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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장강∙황하 편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장강∙황하 편
  • 교수신문
  • 승인 2021.03.1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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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지음 | 김영사 | 448쪽


한시를 벗 삼아 천하제일경으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그 첫 번째 이야기

[EBS 세계테마기행]에 9년여 동안 출연하며 유머를 곁들인 깊이 있는 해설로 찬사를 받아온 김성곤 교수의 중국한시기행 첫 번째 이야기, 장강·황하 편이 출간되었다. 김성곤 교수는 한시를 비롯한 중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 흡인력 있고 유쾌한 설명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중국식 성조에 가락을 넣어 노래하듯 시를 읊는 ‘음송吟誦’과 뛰어난 입담으로 한시를 재미있게 전하며 한시의 대중화에 일조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EBS 방송대상’ 출연자상을 받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한시를 여행과 접목해 장강과 황하를 따라 펼쳐지는 장엄한 풍경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학, 고사와 풍습을 독자에게 전한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그의 중국 여행 중에서 사천성, 강서성 등 장강 유역을 1부로, 감숙성, 섬서성, 하남성 등지의 황하 유역을 2부로 엮었다. 소동파의 [적벽부], 두보의 [망악], 이백의 [장진주] 등 중국 최고 시인들의 대표작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 외에도, 역사 속 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사람 냄새 나는 정겨운 여행 에피소드를 담아 책의 풍성함을 더했다.

 

중국 문명의 요람이자 모친하母親河,
장강과 황하를 따라 펼쳐지는
광활하고 수려한 풍경

 

옛 시인들이 아름다운 자연에 기대어 시를 완성했듯이 이제는 자연이 시인들의 시를 빌려 옛 영화를 전한다. 유장한 물결 따라 시인의 숨결 찾아 떠나는 한시기행의 첫 번째 여정인 장강은 민강의 탁한 물과 금사강의 맑은 물이 만나 동쪽으로 수천 리 흘러가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이다. 소동파는 드넓게 펼쳐진 장강을 보며 그의 최고 작품 [적벽부]를 남겼다. “오직 강 위에 불어가는 맑은 바람과/산 사이에 뜨는 밝은 달은/귀로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네(90쪽).” 장강을 따라가는 1부에서는 현대판 무릉도원이라 불리며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기로 이름난 관광지 ‘장가계’, 수많은 고승과 묵객이 찾아 시의 산으로 불리며 폭포천이 유명한 ‘여산’, 날렵한 처마가 층층이 포개 있고 산 정상에 우뚝 솟아 호연한 기상이 느껴지는 ‘황학루’ 등지를 두루 답파한다.


황하는 또 어떠한가. 중국문명의 발상지이자 중국을 동서로 관통하는 강으로, 중국인들에게 어머니의 강으로 여겨진다. 황하의 물결을 따라가면 황톳빛 강물과 용솟음치는 대협곡, 광활한 평원이 연이어 펼쳐지는데, 저자는 이 황하의 풍경구를 보고 있노라면 이백의 [장진주]가 절로 터져 나온다고 말한다. “그대 보지 못하는가/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흘러내리는 것을(294쪽).” 이 황하를 따라 2부에서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바위 숲을 이룬 ‘황하석림’, 중국의 4대석굴로 꼽히며 절벽에 웅장하게 조성된 ‘용문석굴’, 두보의 대표작 [망악]의 배경으로 광활한 풍경구를 자랑하는 ‘태산’ 등 천혜의 비경을 찾아간다.

 

이백, 두보, 소동파, 도연명…
중국 최고 시인들의 대표작들에 대한
깊이 있고 흥미진진한 해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한시에 대한 김성곤 교수의 흡인력 있는 해설이다. 김성곤 교수 특유의 구성진 입담으로 옛 시인들의 작품과 삶의 면모를 쉽게 풀어낸다. 책을 읽다 보면 한시는 고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은 사라지고 어릴 적 옛이야기를 듣듯 흥미진진한 설명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한시는 대체로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이백, 두보, 도연명, 소동파 작품을 위주로 골랐으며, 여행길에 지은 저자의 자작시들도 덧붙여 그 흥취를 더했다. 칼을 빼어들고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던 이백의 [행로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속에서도 삶의 기쁨을 찾아가는 소동파의 [적벽부], 한평생 부귀영화를 떠나 진실하고 소박한 삶을 그린 도연명의 [음주] 등 90여 편의 시와 20여 편의 산문이 소개된다.

