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1:50 (금)
'자기개발 도구'로 전락한 명상
'자기개발 도구'로 전락한 명상
  • 정민기
  • 승인 2021.03.26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명상 산업, ‘우리’는 사라지고 ‘나’는 강화된다

불평등한 현실 바꿀 생각보단 적응하게 만들어...

미국에서 2년 전에 큰 화제를 모았던 책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한국어 제목은 『마음챙김의 배신』. 부제는 “명상은 어떻게 새로운 자본주의 영성이 되었는가?” 표지에는 미국 100달러 지폐 인물인 벤저민 플랭클린이 가부좌를 틀고 있고, 그 뒤로는 맥도날드 마크가 있다. 제목과 표지만 봐도 이 책이 어떤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명상이 어떻게 상품화되고 변질되어가는지 신랄한 비판이 담겨있다.

저자의 비판을 살피기 앞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MBSR 명상 프로그램'에 대해 짚고 넘어가보자.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명상 프로그램 MBSR을 만든 존 카밧진 MIT 교수(의과대학)
MIT 의과대학 존 카밧진 교수

MIT 의과대학 존 카밧진 교수가 1979년에 개발한 MBSR 프로그램은 불교의 명상법을 미국에 맞게 변형한 것이다. 종교적 색채는 쏙 빼고 누구나 쉽게 명상을 배울 수 있도록 ‘건포도 씹기’나 ‘몸 스캔’ 등의 활동이 추가됐다. 표준화된 8주 교육과정을 구축하고 수천 명의 전문 교사를 양성해서 유럽과 아시아로 빠르게 진출했다. 그 결과, MBSR 명상 프로그램은 전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다. 명상계의 맥도날드인 셈이다.

이 책의 저자 로널드 퍼서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경영학과 교수다. 이 말은 즉슨, 퍼서 교수는 기업의 경영, 생산관리, 교육, 마케팅에 관한 전문가라는 말이다. 또한, 그는 한국의 선불교 태고종에서 계를 받은 불교 신자다. 옛말에 ‘적을 이기려면 먼저 적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경영 기술과 불교 교리에 대한 배경지식을 모두 갖춘 퍼서 교수는 미국의 명상 산업에 돌직구를 던질 준비를 모두 갖췄다.

이 책의 저자 로널드 퍼서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경영학과) 사진=RT America 인터뷰 유튜브 화면 캡쳐
『마음챙김의 배신』의 저자 로널드 퍼서 교수(경영학)   사진=RT America 화면 캡쳐

불교 가르침 빠지면서 자기개발 도구로 변한 명상

퍼서 교수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비판은 명상이 ‘탈종교화’되면서 자기중심적인 도구로 변했다는 것이다. 원래 불교에서 명상법은 ‘알아차림’에서 시작해서 ‘타인에 대한 자비심’과 ‘자아의식으로부터의 해탈’로 이어진다. 그러나 MBSR은 ‘알아차림’에서 끝날뿐 어떠한 가르침도 없다. 그저 자기 마음에 평화만 찾으면 끝이다.

'탈정치화' 통해 자본주의 강화하는 명상산업

이는 두 번째 비판과 이어진다. 카밧진을 필두로 한 미국의 명상 전도사들은 명상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해결책이라고 선전하는데 퍼서 교수는 이에 반론을 던진다. 퍼서 교수에 따르면 명상 산업은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문제를 ‘탈정치화’한다. 쉽게 말하면 불평등한 사회 '구조'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예컨대 MBSR에 참가하는 사람들 중에는 실업자들이 굉장히 많은데 명상 지도자들은 참가자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개인의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일으킨 진짜 원인, 즉 불평등한 사회 구조나 악덕 기업의 불합리한 노동 계약 등은 가려지게 된다. 실업자 참가자는 8주 명상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사회로 돌아가서 불평등한 구조 속으로 돌아간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연대와 저항이 필요하다. 퍼서 교수는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는 명상 프로그램이 이러한 사회 변혁을 억제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한다고 비판한다. 

앞으로 명상 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퍼서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에서 명상을 해방시켜서 ‘나’에서 ‘우리’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역설한다. 비판 없이 명상을 소비하기만 하면 ‘자본주의라는 공장’은 더 강화될 것이고, 노동자들은 ‘명상이라는 아스피린’에 중독된 온순한 톱니바퀴가 되어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