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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오딧세이
울릉도 오딧세이
  • 교수신문
  • 승인 2021.03.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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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수 지음 | 눌민 | 440쪽

텔레비전의 기상 보도가 “태풍은 동해로 빠져나가서 다행입니다.”로 끝나면 울릉도 주민은 아연실색하게 된다. 울릉도에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태풍 상황 끝”이라는 보도를 접하면, 내팽개쳐진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울릉도 주민들은 줄곧 이런 식의 대접을 받고 살아왔다. _「머리말」 중에서

 

“동아시아 지중해”의 중심 울릉도! 문화 주권의 논리로 다시 보는 울릉도!

 

지금까지 울릉도를 타자화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태풍이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동해로 빠져나가 다행이다”라는 기상 보도로 대표되는 무의식적 무시와 외면이다. 대한민국의 심장이라는 서울에서 저멀리 떨어져 버려지다시피 한 아득한 섬이 울릉도가 갖고 있는 이미지다. 다른 하나는 “천혜의 관광 자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육지에서 관광 삼아 한철 드나드는 장소라는 것이다. 관광이 울릉도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곳에 사는 일반인들의 삶이 천혜의 풍광에 가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는 울릉도가 마치 독도의 부속도서인 것처럼 비쳐지는 것이다. 육지 사람들의 관심은 사실상 울릉도가 아니라 독도에 가 있다. 독도 인근에서 생업 활동을 하고, 독도의용수비대와 같이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이 울릉도 사람들이고, 독도 해역의 동식물이 일본의 오키노시마가 아닌 울릉도와 혈연적으로 더 가까우며, 독도가 울릉도의 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 정치의 현장에는 독도만이 등장할 뿐이다. 울릉도는 육지의 권력자들에겐 독도를 갈 때에 들르는 길목에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울릉도는 한국 사회의 일원이면서 또한 울릉도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인들로 구성된 하나의 전체이기도 하다. 울릉도는 전체와 부분이 톱니처럼 얽혀 돌아가는 커다란 체계를 형성한다. 여기에는 먼 옛날 신라, 거란, 고려, 조선, 일본 제국주의의 크고 작은 소외와 수탈과 침략이 있었고, 쿠로시오해류를 이용한 동해와 남해 어민들의 활동이 있었고, 고령화율 17%(14%를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불린다)가 넘는 주민들의 위태로운 삶이 들어 있다. 또한 동해와 울릉도에 의지하여 사는 수많은 동식물의 삶이 들어 있다. 저자는 영토 주권의 논리와 대결과 배척의 논리를 거부하고 울릉도를 중심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그럼으로써 외부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된 피곤한 삶의 울릉도를 넘어서 오랜 세월 동안 역사와 교류와 무역으로 쌓아온 사연을 만들어내는 오딧세이적 살림살이의 기반인 울릉도를 복권한다.

울릉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서울인가? 또는 도쿄인가? 아니면 바람과 흙과 물인가? 그 위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기를 반복하는 수많은 생명인가?

저자는 육지의 논리인 영토 주권의 논리가 아닌 문화 주권의 논리로 울릉도를 봐야 울릉도의 실체에 한층 더 가까워진다고 주장한다. 영토 주권은 너와 나를 엄격히 분리하여 소유와 배척, 대결과 반목을 조장하는 정치의 논리이며, 100여 년 동안 자본과 권력에 휘둘려 어업에서 농업으로, 다시 관광업으로 휘둘리는 삶의 논리다. 문화 주권은 주민들이 땅과 바다에 의지하여 살며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개척하고 만들어나가는 주권을 말한다.

그러한 주권을 행사하는 삶은, 한국, 북한, 러시아, 일본이 둘러싸고 있는 “동아시아 지중해” 동해의 한가운데에서 서울을 거치지 않고 일본 오키노시마 어민들과 직접 교류하는 것이 가능하며, 동해의 일상을 조율하는 권한과 능력을 기르는 것이며, 모든 생명이 공생하며 살 수 있게끔 노력하는 삶이다. 국경과 영토의 논리로 울릉도를 접근할 때에는 필경 대결과 착취의 안경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인류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공생하는 살림살이의 논리로 울릉도를 살게끔 할 것을 저자는 바란다.

 

울릉도와 독도의 지명에 전라도 흥양 지방 말이 많은 이유는?

 

울릉도의 지명은 크게 내륙 지명과 해안 지명으로 나눌 수 있는데, 후자는 거문도를 포함한 흥양, 즉 전라남도 해안 지방의 지명이나 용어가 바탕이 된 지명들이다. 울릉도의 해안가에서 보이는 항국로 이용할 수 있는 좁고 깊숙히 들어간 만을 뜻하는 “-구미”, 자갈이 깔려 있는 해변을 뜻하는 “-작지”, 작은 돌들이 널려 있는 긴 해안을 뜻하는 “-와달”, 물고기나 수초가 모두 모여 있는 바닷속 넓적한 바위를 뜻하는 “걸” 들이 이 그렇다.

