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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정말 더우셨나요?
올여름, 정말 더우셨나요?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8.19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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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기온은 오히려 낮아…과잉보도 탓도

올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기상청은 10년 만에 ‘최악의 더위’가 찾아온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에 따라 각종 언론들은 ‘10년만의 폭염’, ‘10년만의 찜통더위’, ‘10년 만에 찾아온 살인적인  더위’라는 보도를 연일 쏟아냈다. 도심화에 의한 체감온도 및 유럽의 살인더위 사례를 언급하면서 사람들을 겁줬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겁을 줘도 잘 안 먹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지지난해와 지난해 태풍 루사와 매미가 워낙 시끄럽게 울어대서 서늘한 여름을 보냈던 이들은 ‘더위야 반갑다’라고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장마가 끝나는 이튿날부터 쏟아지는 불볕더위의 위력은 대단했다. 정말 10년만의 더위를 실감케 했다. 언론에서도 연일 덥다고 부채질을 하니 국내 에어콘이 동이 나 인기 없던 외국 에어콘 회사들이 오랜만에 환호성을 질렀고, 그 외의 국내 경기는 반경을 좁힌 사람들 때문에 움츠러들었다. 7월말부터는 본격적인 열대야가 시작돼 강바람 좇아 나온 시민들을 찾아간 인터뷰가 9시 뉴스에 단골메뉴로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사회는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을까. 정말 그렇게 더웠던 것일까. 입추가 오고 말복이 지나가고, 또 광복절 이후 연이틀 비가 내린 이후로 더위에 대한 소리들은 잦아들고 있다.

평년과 비슷한 수준의 더위

그러나 이번 여름이 과연 ‘10년만의 폭염’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기상청 통계를 통해 살펴보면 올 여름은 ‘폭염’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여름날씨’였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먼저 “올 여름 40도 육박”이라고 보도됐던 낮 최고기온을 보자. 지난 7월23일 밀양의 기온이 38도에 다다르긴 했지만, 서울 36.2도(8월10일), 대전 34.8도(7월31일), 대구 36.0도(7월24일), 광주 35.2도(7월23일), 부산 34.1도(8월13일) 등 주요 대도시의 최고 기온은 40도를 훨씬 밑돌았다. 물론 이는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갔던 2003년에 비하면 무더운 날씨다. 하지만 기상청 관측 이래 최고기록을 갱신하며 사상 최대의 혹서로 남아있는 1994년 서울 38.4도, 대전 37.7도, 대구 39.4도, 광주 38.5도, 부산 36.7도의 기록과 비교한다면, 평균 3~4도 가량 낮을 뿐 아니라 1990년대 중후반과 비교해보면 비슷한 수준임을 알게 된다. ‘10년만의 더위’가 아닌 것이다.

평균기온으로도 따져 보자. 올 7월 주요 도시의 평균 기온은 서울 24.8도, 대전 26.1도, 대구 27.3도, 광주 26.1도, 부산 24.2도를 나타냈다. 이는 비가 자주오고 무더운 날이 매우 적었던 지난해보다 1~2도 높은 것이지만, 평년기온에 비해서는 0.7도밖에 오르지 않은 수치다. 즉 올 여름 7월은 예년과 표준편차 범위 내에서 비슷한 수준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후 8월에 무더운 날이 지속됨에 따라 평균기온은 올라갔다. 8월 1일에서 15일까지 일평균기온은 서울 26.7도, 대전 26.5도, 대구 28.2도, 광주 28도, 부산 26.8도의 분포다. 그러나 지난 1996년의 동일 기간과 비교해보면 서울 28.2도, 대전 28.4도, 대구 29.2도, 광주 28.8도, 부산 28도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더 낮다. 1994년에는 서울 29.4 대전 29.3 대구 30.2 광주 29.3 부산 28.9를 기록해 올해보다 평균 2~3도 가량 더 더웠던 것으로 기록됐다.

더위의 꽃인 열대야로 비교해보자. 열대야는 늦은 밤부터 아침까지의 온도가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현상으로 올 7월에는 서울 3일, 대전 4일, 대구 4일, 광주 4일, 부산 0일로 예년과 비슷했다. 8월에는 1일부터 15일까지 통계를 볼 때 서울은 8일을 기록했지만, 대전 3일, 대구 2일, 광주 1일, 부산 0일로 예년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서울의 기록도 지난 1996년과 동일한 수치다. 나아가 1994년 열대야 기록을 보면, 7월~8월 15일까지 서울 32일, 대전 27일, 대구 31일, 광주 32일, 부산 34일로 올해보다 많게는 5배 이상 무더운 밤이 지속돼 비교가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상'에 익숙해진 한국사회

따라서 기상청의 ‘10년만의 더위’라는 기상예측은 빗나갔다고 해도 기상청 측은 별로 할말이 없을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통계자료를 통해 볼 때 올 여름의 경우 평년의 정상기온을 되찾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언론의 보도태도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었다. 적어도 과학전문 기자를 두고 있는 대부분의 일간지에서는 ‘폭염’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기 전에 기상청 예보의 오류 가능성과, 매일매일 업데이트 되는 최고·최저 기온을 체크해가면서 기사를 썼어야 옳았을 것이다.

이번 여름은 우리에게 몇 가지 점을 시사한다. 첫째, 우리가 ‘이상기온’, ‘이상기후’ 등 ‘이상담론’에 너무 익숙해 있고 그걸 쉽게 믿어버린다는 사실이다. 환경위기에 대한 과잉담론에 대한 점검이 좀 필요할 때인 것 같다. 그리고 도시열섬화 현상이 보다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보다 정확한 장기적인 기상예보를 바탕으로 한 기후관련 정책 및 도시계획을 어떻게 이뤄갈 것인지 학계가 중지를 모을 때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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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이 2004-08-20 09:52:25
왜 기온만 가지고 생각하죠. 올 여름은 기온도 높았지만 무엇보다도 끈적끈적한 습기때문에 더 덥게 느껴졌죠. 저 어릴 때만 해도 아무리 더운 날씨라고 해도 그늘에 누워서 할머니가 부채질을 해주면 덥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죠. 그것때문에 더 덥게 느껴진거 아닙니까?
제가 일본에서 좀 살았었든데, '와이프 없이는 살아도 에어콘 없이는 못 산다'는 그런 더위랑 비슷해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기온만 가지고 별로 안더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잘 못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