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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역설, 가장 찬란했던 파리
위기의 역설, 가장 찬란했던 파리
  • 하혜린
  • 승인 2021.04.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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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벼랑 끝의 파리』 | 메리 매콜리프 지음 | 최애리 옮김 | 현암사 | 552쪽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전경. 사진=위키백과

세계 경제 대공황 시대 예술가들의 행보
사진과 영화의 발전, 무의식과 잠재력 주목

 

프랑스 파리에 가본 이들이라면 아마 오데옹 거리 부근에 위치한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라는 작은 책방을 한 번쯤은 들러봤을 것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2), 「비포 선셋」(2004)에 등장하기도 했던 그곳은 20세기 초반 예술가들의 영혼의 쉼터로 기능했다. 특히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책방의 역사는 20세기 초 저명한 문인들의 교차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벼랑 끝의 파리』는 1929년,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주인 실비아 비치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1929)를 서점에 비치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실비아 비치는 책을 팔기도 했지만 빌려주기도 했으며, 무일푼인 손님에게는 돈까지 빌려줬다. 이때만 해도 1929년 10월 뉴욕의 증시 폭락이 파리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예견하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같은 해 12월, 서점 영업에 타격이 나타나고 실비아 비치는 사태의 조짐을 느꼈지만 그와 가까웠던 제임스 조이스는 한 아일랜드 가수의 음성에 감탄하며 그를 출세시키기에 열을 올린다. 

이 책은 도입부에서 나타난 것처럼 같은 시기를 겪는 다양한 인물들의 교차로 진행된다. 세계 경제 대공황 이후 파리에서의 삶을 저명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낸다. 경제적 위기, 파시즘의 위협, 인접 국가들의 압박. 다양한 사회, 경제적 요인들이 그 모습을 시시각각 바꾸며 인물들의 삶에 침투한다. 

 

소설이 아닌 역사서

저자인 메리 매콜리프(Mary McAuliffe)는 역사학을 공부하며 예술사에 오랜 관심을 가져왔고 집필을 결심했다. 프랑스 곳곳을 두루두루 여행한 뒤 집필한 이 책은 그가 파리를 다룬 다섯 번째 저서다. 월스트리트 주가 폭락의 영향으로 시작된 세계 대공황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위기 속 인물 저마다의 고군분투를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이 시기가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이유는 위기 앞에 예술은 역설적으로 더욱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사진과 영화는 더욱 발전했고,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를 활용해 비전통적 표현과 무의식,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데 주력했다. 이들은 오랜 시간 이성을 판단의 준거로 뒀던 이성 중심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실천적 면모를 보였다. 

앙드레 브르통의 선언으로 시작된 초현실주의의 태동,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만남과 계약결혼, 긴장감이 감돌던 시기에 매력의 완벽한 본보기가 된 코코 샤넬, 루이 아라공의 공산당 맹신과 열악한 지역에 대한 해법을 내놨던 르코르뷔지에 등. 인물들의 일대기는 역사를 공유하며 얽히고설켜 연대기가 된다. 

책을 보는 내내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가 중첩됐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젤다와 피츠제럴드 부부,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과 살바도르 달리. 해당 인물들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은 여행이 어려운 시기에 이국적 풍경을 선사한다. 특히 이 시기의 파리를 동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 

하혜린 기자 hhr21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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