특히 거북손(turtle's hand)이라 불리는 보찰은 전라도 지역의 방언인데 울릉도민은 거북손보다는 보찰을 더 익숙하게 사용한다. 독도에 있는 보찰바위(보찰바우)는 울릉도민이 독도에서 활동을 했다는 것,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 전라도 해안 지역에서 물길을 따라 활동을 했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전라도 남해안 흥양 지역 사람들이 해류를 타고 울릉도에 와서 좋은 목재로 선박을 건조하고 어업 활동을 하고 돌아간 것이다.

또한 독도는 “홀로 떨어져 있는 섬”이 아닌 돌섬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 “독섬”에서 왔으며, 대한제국이 이에 따라 한자로 “石島(석도)”로 표기했다는 점을 밝힌다. “다케시마(죽도)에 왔더니 대나무가 없더라”라고 한 일본인의 표현처럼 일본이 명명한 “죽도”는 군사작전이 개입한 정치적 명명이며, “독도”야말로 어민의 일상생활이 반영된 명명이라는 점을 밝힌다. 저자는,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와 정당성을 밝히는 작업은 흥양 어부의 기억을 소상하게 복원하는 데에서 그 시작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1882년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은 울릉도에 조선인이 140명이 있는데 이 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라고 보고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경상도 지역 방언을 쓰는 경상도민이 주류를 이루었을까? 저자는 울릉도 최고最古 터줏대감이라 하는 경주 최씨의 족보를 분석하여 그들이 동학농민전쟁을 전후로 입도하였으며, 경주 최씨를 비롯하여 경상도 지역 사람들이 피난처로 울릉도를 택하여 입도하였던 정황을 밝힌다. 그들은 19세기 정치적 불안을 피해 울릉도로 망명했다가 그 원인 소멸하면 귀향하기를 반복했던 듯하다. 흥양 지방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지고 경상도 경주 부근 지역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언어의 변화도 같이 일어난 것이다. 이어 조선 정부의 개척 정책에 의해 강원도 주민의 이민이 시작되었고, 그에 이어 일본인들의 이민이 뒤따랐다.

 

강치가 아니라 가지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이름을 바로잡는다!

 

우리는 흔히 독도에서 멸종한 한 바다생물을 강치로 불러왔다. 그러나 저자는 강치가 아니라 가지라고 강치로 알고 있는 그 바다생물의 이름이 강치가 아니라 가지라는 것을 문헌학적, 언어학적 자료를 근거로 밝혀낸다. 강치와 가지는 서로 다른 종이다. 가지의 학명은 Zalophus Lobatus(일본어로는 아시카)이며, 강치의 학명은 Eumetopius Jubata(일본어로는 토도)이다. 강치가 가지보다 덩치가 더 크고, 털이 길다. 가지는 털이 짧다. 강치가 가지보다 한랭한 조건에 더 잘 서식한다(161쪽 이하 참조). 그리고 분포지역 또한 다르다(168~169쪽 참조).

가지는 이미 그 이름이 조선 시대 기록에 등장한다. 조선 시대 무신 장한상은 “왜인이 가지어(可支漁)를 죽여 기름을 얻는다”고 했고,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을 비롯한 많은 기록에서 가지는 “가지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180~191쪽 참조). 일본에서도 아시카(가지)잡이에 관한 기록이 많이 있다. 특히 죽도(여기서는 울릉도를 말한다. 당시에 일본에서 독도는 송도로 불렸다)에 아시카를 잡으러 출항하여 포획했다는 기록이 있다.

해방 이후 1947년에 석주명과 함께 울릉도를 탐사한 윤병익은 가지에 대해 자세한 보고서를 남긴다(201~203쪽 참조). 그는 석주명이 가지를 “日名 도도, 英名 바다사자”로 이해한 것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해부를 통해 포유류학적으로 자세히 교정한다. 그는 가지를 “가제”로 표기하여 해부학적 특징을 정확히 기술하였다. 가제는 가지의 전라도 흥양 지방의 말로 당시에 통용되던 말이다. 윤병익은 이를 존중하여 그대로 사용하였다. 저자는, 가제를 강치의 사투리로 오해하여 가지와 강치를 동일한 종으로 보는 오류는 바로잡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조선 시대의 기록, 해방 이후 한국 학자들의 기록, 일본 측의 기록에서 모두 가지가 울릉도에서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가지는 독도에서만 발견되었던 것이 아니라 울릉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는 점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지의 멸종에 대해 슬픈 심정을 감추지 못하며 인간의 탐욕를 고발한다. “독도의 주인은 누구인가? 가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순차적으로 두 무리의 손님들이 등장하여, 주인인 가지를 다 죽이고 잡아간 뒤, 서로 자신들이 독도의 주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독도의 진정한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가지와 보찰이며, 그들의 이웃인 물고기와 해조류, 그리고 새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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