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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우리는 집 잃은 미아들… 서로가 서로에게 집 돼줘야”
박노자 “우리는 집 잃은 미아들… 서로가 서로에게 집 돼줘야”
  • 박강수
  • 승인 2021.03.29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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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미아로 산다는 것』 쓴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한국학)는 소련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가지고 노르웨이에서 산다. 그가 20년 전 『당신들의 대한민국』(한겨레출판, 2001)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가출해보지 못한 소년은 200살을 살아도 어른이 못 된다.” 부모 집을 떠나 불안하고 불확실한 공간에 자신을 던져 넣은 뒤라야 사람은 홀로 설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시 그는 한국사회에 ‘정신적 가출’을 권유하며 이 속담을 인용했다. 유랑하듯 국경을 넘어온 ‘가출인’의 조언이었다.

시간이 흘러 ‘집 떠난 불안’과 ‘홀로 서기’는 다소 기이한 방식으로 한국사회의 일상이 됐다. 이중화된 노동시장과 고용불안 속에서 경쟁의 강도는 변함 없는데 계층의 벽은 두터워졌고, 관계 맺기를 포기하는 청년이 늘었으며 외국인 노동자 등 타자에 대한 착취의 사슬은 정교해졌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독립보다는 고립에 가까워 보인다. 집 나선 모험담이 아닌 집 잃은 표류기다. 이 각자도생의 시대에 대한 연민을 박 교수는 ‘미아’라는 단어에 담았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미아로 산다는 것』(한겨레출판사, 2020)이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돌아온 박노자 교수를 지난 23일 서울대에서 만났다. 한 시간 동안 쉼 없이 쏟아낸 그의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어 보였다. 만국의 미아들이여, 연대하라. “기득권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역사는 없습니다.” 그는 여러 번 강조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사진=박강수 기자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사진=박강수 기자

 

△ ‘미아’는 어떤 의미인가.

영어에 이런 단어가 있다. Uprootedness. 뿌리 뽑힌 상태. 한국의 20대는 완전히 신자유주의 밑에서만 자란 사람들이다. (30년 전) 제가 처음에 관찰했던 대한민국과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인다. 코드로 얘기하면 ‘혼’이다. 혼밥, 혼술, 혼쇼(혼자 쇼핑), 혼행(혼자 여행)…. 실제로 사회가 엄청나게 원자화됐다. 지금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이 30%다. 2040년이면 절반이 1인 가구라는 예측이 있다. 가족이 해체돼 간다. 인류가 이렇게 고립된 상태로 산 적이 없다. 신자유주의는 장기적 이익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단기 이윤 중심의 체제인데 인간의 삶도 자본의 논리를 따라 단기화된 느낌이다.”

 

△ “진보정치의 임무는 각자도생의 신화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썼다.

완벽한 개인이 됐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태까지의 집단주의적 압박,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 같은 것에서 벗어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완벽하게 고립된 개인을 서로 싸우게 한다는 거다. 자본은 별로 경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핸드폰 만드는 회사는 삼성, 엘지, 또 통신사는 엘지, 케이티, 에스케이…. 자본은 경쟁보다 담합을 좋아한다. 경쟁은 우리 몫이다. 비극적인 건 경쟁의 승자도 보통 예정돼 있고 상당수는 그냥 고생만 한다는 거다. 각자도생이라는 건 바로 자본이 피고용자와 피고용자 후보군에게 강요하는 삶의 형태인데 이런 걸 넘어서서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 “한국의 비공식 서열 1위는 대통령이 아니라 삼성 오너”라는 말도 같은 맥락인가.

한국은 양당이 경쟁하는데 누가 이겨도 결국 재벌이 이긴다(웃음). 보수양당제다. 정치인들은 경쟁을 하지만 그 위에 있는 진짜 권력은 경쟁할 필요가 없다. 이 정부에서 처음에 시도했던 것이 소득주도성장, ‘소주성’인데 지금은 언급도 안 된다. 소주성을 하려면 가구소득을 높여야 하고 가구소득을 높이려면 임금을 올려야 한다. 이것을 자본이 감내할 수 없었던 거다. 그러니까 소주성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그 다음 문재인 대통령이 하려고 했던 것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줄이는 건데 통계를 한번 보라. 한국 전체 비정규직 비율이 어떻게 됐나. 36% 그대로다. 줄어들지 않았다. 공공부문에서 일부 비정규직이 계열사로 취업됐다. 정규직 된 건 아니다. 민간부문에서는 오히려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여기에는 어떤 재갈도 물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비교적 선심이 있는 리버럴인데 그도 못 하는 게 너무 많다.”

 

△ 20년 전 귀화하면서 “민족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한국인들에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아니다. (민족보다) ‘대한민국 여권이냐 아니냐’가 기준이다. 지난 20년간 두 가지가 달라졌다. 하나는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에서 이민을 가장 열심히 받아주는 나라 중 하나가 됐다는 거다. 지금 한국의 외국계 인구 비율이 4.9% 거의 5%다. 일본은 지금 2.4%, 일본보다 두 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민을 거부하는 순간 한국은 요즘 말로 ‘폭망’한다. 농촌 가보면 농어민 노동자가 다 외국인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밥 외국인이 만든 밥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족과 국민을 동일시하면 일본 꼴이 난다.

