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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키다리 아저씨
나쁜 키다리 아저씨
  • 심영의
  • 승인 2021.03.24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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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의의 문학프리즘]

계절과 관계없이 ‘고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많이 춥고 자주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고아원으로 불렀던 보육원은 부모가 없거나 기댈 곳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에게 그래도 일정한 삶의 공간이기는 하겠다. 검정 교복을 입어야 했던 때, 필자의 중학교 시절에도 우리 반에 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학교마다 지정된 교복의 단추가 있는데, 그 친구는 고아원에서 얻어 입힌 누군가의 낡은 교복을 입고 다닌 죄로 매시간 수업에 들어오는 교사들에게 불려 나가 뺨을 맞곤 했다. 왜 지정된 단추가 아닌가를 묻지 않고 그 시절의 교사들은 교칙 위반이라는 것만으로 뺨을 때렸다. 우리는 아직 어려서 그것이 부당하고 안타깝고 화가 났으나 하릴없이 그 친구가 맞을 때마다 내가 맞는 것과 비슷한 고통을 느꼈다고 나는 기억한다.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가 없어 보육원 등 양육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대략 5천 4백여 명, 이 가운데 매년 천여 명은 만 18살이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퇴소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여러 보도를 참고하면 그렇게 보육원을 나온 ‘보호 종료 아동’들 중 약 40%가 사회의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한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선배들 일부가 잠잘 곳을 마련해 준다며 유인해서 성매매를 시킨다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일에 가담시키기도 하는 모양이다. 
  
특히 대학생이 되어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무딘 애를 쓰면 살아가고 있는 보육원 출신 한 여학생에게 벌어진 어느 중년남성의 못된 짓은 크나큰 분노와 함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염려를 갖게 한다. 그 남성은 여학생이 보육원에 있을 동안 지원해 주었던 학비의 대가를 치르라며 홀로 살고 있는 집으로 수시로 찾아와 오랫동안 성적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여학생은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경제적으로 후원해 주었던 소위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엄청난 배신감과 당혹스러움 속에서 차마 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키다리 아저씨』는 미국의 소설가 진 웹스터가 191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뛰어난 글솜씨를 지닌 고아 소녀가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본 후견인의 도움으로 대학 생활을 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며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녀와 이 소녀의 후견인이 된 ‘키다리 아저씨’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편지 형식을 빌려 담아낸 이야기로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쩌면 저런 야비한 인간과 마주해야 하는가 하는 절망감을 준다. 그 여학생이 홀로 견뎌내야 했을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과 절망은 어쩌면 평생 간직해야 할 상흔이 될 것이다.
  
심윤경 장편소설『설이』(한겨레출판,2020)는 설날 아침 보육원 앞 음식물 쓰레기통 속에서 오물을 뒤집어쓴 채 발견돼 세간의 화제가 됐던 아이 ‘윤설’이 열세 살이 되기까지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다. 설이는 세 번에 걸쳐 파양을 당하면서도 자존감이 허물어지지 않은 ‘되바라진’ 아이로 성장한다. 그렇게 된 중요한 까닭은 보육원 ‘이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 있다. 소설에서 설이는 “이모가 나에게 베풀어준 한결같은 사랑은 대부분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이었지만 겸손함을 내포한 그 따뜻함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드높아, 언제나 은은한 윤기를 내뿜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문학은 우리에게 존재해야 마땅할 조건 없는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것의 부재 속에 고통받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18세가 넘어 보육원을 나와야 한다면 그 이후에는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좋은 멘토들의 섬세한 보살핌이 가능한 제도를 촘촘하게, 빨리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말 괜찮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나가도록 해야 옳지 않을까.
 

심영의(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심영의(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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