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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야기
중세 이야기
  • 교수신문
  • 승인 2021.03.1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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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 지음 | 지식서재 | 400쪽

지금의 유럽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36가지 중세 이야기

중세, 고대와 근현대를 이어주다
중세는 흔히 ‘위대한 고대’와 ‘위대한 근현대’의 중간에 낀 “별 볼 일 없는” 시대로 여겨져 왔다. 이 시대에 과거의 찬란했던 고대 문화가 북방 야만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동시에 현대 유럽을 위한 수많은 사회적 장치와 사유, 가치관 등이 형성되기도 했다. 암흑시대처럼 보이는 중세는 사실 매우 역동적으로 발전하던 놀랍고 중요한 시대였다.
중세 초에 유럽의 새 주인공으로 등장한 야만적인 북방 게르만 사람들이 따뜻한 남부 유럽으로 내려와 과거의 로마 제국 영토를 제멋대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그리스 로마 정신을 계승했으며, 기독교도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유럽 정신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계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정신과 기독교, 이 두 가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유럽 문화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유럽 대륙 전체에 걸친 “진정한 유럽 역사”가 시작되다
중세는 또한 진짜 유럽의 역사가 시작된 시기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주요 무대는 유럽의 남부, 소아시아반도, 레반트 지역(아시아), 북부 아프리카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중세가 시작되면 북쪽과 동쪽에서 게르만족들이 몰려와 서로마 제국 영토에 프랑크 왕국 등을 세우고,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이킹 세력들도 밀려 들어온다. 유럽 대륙 전체가 역사의 무대가 되고 남유럽 사람들만이 아닌 북유럽 사람들, 곧 게르만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제야 본격적인 전체 유럽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프랑크 왕국을 세운 게르만족(프랑크족) 수장 클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프랑크 왕국의 궁내대신이던 카를 마르텔의 아들 피핀이 “아무것도 안 하는 (메로빙) 왕들”의 왕좌를 빼앗아 새 왕조인 카롤링 왕조를 세우고, 약탈자 바이킹이 해적질을 일삼다가 프랑스 북부 해안 노르망디에 정착하여 노르만 기사가 되는 등 흥미진진한 일화가 전개된다.

각자의 신앙과 이익이 충돌하는 “전쟁의 시대”가 펼쳐지다
고대와 중세를 이어준 핵심 이념인 기독교는 7세기 아랍 세계에서 출발한 이슬람교와 충돌했다. 양측 사이의 갈등은 11세기 말의 십자군 전쟁으로 이어졌다.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십자군 전쟁을 부추기기 위해 이슬람 세력의 박해를 지나치게 과장한 ‘가짜 뉴스’를 유포했다. 이후 십자군 전쟁은 총 8차까지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신앙심으로 시작된 전쟁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변질되었다. 1차 십자군 때는 일부 지휘자들이 본대를 이탈해 레반트(소아시아) 지역에다 자기 영토를 만들었고, 식량난에 시달리던 십자군이 이교도들을 잡아먹기도 했다. 3차 십자군 때는 잉글랜드의 “사자심장 왕” 리처드가 귀국길에 같은 기독교 세력에게 포로로 붙잡혔다가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십자군 전쟁에서 함께 싸운 동지였던 그들 사이에 의리라곤 없었다. 4차 십자군 때는 성지 회복은커녕 같은 기독교 도시를 공격하고 약탈했다. 기독교 수호를 위해 모여들였다는 십자군의 명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때 500년 이상 이슬람 세력의 확장을 막아오던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같은 기독교도에 의해 회복할 길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싸움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동로마 제국의 동방 기독교(=그리스정교)와 서로마 제국의 서방 기독교(=로마가톨릭) 사이에는 정통성 논쟁이 벌어졌다. 교황과 황제 사이의 우위 다툼도 있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카노사의 굴욕, 아비뇽 유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교황이 살아있는데도 새 교황(=대립교황)을 선출하고, 아비뇽 유수 때는 일시적으로 교황이 3명에 이르는 등 중세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종교 전쟁들이 자주 벌어졌다.

종교적 전설과 기적, 기사들의 모험을 둘러싼 “환상의 시대”가 열리다
11~13세기에 벌어진 십자군 전쟁은 온갖 모험 이야기를 낳았는데,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서 12세기 중반부터 기사(knight)문학이 꽃피게 된다. 신앙의 시대인 중세에는 수많은 종교적 전설들과 성인(聖人) 열전, 기적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이런 미신과 상상력이 문학작품에 반영되면서 판타지(환상) 특성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중세인들은 태어난 지역에서 살다가 그 인근에서 죽었다. 정교한 지도도 없던 시절에 머나먼 나라에서 벌어졌다는 온갖 싸움 이야기, 승리와 패배 이야기, 싸움에서 이기고 그곳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어떤 영웅이 죽었다는 이야기들이 거듭 전해졌다. 사람들은 가본 적도 없는 나라의 악당이나 적들을 상상하면서 용이나 사람 잡아먹는 늑대 등 온갖 기묘한 괴수들까지 꾸며내서 이야기에 덧붙였다. 덕분에 중세 기사 이야기들은 판타지 요소를 띠게 되었다.
중세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단인 성전기사단은 성지를 방어하고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거기에 순례자들을 위한 은행 업무, 대부업까지 손대면서 엄청난 부를 쌓았다. 심지어 무슬림들도 성전기사단의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였다. 재력과 은행에 군사력까지 갖춘 기사단은 각 나라 왕들의 위협이 되었고, 결국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교황 클레멘스 5세에 의해 해체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성전기사단의 전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영화화됨) 등 대중문화에서 음모론과 관련해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성전기사단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또 볼 수 있다.

르네상스,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다
중세 말기에는 페스트(흑사병)의 확산, 콘스탄티노플의 몰락 등 말기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동시에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들도 엿보이는데, 대표적인 예가 르네상스 현상이다. 사람들은 환상과 미신에서 벗어나 이성과 현실로 돌아와서 합리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는데(합리화 과정), 그 과정에서 안내자 역할을 한 것이 고대의 사유와 유산이다. 이 시기에 고대 그리스 문헌들이 새롭게 발굴되었다.
르네상스와 그 직후에는 수많은 발명과 기술적 혁신과 과학적 사유들이 나타났다. 15세기 중엽에 등장한 구텐베르크 인쇄술은 성서를 널리 보급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고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유럽은 중세가 끝나는 시점에서 이러한 성과들을 기반으로 지중해에서 벗어나 대서양을 토대로 세계로 눈길을 돌렸다. 제국주의가 출발한 것이다. 이후 유럽인들이 주도하는 전 세계의 변화는 엄청나게 빠르고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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