또 하나, 한국은 대한민국 여권이 없는 조선인들에 대해 훨씬 더 차별적인 나라가 됐다. 민족적으로 보면 북한, 영변 출신 조선족도 ‘우리’라고 봐야 하는데 부자가 된 대한민국에서는 가난한 친족에 대해서는 그런 관행이 없다. 가난한 친척은 어디까지나 노동자다. 민족은 배제하는 거다.”

 

사진=박강수 기자

 

△ 관련해서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에서 ‘중국 조선족과 구소련 고려인의 삶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강의도 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

한국에 고려인들이 굉장히 많이 와 있다. 8만명 정도 된다. 젊은 고려인들 보면 대한민국에 상당한 매력을 느낀다. 일차적으로는 임금이다. 러시아에 비해서도 평균 임금이 두 배 수준이다. 또 한국 대중문화가 많은 어필을 하면서 한국을 굉장히 멋진 초현대적 사회로 본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살면 살수록 여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뼈 아프게 느낀다. 아무리 한국말을 완벽하게 배워도 바로 구별이 가능하다. 이 구별은 바로 차별로 이어진다.

민족이라고 치면 고려인들도 ‘우리’로 받아줘야지. 그게 민족주의다. 한국에서 이건 민족주의 문제가 아니다. 군사적 획일주의 같은 거다. ‘우리’가 되려면 우리와 모든 게 같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인사하는 방식, 윗사람을 대하는 방식, 직장에서 처신하는 방법 등 한국에서의 생존테크닉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이걸 고등학교나 군대에서 배운다. 고려인들이 어떻게 배우겠나. 그들도 어떤 민족적인 생각을 가지고 (한국에) 왔을 수 있는데 그만큼 환멸도 쓰리다. 혈통적인 조선인마저도 잘 통합시키지 못하는 사회 같다.”

 

△ 한편으로는 그래도 한국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인종주의적 혐오 범죄, 극우 정당 같은 건 아직 없다. 차이가 뭘까.

간단하다. 여기서는 나쁜 짓을 국가가 다 하기 때문에 개인이 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테러리스트는 오로지 국가였다. 잡아 넣고 고문하고 살인하고 다 했다. 그러니 개인이 테러할 일이 없다. 지금도 극우 세력에서 하는 일이 청와대에 민원 넣는 거다. 중국인 입국 금지라든지, 개인이 할 거 없다. 국가한테 요구하는 거다.”

 

△ 한국인의 마음 속에서 ‘우리’라는 개념을 확장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다르다와 틀리다는 말이 동의어가 아님을 사회적으로 조금 더 잘 인지시켰으면 좋겠다. 다르면 다른거지 틀린 건 아니다. 여기에 대해 인권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하라는 대로 못하는 사람, 남들과 똑같이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게 인권이다. 인권은 개인한테 맞춰져 있다. 그런데 한국은 학교에서 공공도덕은 가르쳐도 인권은 잘 안 가르친다. 인권적인 사회는 더 통합력이 좋다.”

 

△ 책의 결론은 돌아갈 집이 없고 뿌리 내릴 곳 없는 미아들이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집’은 무엇인가.

결국에는 우리가 서로서로에게 집이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신자유주의를 멈춰 세울 수는 없다. 다수에게 안정된 고용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족 해체 같은 경향도 지속되리라고 봐야 한다. 이런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남아 있겠지만 서로에게 집이 되어 준다는 것은 타자와 경쟁하기 보다 연대하고 각자의 이해관계보다 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권도 생기는 것 아닌가 싶다. 다수의 잠재적인 피해자들이 연대해서 잠재적인 가해자한테 쟁취하는 것이 인권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이해관계 넘어 타자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사진=박강수 기자

 

△ 그 길로 가기 위해서 학계의 역할은?

한국 학계에는 ‘고물상’과 ‘수입상’이 있다. 국사, 한국사학과 등이 주로 고물상이라면 학계 대부분은 수입상이다. 뭔가 뜨는 담론을 빨리빨리 찾아서 수입하고 그렇게 자기 지명도를 높인다. 한국 학계의 생리가 그렇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는 실질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연구가 너무 안 된다. 실제로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가 관심을 기울여 가정 해체, 홀로족, 원자화된 사회 같은 부분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 또 학계가 학계 내 위계 질서를 어떻게 해체시킬 수 있을지, 학계가 학계 자체를 연구할 줄도 알아야 한다. 대학 서열화 등 학계야말로 한국에서 위계질서가 가장 뚜렷한 곳 중 하나니까.”

 

△ 올해 연구년으로 서울대에 임시직으로 와 있다. 계획이 궁금하다.

책을 몇 가지 준비 중이다. 하나는 한국어로 쓰인 ‘한국 사회주의자들 열전’. 20~30명 되는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책이다. 또 영어로 쓰는 책이 두 권, 먼저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책이 하나 있다.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3천년 역사에서 일종의 원근대적인 제도들, 예를 들어 과거제처럼 능력주의적인 관료 등용이라던가, 종교적 다원주의라던가 그런 제도들이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서방에 비해 훨씬 일찍 출현할 수 있었던가’ 이런 것을 다룬 개설서를 준비하고 있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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