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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는 엔지니어다, 정치인이 아니라
빌게이츠는 엔지니어다, 정치인이 아니라
  • 정민기
  • 승인 2021.03.05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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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 빌 게이츠 지음 | 김민주, 이엽 옮김 | 김영사 | 336쪽
사진=연합뉴스

빌 게이츠 똑바로 읽기

서점에는 매일같이 기후 위기를 다룬 책이 쏟아져나온다.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생생하게 묘사해서 위기를 조장하는 책도 있고 지나치게 사실만 나열해서 건조한 책도 있다. 문제점만 지적하고 설득력 없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도 있고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해 초점이 엉뚱한 데 맞춰진 책도 있다. 그러나 빌 게이츠의 신간은 다르다. 이 책은 현 상황을 간명하게 분석하고,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며,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가히 10년 동안 수많은 전문가와 교류하며 기후 문제를 공부해온 게이츠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게이츠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치 진영에 따라 책을 해석하는 시선이 다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게이츠가 미국의 ‘정치인’이 아니라 미국의 ‘엔지니어’라는 점이다. 엔지니어의 관심은 ‘상대방 계획 무너뜨리기’가 아니라 ‘문제 해결하기’에 있다. 게이츠가 다룬 문제가 인류의 존망과 관계가 없다면, 각 정치 진영에서 책을 어떻게 해석하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우리 모두의 재앙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똑바로 읽을 필요가 있다. 

2050년까지 우리가 이뤄야할 목표

이 책은 크게 목표·분석·해결책 이렇게 세 꼭지로 나눌 수 있다. 차례대로 살펴보자.

먼저 목표다. “인류는 2050년 까지 순 탄소 배출량(배출량과 제거량의 합산)을 0 이하로 만들어야 한다.” 정말 간단하다.

다음으로 분석을 살펴보자. 인류는 매년 510억 톤의 탄소를 배출한다. 510억이라는 숫자를 잘 기억해두자. 기후 변화 문제를 다룰 때는 큰 숫자에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럽의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매년 1천700만 톤을 제거하는데, 언뜻 보면 큰 수치지만 사실 전체 배출량의 0.03%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가장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산업 분야는 어디일까? 답은 시멘트나 철, 플라스틱 등을 만드는 제조업이다. 31%나 차지한다. 그다음으로 전기 생산(27%), 동식물 키우기(19%), 운송(16%), 냉난방(7%)이다. 사람들은 자동차나 비행기에서 탄소배출이 가장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해다. 탄소 배출을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제조업과 전기생산 분야를 간과하면 안 된다.

기술로 발생한 문제, 기술로 해결한다

마지막으로 해결 방안을 살펴보자. 책에서 스스로 밝히듯 게이츠는 ‘기술 만능주의자’다. 그는 기술 발전으로 발생한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총 19종류의 유망 기술(아래 표)이 나온다. 차세대 원자력 발전소부터 공기 중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 시험관에서 만드는 인공 고기까지 정말 다양한 기술들이 소개된다. 심지어 성층권에 먼지를 뿌리거나 구름을 더욱 하얗게 만들어 태양광을 반사하는 지구공학도 고려된다. 게이츠가 이토록 극단적인 기술까지 고려하는 이유는 현재 상황이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위 기술들은 아직 개발이 덜 됐거나 상용화하기에 너무 비싸다. 따라서 더 많은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또한, 기술 혁신을 위해서 정부와 기업, 대학이 더 적극적으로 협업해야 한다. 

기술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자동차 발명 이후 교통사고 사망률이 매우 높은 것은 날카로운 차유리 때문이었다. 이후 깨지지 않는 안전유리가 발명됐고 사망률은 감소했다. 어떤 기술을 옹호하고자 할 때는 기술 그 자체를 옹호하기 보단 기술의 혁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술 그 자체를 반대하기보단 그 기술의 한계점을 지적해야 한다.

