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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친구를 찾아서...'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사라진 친구를 찾아서...'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 김재호
  • 승인 2021.03.09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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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 심혁주 지음 | 궁리 | 284쪽

티베트학자인 심혁주 한림대 한림과학원 연구교수가 '소리'와 '냄새'를 분석했다. 책의 부제는 '이 세상의 냄새를 상상하는 시간들'이다. 디지털의 세상, 눈과 혀가 대접 받는 시대다. 티베트학자 심혁주가 전하는 귀와 코에 관한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소리와 냄새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존재방식이다!

독수리의 밥으로 사람의 시신을 공양한다는 티베트 조장(鳥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림대 심혁주 교수가 그간 티베트에서 보고 듣고 상상한 이야기들을 ‘소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2019년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는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는 저자가 ‘소리의 친구’로 살고 있는 티베트 라마승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물질과 소유, 속도와 빛나는 것을 향해서만 박수를 치는 ‘혀’의 세상에서 그들이 소중히 하는 ‘귀’의 세상을 이야기했다.

이번에 펴낸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는 어느 날 티베트로 사라진 대만 친구 리우저안을 찾아가는 여정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친구의 부모님이 전한 편지와 그가 남긴 불교사원의 주소만 가지고 떠나는 여행길에서, 저자는 상상과 동경을 곁들여 ‘냄새’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대만 친구 리우저안은, 저자에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사유와 침묵의 시간을 전해주는 선(善)한 사람이었다. 책 속에서 저자와 친구 저안의 우정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은 부분은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코너에 아련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친구를 떠올리며 글을 써내려갈 때도 그의 몸과 얼굴보다는 ‘냄새’에 집중하면서 함께했던 시간들을 기록했다.

“냄새는 솔직합니다.
결정적으로 그 사람이 내부에 숨겨놓은 다양한 모습이
결국 냄새를 통해 드러나거든요.”

저자는 눈에 비해 귀와 코가 점점 소외되는 까닭이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요소가 주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속도’와 ‘초연결’을 무기로, 이야기와 관계를 줄어들게 하며, 교감의 감정이 빈약해지게 하는 경향이 있는 편이다.

지난 1년간의 세계적인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들은 누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했다. 어쩌면 그래서 ‘공간이동, 접촉, 여행, 소통, 모임 그리고 사람들의 소리와 냄새’ 같은 소중한 것들을 새삼 절감하고 그리워하게 되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생명의 근간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있고 그것들이 결국 인간을 더욱 인간적인 것들로 만들어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부족하고 결핍된 상황은 인간을 유치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진지하게 죽음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절박하고 간절한 소리와 냄새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흘러나오게 된다. 저자는 티베트라는 곳에서 자신을 최소화하고 타자를 관찰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해왔다. 자신을 작고 작게 만들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것, 그게 열악한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발휘되는 생존의 몸부림이지만, 그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냄새로 기억하는 힘은 강하고 오래가지요. 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냄새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기억하는 것이 좋아요. 그건 위장할 수가 없거든요. 갑옷을 입고 있어도, 두터운 화장을 한다 해도, 자신의 몸 안에서 나오는 그 냄새를 숨길 수는 없어요. 결정적인 순간에는 흘러나오게 돼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티베트의 붉은 나무가 해부사에게 전한 메시지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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