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9-20 09:11 (월)
[글로컬 오디세이] 한 중앙아시아 지역학 연구자의 고민
[글로컬 오디세이] 한 중앙아시아 지역학 연구자의 고민
  • 정세진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HK교수
  • 승인 2021.03.17 0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컬 오디세이_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 소재 사만왕조 창건자 이스마일 소모니 기념비

 

필자는 ‘러시아 역사’ 전공자이다. 그런데 HK 사업의 매년 아젠다 결과물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러시아, 코카서스, 중앙아시아의 역사 및 지역학을 모두 섭렵하면서 연구를 수행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중앙아시아 지역 연구 관련, 개인의 간결한 ‘단상’(斷想)을 피력하고자 한다. 

중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옛 소련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5개의 소위 ‘스탄 국가’에 더불어 중국의 신장 위구르 등 대표적인 동투르키스탄 지역, 티베트,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를 망라한다.

이 지역은 과거 실크로드 문화권이었다. 실크로드가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대상(隊商)들이 인류 문명의 보고를 창조했다. 오아시스 문화와 정주문화, 스텝 지대 유목문화의 찬란한 유산이 남겨진 공간으로 중앙아시아는 무수한 제국 문명의 중심지였다. 페르시아 문화, 몽골 문화, 투르크 문화, 슬라브 문화, 그리고 다양한 유목민족 문화가 혼성되어 문명의 공존을 이루어 왔다. 그러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새로운 세계 지도가 만들어지면서 15개의 신생 공화국이 출범했다. 중앙아시아 각국은 소위 ‘민족국가’로서는 역사상 최초로 현대적 국가가 된 것이다.

 

한국엔 아직 낯선 ‘실크로드 도시들’

 

중앙아시아 지역 연구를 하면서 상심을 안겨주는 사건과 마주하기도 했다. 특히 2005년 우즈베키스탄 ‘안디잔’에서는 정부군의 학살로 많은 시민들이 무고하게 살해됐다. 이는 2004년 러시아연방 자치공화국 북오세티야공화국의 베슬란초등학교에서 수백 명의 초등학생 아이들이 희생당했던 인질 사건 당시 느낀 감정과도 겹친다. 국가 내에서 협상, 타협, 조정, 중재, 화해가 없이 비극적으로 끝난 사건이었다.

 

우즈베키스탄 동쪽 끝 도시 안디잔에는 2005년 5월 카리모프 독재 정권에 학살당한 희생자들이 이름도 없이 묻혀 있다. 사진=AP/연합
우즈베키스탄 동쪽 끝 도시 안디잔에는 2005년 5월 카리모프 독재 정권에 학살당한 희생자들이 이름도 없이 묻혀 있다. 사진=AP/연합

 

짧은 칼럼이라서 많은 내용을 말할 수 없지만, 연구자로서 지역학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중앙아시아 국가 정체성, 민족 정체성, 사회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해왔음에도 개별 국가에 대해 특정 주제를 파기보다는 중앙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삼다 보니 ‘내가 진정 중앙아시아 전문가인가’하는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해당하는 고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국가기관에서 ‘타지키스탄’에 대한 자문 글을 요청해왔다. 자문 대상은 타지키스탄 국가에 관한 ‘모든 사항’이었다. ‘한국 최고의 타지키스탄 전문가로 소개를 받아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타지키스탄 논문을 국내에서 많이 쓴 편이긴 하지만 타지키스탄에 ‘올인’한 연구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일면 착잡했다.

 

수교 30주년 앞두고 지역 연구자의 자질을 묻다

 

또 한번은 한 출판 프로젝트에서 ‘조지아’의 대외정책과 국제관계에 관련된 필자로 초대를 받았다. 역시 조지아 관련 논문을 많이 쓴 연구자 중의 한 명이기에 초청받은 듯한데, 엄밀하게 말하면 필자는 역사 전공자로 대외정책과 국제관계 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일본인 조지아 전문가는 조지아어를 구사할 수 있고 조지아어로 된 자료에 접근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다. 학문에 있어 지역 전문가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 여전히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민간기관과 국가기관의 여러 인문과제와 정책과제를 통해 중앙아시아 관련 글을 써왔다. 부단히 노력했으나 진정한 지역 전문가의 소임을 다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세계사적 전환의 시대다.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현재 중국은 스탄 국가들 이외에 파키스탄 등에 ‘일대일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단일한 지역으로 간주하고 새로운 차원의 철도, 도로 등을 개설하고자 시도하는 중이다. 이미 이 지역에서 ‘신 실크로드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해는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수교 30주년이었다. COVID-19 탓에 제대로 된 행사도 없이 지나갔다. 오는 2022년은 대한민국과 중앙아시아 국가 간 수교 30주년이다. 중앙아시아 지역 연구 대상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아직 연구되지 못한 분야도 너무나 많다고 생각한다. 학계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가 정책에도 활용될 일이 많다. 중앙아시아에 대해서도 훌륭한 지역 전문가가 많이 배출되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기원해본다.

 


 

 

 

정세진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HK교수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중앙아시아 민족정체성과 이슬람』(2012, 한양대출판부), 『러시아 이슬람: 역사, 전쟁, 이념』(2014, 민속원)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