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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로 프로그래밍된 ‘사유’ 뛰어넘기
장치로 프로그래밍된 ‘사유’ 뛰어넘기
  • 강민규
  • 승인 2021.03.10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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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책들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빌렘 플루서 지음 | 윤종석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129쪽

저자 빌렘 플루서(1920~1991)는 2000년 전후 국내 번역본 출간을 기점으로 매체 미학과 커뮤니케이션학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오고 있는 이론가다. 자신의 고유한 코드 이론을 상세히 설명한 『코무니콜로기』, 그리고 매체의 역사에서 정점에 있는 디지털 코드를 분석한 『피상성 예찬』이 주요 저작이라 할 만하다.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는 이들에 담긴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사진 매체에서 입증해 보이는데, 분량은 짧지만 한정된 매체에 집중하는 예시 효과가 뛰어나고 문제의식도 선명하게 벼려져 있다. 

저자에 따르면 코드(Code)란 상징들을 다루는 정돈 체계로서 무언가를 의미하는 역할을 한다. 인류 문명에서 차례로 등장한 전형적인 코드들은 그림, 텍스트, 기술적 영상이다. 동굴 벽화와 같은 ‘그림’은 세계를 의미하고, 그 그림을 선형적 개념으로 설명(의미)하는 문자 ‘텍스트’가 19세기 중반까지 역사를 주도했으며, 이후에는 텍스트에 결여된 상상의 힘을 바탕으로 다시 텍스트를 의미하는 ‘기술적 영상’이 이전 것들을 흡수한다.

 

 자동화된 장치 프로그램의 인간 소외 

이 세 번째 코드의 서두에 놓인 매체가 바로 사진이다. 예컨대 신문 기사 곁의 사진은 단순히 기사 텍스트의 참고 자료가 아니다. 사람들은 개념적・설명적 사고의 부담이 없는 사진에 쉽게 반응하는데, 이때 기사가 가진 개념들이나 인과성은 마술적이고 제의적이라 할 만한 그 반응에 흡수돼버린다. 

기술적 영상으로서의 사진은 본질적으로 조립, 대체, 계산이 가능한 입자들로 이루어진다. 사진기는 미리 프로그램된 ‘장치(Apparat)’로서 일련의 시・공간적 카테고리들을 가지고 있고, 사진사는 그것들을 조합하여 사진을 산출한다. 또 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숱한 탐색들 역시 그 자체로 조합과 선택이 가능한 입자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발상을 밀고 나가면 컴퓨터에서 보듯 모든 경험, 인식, 평가, 행위가 점과 같은 요소로 다뤄질 수 있다. 이리하여 선형 구조 대신 프로그래밍된 조합이라는 스타카토 구조가 도처에서 인간의 사고와 문화를 지배하게 된다.

문제는 오늘날 세계를 뒤덮은 장치들의 복합체가 자기목적적이고 자동적이며, 따라서 인간의 개입을 배제하고 순전히 기능적인 운용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내놓은 대안은 장치 프로그램의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프로그램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굴하여 자유를 확보하는 사진사다. 어려운 과제이지만 사진의 철학은 이를 숙고해야만 한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저자의 글들이 각광받아온 이유는 이처럼 자동적이고 익명적인 장치들의 체계가 인간 생활과 사고를 잠식하는 상황을 통찰하고 해법을 모색했다는 점, 그리고 디지털 매체의 철학적 본질을 간파하여 그 활용 가능성을 예지(豫知)에 가깝게 논했다는 점(『피상성 예찬』)에 있다. 그런데 사실 그의 논의는 유려한 통찰 내용 외에 다른 측면도 주목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매체 기술과 소통 방식 변화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그것의 본질과 역사적 향방을 묻는 해석자였다. 이 역할은 어쩌면 관련 전공자나 이해관계자만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대로 기술적 영상 코드에 대해 사람들이 사실상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채 길들여져 왔다면, 시급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참여하는 소통과 장치들의 체계를 분석하고 성찰하는 경험이다. 저자는 장치 프로그램 아래서의 자유 확보에 관해 엘리트의 역할을 은연중 곳곳에서 강조했지만, 프로그램에 대해 사회적 피드백을 줄 만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소통 방식에 대해 충분한 자의식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더 긴요할 수 있다.

매체 환경 해석의 전범이자 발판

요컨대 플루서의 사유는 현재의 매체 환경에 대한 설명의 전범(典範)으로만 수용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매체 환경 해석을 위한 발판(scaffolding)으로도 여겨져야 한다. 해석은 필연적으로 대상에 대한 주의 집중과 가치 평가를 동반하는 행위로서 대상에 수동적으로 길들여지지 않게 해준다. 그리고 평가 과정에서 대상의 ‘다른 가능성’이 상상되기도 한다. 매체에 관한 교육의 영역에서든 일상적 실천 영역에서든 이러한 해석들이 다수 제출되어 서로 경합・보완된다면 매체 환경의 윤리적 변모 여지가 좀 더 많아지게 된다.

장치 프로그램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굴할 사진사 역시 사진과 씨름하는 나날의 실천 속에서 그것을 해석 대상으로 삼으려는 수많은 의식들 가운데서 더 쉽게 탄생할 것이다. 플루서의 사유는 이러한 해석의 발판으로서도 이미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컴퓨터를 위시한 현재의 첨단 매체들에 시선이 깊숙이 닿아 있고, 사람들이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기초 개념들을 제공해주며, 현 시점에서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그의 일부 예측들조차도 바로 그 실패의 이력이 후속 해석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강민규 
강원대 교수·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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