퇴계의 유학세계를 보통사람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 책의 으뜸 미덕은 퇴계의 생애를 짚으며 퇴계 사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퇴계가 추구했던 것은 높은 벼슬과 그에 따른 명예나 이록이 아니었고, 내면으로 침잠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찾고 회복하는 군자의 길이었다. 그것을 퇴계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했고”(127쪽) “경敬은 귀부인이 주인이나 임금을 만나러 가기 전에 몸단장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로, 그 의미는 ‘공경’이 본질이다. …… 본뜻보다는 하늘 공경의 의미로 널리 쓰이다가 주나라 중엽부터 다시 인간 공경의 의미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139쪽) 같은 대목이 그렇다.

손에 잡히는 거유巨儒의 인간적 풍모
이제 이기론이니 사단칠정론이니 하는 어려운 유학은 잊어도 좋다. 퇴계의 인간적 풍모를 접하면 자연 그리 될 것이다. 퇴계는 홍인우처럼 사상적 결을 달리 하는 인물과도 사귐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려 있었고(104쪽), 두 번째 맞은 권씨 부인이 자신이 만들었다며 흉하게 생긴 버선을 내밀어도 태연히 신고 입궐할 도량이 있었다(25쪽). 퇴계의 이런 면모는 우리가 상상하던 전형적인 유학자의 틀을 훌쩍 넘어선다.

오늘의 현실에 되새겨 볼 만한 조언
1569년 퇴계가 선조에게 하직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충언을 한다. 자신이 신하들보다 똑똑하다는 오만과 구중궁궐에서 태평성대라고 착각하여 안일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27쪽). 문자에 매몰되지 않은 정치가의 경륜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가하면 책에는 “왕이 지혜롭지 못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 내가 물러난 뒤에 임금의 마음을 차갑게 하는 자들이 계속 이르니 왕에게 선한 양심의 싹이 있다 한들 내가 어찌 자라도록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맹자의 말도 인용되어 있다(175쪽). 이 책이 단순히 문학 또는 에세이집으로 분류하기 아까운 이유다.

길에서 길어낸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퇴계에 관한 이야기이니 자연스레 옛 이야기도 풍성하게 실렸다. 여주 흔바위나루의 유래를 설명(128쪽)이 지나는 곳에 얽힌 고사라면, 천 원권 지폐에 담긴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퇴계가 고향 계상에서 《주자서절요》를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것이란 숨은 일화도 전한다(104쪽). 그런가하면 조선왕실의 골칫거리였던 ‘종계변무’ 문제가 고려 말 명나라로 망명한 윤이와 이초의 농간 탓이었다는 뜻밖의 사실(161쪽)도 접할 수 있다.

삶의 교훈이 살아 숨쉬다
유학은 도학이라고도 한다. 당연히 퇴계는 올곧은 삶을 살았다. 1548년 넷째 형 온계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단양 군수로 있던 퇴계는 같은 관할 구역에 있지 않으려 풍기 군수로 옮겼다. 이른바 상피제를 적용한 것이다(165쪽).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제자에게는 “부부 사이에 금슬이 고르지 못함을 탄식하는데 …… 성질이 악해서 변화시키기 어려운 부인이 스스로 소박당할 만한 죄를 저지른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경우는 모두 남편에게 책임이 있다”며 남편이 스스로 반성하여 후하게 대하고 선하게 처신하여 부부의 도리를 잃지 않는다면 인륜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충고한다(256쪽). 이처럼 귀담아 들을 만한 대목이 곳곳에 있다.

책에는 “필하무완인筆下無完人”이란 구절이 나온다(149쪽). ‘붓 끝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뜻인데 이 책에서 만나는 퇴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 싶다. 고매하면서도 유현한 퇴계의 삶이 “뛰면서 보는 풍경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며 보는 풍경은 휙 돌아서는 풍경이다. 걸으며 보는 풍경은 서서히 다가와서 멈추는, 그래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그런 풍경이다” 같은 구절과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모처럼 만난, 읽는 재미에 뜻깊은 의미를 담은 책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퇴계의 정신과 그가 추구한 길[道]을, 다시 오늘날에 되살리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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