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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시스템의 허점, ‘램지어 사태’
학술지 시스템의 허점, ‘램지어 사태’
  • 김재호
  • 승인 2021.03.29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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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 교수 논문, 학술지에서 철회될까
학술지 피어 리뷰와 지식생태계의 중요성 부각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로스쿨)의 논문 「태평양전쟁 중 성 계약」이 결국 3월 인쇄본에 실리고 나중에 철회될 것인가. 지난해 12월 1일, 『국제법경제학리뷰(IRLE)』 온라인에 실렸던 이 논문은 4월 이후에나 최종 소명을 거쳐 철회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번 논란으로 인해 학문의 자유와 연구윤리, 피어 리뷰의 문제점, 인종주의 등의 문제점 등이 드러났다. 최근 하버드대 라이셔 일본학연구소 내에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학문의 실증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램지어 교수가 쓴 논문의 핵심은 이렇다. 그는 일본군과 위안소, ‘위안부’의 관계를 자발적 의사를 가진 주체들의 계약으로 상정하고 ‘게임이론’을 동원해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위안소 소유주인 일본군이 성노예자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열심히 일하도록 인센티브를 주고, 충분한 수익을 창출할 경우 여성들이 1∼2년 안에 퇴소할 수 있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한국의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계약에 참여했다는 발상이다.    

지난달 25일, 램지어 교수와 같은 학교 소속인 석지영 교수는 <뉴요커>에 ‘위안부 이야기의 진실을 찾아서’라는 글을 공개했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과 글에 대해 “위안부였던 한국 여성들이 강제로, 또 강압이나 기만으로 인해 성노예 생활을 하고 폭력의 협박 속에 감금당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라며 “위안부 여성들이 경험한 무력이나 강압의 정도는 각기 다를 수 있어도 폭력과 협박은 고질적 요소였다는 것이 지난 수십 년간 역사학자들이 밝혀낸 내용이다”라고 지적했다. 램지어 교수가 여러 나라들의 수많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증언들을 신뢰하지 않고, 단순화한 것 같다는 의견이다. 학문의 자유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왜곡되는 지점이다. 

양현아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술지의 지향이 리뷰어들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인용과 참고문헌 등 학문적 성실성을 따져보는 건 기본이다”면서 “인용과 참고문헌의 측면에서 대단히 부정확한 측면이 있어서 어떻게 논문이 통과됐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국제법경제학리뷰』 편집장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고 양 교수는 밝혔다. 

아울러, 양 교수는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앙 교수는 “연구라는 건 개인의 탁월성뿐만 아니라 학문 공동체와 지원체계, 외부 학계와의 네트워크 등 넓은 의미의 지식생태계가 요구된다”라며 “식민지 연구, 반인권적인 사안에 대해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학문적 의의가 확산되기 위해선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에 대한 탁월한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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