'기술 혁신' 위해선 '정책 혁신' 필수

지구공학이 됐든, 탄소 포집 기술이 됐든, 인류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2050년까지 ‘제로’를 달성해야 한다. 빌게이츠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의 혁신이 최대한 빠르게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새로운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하는 정부의 역할은 기후 문제 관련 기술의 연구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탄소세를 도입해서 사람들이 친환경 에너지를 더 많이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또한, 낙후된 법률과 규제를 검토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이를 상용화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개발된 제품(이를테면 전기차)을 구입하고 투자자들은 혁신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기술 개발을 앞당기는데 도울 수 있다. 

코 앞만 보지 말고 멀리 보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제로에 도달할 수 없는 방안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대신 '탄소포집 설비가 구축된 가스화력발전소'를 지으면 지금 당장 탄소 배출량 감소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스화력발전소는 탄소배출량을 완벽하게 제로로 만들 수 없다. 결국 석탄원료를 태워서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완벽하게 청정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풍력발전소를 세워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빌게이츠는 주장한다.

​시민이자 소비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시민으로서 우리는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이를 실현시키겠다고 약속하는 정치인을 지지해야 한다. 만약 지지할만한 정치인이 없다면 신뢰하는 정치인이나 당에게 계속해서 정치적 메시지를 표출해야 한다. 2050년까지 탄소 제로의 목표를 달성하는 정책을 내놓는 사람에게 투표하겠다고 말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우리는 탈탄소에 일조하는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기업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 수요 측면에서 신호가 보이지 않으면 기업의 혁신은 실험실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빌게이츠는 말한다. 메탄을 발생시키지 않는 배양육(실험관에서 세포증식을 통해 기른 고기)이나 식물성 재료로 만든 인공육을 비싼 값을 주고 사 먹는 것은 해당 기업과 투자자들이 사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고안한

5가지 사고력 도구

:빌게이츠는 기후 변화 문제를 다룰 때 아래 5가지 질문을 항상 떠올리라고 말한다. 기후 변화는 전 지구적 차원이 현상이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숫자의 단위도 크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고의 틀'을 통해 논의를 단순하게 만들어야 혼란을 피할 수 있다.

 

1. 인류는 매년 510억 톤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을 고려해라

유럽의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매년 1700만 톤을 제거한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 엄청 커 보이는 이 숫자는 과연 기후 위기를 막는데 얼마나 기여할까? 답은 0.03%이다. 지구는 매년 51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그중 1700만 톤은 매우 적은 양이다. 이처럼 큰 숫자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기준점이 필요하다. 연간 배출량인 510억 톤을 그 기준으로 삼으면 편리하다.

2. 온실가스 배출에는 총 5가지의 활동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정책에서 시멘트에 관한 조항을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온실가스 저감 계획은 자동차, 전기 같은 내용을 다룬다. 하지만 자동차는 총 배출량의 16%이다. 한편 철강과 시멘트 생산은 전체의 10% 차지한다. 이는 무시할만한 비율이 아니다.

온실가스 저감을 논의할 때는 각 영역마다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 그 비중을 알아야 한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시멘트, 철, 플라스틱)에 31%, 전기 생산에 27%, 무언가를 기르는 것(식물, 동물)에 19%,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비행기, 자가용, 트럭, 화물선)에 16%, 냉난방시설에 7%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3. 얼마나 많은 전력을 말하는 걸까?

탈탄소화된 미래사회는 전기를 많이 소모할 수밖에 없다. 전기 생산을 위해 다양한 친환경 발전소(풍력, 수력, 태양광 등등)가 고려된다. 이때 발전소마다 얼마나 많은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단위 표를 참고하면 유용하다.

4. 얼마나 큰 땅이 필요할지 생각하라

에너지 생산을 위해 필요한 땅의 면적을 고려하지 않으면 막상 토지를 구입하거나 마련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탄소를 배출시킬 수도 있다.

 

5. '그린 프리미엄'을 계산하라

마트에 가면 일반 채소가 있고 유기농 채소가 있다. 후자는 전자보다 조금 더 비싸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면혀면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화석연료가 아니라 친환경 방식으로 만든 깨끗한 에너지는 더 비싸다. 그 차액을 ‘그린 프리미엄’이라 부른다.

그린 프리미엄을 계산하는 목적은 혁신이 필요한 분야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 용이한 지표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 프리미엄이 비쌀수록 탈탄소를 위해 더 많은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잘 활용하면 시간, 관심, 돈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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