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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자본주의 수용 양상과 그 전제
한국인들의 자본주의 수용 양상과 그 전제
  • 김채수
  • 승인 2021.03.16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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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글로벌시대의 도래와 홍익종군의 정신 16

한국인들이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수용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또 그것의 정착화는 1962년부터 추진됐던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개획’ 등을 통해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전제로 해서 그러한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던 것인가? 당시 북한에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체제가 들어섰다. 그러나 당시 남한은 그것에 대립되는 자본주의 진영의 정치체제를 취해 이승만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는 차후 그 체제가 한국사회에 가져올 그 폐해를 제어해 갈 수 있는 어떤 사상이나 사회적 제도 같은 것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상 당시 남한에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체제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종교·경제·사회, 그리고 정치적 부작용까지를 우려해볼 수 있는 어떠한 정신적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문호개방이후 한국사회에는 미국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개신교와 그 개신교 사회문화의 전파 운동이 저돌적으로 행해졌었다. 그 결과 3·1운동 당시까지의 30여 년 간의 기독교인의 수는 20만명(전 국민의 1.5%) 안팎에 이르렀다. 해방이후 북한의 기독교인들의 태반은 종교 활동 그 자체가 금지되었던 공산주의사회체제에 반대해 월남했고, 그들이 월남한 남한은 그 초대 대통령이 미국의 개신교 장로 이승만 박사였다. 이렇듯 사실상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개신교세력이 주축이 되어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자본주의진영의 최전방에 수립된 정부였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개신교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해서 수립된 당시의 이승만 등과 같은 정치적 지도자들은 차후 자본주의가 야기할 경제적 불평등 등의 문제들을 단순히 기독교의 박애주의로 제어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고찰된다. 그러니까 필자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에게는 그 박애주의를 전제로 한 한국사회의 자본주의화였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의 정치적 지도자들이 생각했던 것으로서의 자본주의진영의 맹주였던 미국이 남한에 대해 베풀어 갈 수 있었던 박애주의란 우선 일차적으로 소련과 중공의 공산주의세력으로부터 남한의 ‘철통같은 보호’라고 하는 정치적·군사적 차원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시의 정치지도자들이 생각했고, 또 미국이 한국에 대해 취해온 그러한 박애주의라는 것이 결국은 자기보호와 자기이익의 쟁취를 위한 고도의 위선적이고 기만적 행태의 것으로 판명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그러한 행태도 거시론 측면에서 말해볼 것 같으면, 사실은 자본주의가 우리사회에 가져다준 폐해들 중의 하나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당시 개신교도들이 아니었던 9할 이상의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도 사실은 그러한 폐해들을 제어해갈 수 있는 그렇다할 대안이 전혀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일제가 한국민족의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단군조선’과 관련된 일체의 것들, 예컨대 ‘단군신화’ 등과 같은 용어들의 사용까지도 억압해 갔었던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인들은 사실상 한국을  식민지국으로 내몰았던 미·일의 자본주의정책들 그 자체에 대해서도 대단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설혹 우리가 그러한 상태에 처해 있었기는 했었지만, 우리가 서구의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때 응당 우리가 전 국민적 차원에서 결의했어야 했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이 처해 있는 사회와 세계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지 간에 홍익인간이라고 하는 삶의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해가야한다고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홍익인간을 전제로 한 자본주의의 수용이라는 전 국민적 차원의 결의가 정치적 차원에서나 국민 교육적 차원에서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것이 완전 불가능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해방 전에는 일제의 그러한 식민지상태였었고, 해방 후에는 남한의 경우 미·일의 자본주의진영의 수호를 위한 ‘철통같은’ 안보체제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김채수 전 고려대 교수‧일어일문학
일본 쓰쿠바대에서 문예이론을 전공해 박사를 했다. 2014년 8월 정년퇴임에 맞춰 전18권에 이르는 『김채수 저작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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