태산은 대저 어떠한가
제齊와 노魯에 걸쳐 푸름이 끝이 없구나
조물주는 신령하고 수려한 봉우리를 모았고
산의 남북은 어둠과 새벽을 갈랐다
씻긴 가슴에 높은 구름 피어오르고
터질 듯한 눈자위로 돌아가는 새들 들어온다
언젠가 저 산꼭대기에 올라
자그마한 산봉우리들을 한번 굽어보리라
두보, 〈망악望嶽〉

“태산 봉우리들 사이로 피어오르는 흰구름처럼 가슴에도 새로운 열망이 솟아오른다. 눈자위가 터질 듯 결기 어린 눈으로 태산 꼭대기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향해 외친다. “언젠가는 태산 꼭대기에 올라 자그마한 뭇 봉우리들을 굽어볼 것이다!” 산길을 오르며 끝없이 올려다보았던 높고 수려한 봉우리들조차 태산 꼭대기에 서 있는 내 발아래 작게 엎드릴 것이다. 세상에 지존한 존재로 우뚝 설 것이라는 야무진 꿈을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선포대로 두보는 시의 나라, 시의 영토에서 지존한 존재인 시성 詩聖이 되었다. 태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너도나도 이 구절을 읊어대니 1,300년 전, 이곳 태산에 올라 호기롭게 외쳤던 두보의 음성이 아직도 태산을 감돌고 있는 셈이다(430-431쪽).”

 

역사와 전설 속 영웅호걸과 인물들의 일화
지역의 독특한 풍습과 다채로운 향토 음식

 

시인들 외에도 역사와 전설 속 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등장하며 장쾌한 여정이 이어진다. 가령 6장 강소성에서는 오강진에 조성된 항우의 사당 패왕사(120쪽), 밥 한 끼를 천금으로 되갚은 한신과 표모의 유적 한신고리(140쪽) 등 [초한지] 인물들과 관련된 고적을 유람하며 그 일화를 소개한다. 또한 글자가 달라도 발음이 유사하면 뜻을 공유하는 중국의 독특한 문화인 ‘해음문화’(361쪽)와 우리가 중국인을 낮춰 부를 때 사용하지만 실은 돈을 관리하는 사람을 뜻하는 ‘장궤’라는 말에서 비롯된 ‘짱깨’(264쪽), 용문 밑 협곡에서 용이 된 잉어는 일 년에 수천 마리 중 72마리뿐이었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등용문’(296쪽) 등 널리 쓰이는 말들의 어원도 함께 전하며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층 넓힌다.


또한 각 지역의 다양한 향토 음식과 현지 주민과의 웃음 만발한 에피소드를 소개해 여행의 묘미를 더한다. 공중으로 들어 올려 몇 차례 빙빙 돌려 휘감아 먹는 얇은 수육 ‘리쫭바이러우’(29쪽), 큼직한 밀가루 반죽을 채칼로 빠르게 썰어내 눈으로 보는 재미가 있는 ‘도삭면’(264쪽), 튀긴 잉어 위에 새콤한 소스와 튀김 면을 얹은 ‘리위뻬이멘’(382쪽) 등이 등장한다. “옆자리에 앉은 중국인이 뺭뺭멘을 먹을 때는 섬서성 사람들처럼 접시를 손에 들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먹어야 제맛이 난다며 시범을 보여준다. 말 잘 듣는 학생을 만나 신이 난 이 양반은 이번엔 생마늘 한 쪽을 가져와서는 마늘을 함께 먹어야 맛있다면서 직접 까서 면 그릇에 던져준다. 그들이 하는 대로 마늘 한 쪽을 통째로 먹었다가 얼마나 매웠는지 눈물이 쏙 빠졌을 정도였다. 이런 어설픈 내 모습에 다들 가가대소하며 조그만 면집에 활기가 가득 넘쳤다(309쪽).”

여행은 물론이고 집 밖에 나서기조차 쉽지 않은 요즘,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과 책에 그득한 풍성한 이야기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준다. 옛 사람들의 아득한 사연, 호방한 기상과 풍류를 두루 함께 맛보며 책을 한달음에 읽은 독자 중에 아마도 후속작 출간을 기다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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