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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들의 민주주의
객체들의 민주주의
  • 교수신문
  • 승인 2021.03.0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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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략한 소개 
칸트 이래로 철학은, 마음과 세계 사이의 관계, 그리고 객체에 대한 인간의 접근과 관련된 인식론적 물음들에 사로잡혔다. 『객체들의 민주주의』에서 브라이언트는 우리에게 이런 전통과 단절하고 다시 한번 제일 철학으로서의 존재론에 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브라이언트는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뿐만 아니라 로이 바스카, 질 들뢰즈, 니클라스 루만, 아리스토텔레스, 자크 라캉, 브뤼노 라투르, 그리고 발달 체계 이론가들에게 의지함으로써 자칭 ‘존재자론’(onticology)이라는 실재론적 존재론을 전개한다. 이 존재론은 존재가 온전히 객체들과 특성들,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주체 자체가 객체의 한 변양태라고 주장한다. 브라이언트는 체계 이론가들과 사이버네틱스 이론가들의 작업에 의존함으로써 객체가 조작적 폐쇄성이라는 조건 아래서 세계와 관계를 맺는 역동적 체계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브라이언트는 물질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을 둘 다 제대로 다루는 실재론적 존재론 안에 반실재론자들의 가장 핵심적인 발견 결과를 통합할 수 있게 된다. 존재자론은, 서로 다른 규모에서 온갖 종류의 객체가 다른 객체들로 환원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동등하고, 객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상호작용들의 바깥에 영원한 본질 같은 초월적 존재자가 전혀 없는 평평한 존재론을 제시한다.

2. 상세한 소개
존재론적으로 평등하고 자율적인 ‘객체들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브뤼노 라투르가 강조한 대로, 근대성은 문화와 자연,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혹은 인간 주체와 비인간 객체 사이의 구분이라는 이분법적 구상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사실상 이런 근대적 구상으로 인해 주체로서의 우리 인간은 우리 자신에 너무 몰입하고 세계를 단지 ‘우리에-대한-세계’로서만 파악함으로써 비인간 객체들의 존재 자체를 도외시하게 되었다. 퀑탱 메이야수에 의해 ‘상관주의’로 명명된 이런 경향은 데카르트 이래로 칸트를 거쳐 20세기의 문화적 비판 이론에 이르기까지 지속하는 ‘인식론적 헤게모니’를 뒷받침한다. 
특히 20세기 대륙철학을 주도한 문화적 비판 이론이 세계에서 “바람직한 변화를 산출하는 데 상당히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서 최근에 비인간 객체들에 주목하는 철학적 운동이 ‘사변적 실재론’ 혹은 ‘객체지향 존재론’이라는 기치 아래 객체들의 실재론적 존재론을 전개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인식론적 헤게모니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엄 하먼과 함께 객체지향 철학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끈, 이 책의 저자 레비 브라이언트는 2011년에 대륙철학의 새로운 실재론적 경향에 대한 독본으로서 『사변적 전회 : 대륙 유물론과 실재론』을 편집하는 데 참여했다. 같은 해에 출판된 『객체들의 민주주의』에서 브라이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서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을 함께 엮음으로써 주체와 객체, 문화와 자연 사이의 인위적인 간극을 용해하고 객체들의 실재로서의 동등성을 단언하는 비근대적인 ‘평평한’ 존재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들뢰즈에 기반을 두고서 ‘기계지향 존재론’을 제시한 『존재의 지도』의 전편에 해당하는 시론으로서의 이 책에서 브라이언트는, 하이데거에 의한 ‘존재론적’ 탐구와 ‘존재자적’ 탐구 사이의 구분에 의거하여, 존재 자체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로서 객체들의 특성과 본질을 밝히는 일종의 객체지향 존재론으로서 ‘존재자론’(onticology)을 상세히 전개한다. 특히, 각각의 객체는 현실화되지 않은 역능들 혹은 잠재력들인 ‘잠재적 고유 존재’와 세계에서 관계를 맺음으로써 현실화되는 라캉의 그래프
 성질들인 ‘국소적 표현’으로 나뉘어 있다는 객체의 이겹 구조가 정립되는데, 저자는 이것이 『객체들의 민주주의』가 가장 유익하게 기여한 것이라고 짐작한다. 브라이언트는 잠재적 고유 존재와 국소적 표현을 구분함으로써 “우리에게 존재자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할 때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청한다.” 게다가, 라캉의 성별화 그래프에 의거하여, 저자는 존재자론이 ‘초월성’의 존재론이 아니라 ‘내재성’의 존재론에 해당함을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객체들의 민주주의』는 “그 정치적 제목에도 불구하고, 객체들의 존재론에 관한 책”이지만, 이 책 곳곳에서 존재자론에 기반을 둔 정치 및 사회 이론과 윤리학을 구축할 실마리들이 시사된다. 이 책이 신기술의 증식과 기후변화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대에 “사물들이 우리의 삶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태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개념적 자원”을 제공하는 동시에 “한국에서 객체지향 존재론과 그 수용을 둘러싸고서 새롭고 생산적인 논의가 생성되”는 데에도 기여하기를 브라이언트는 기대한다. 또한, 이 책에서 브라이언트는 로이 바스카, 슬라보예 지젝, 질 들뢰즈, 니클라스 루만, 알랭 바디우, 자크 라캉 등의 관련 작업에 대한 엄밀하고 흥미로운 논평도 제시한다. 
『객체들의 민주주의』는, 하먼이 평가하는 대로, “장점이 많은 책이면서 … 다양한 사상가를 종합한 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일 것이다. 그 책은 … 향후 수십 년 동안 읽힐 법하게 만드는 참신함과 명쾌함으로 특징지어진다.” 기후 위기가 확연해지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우리 시대에 근대성을 성찰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발흥한 사변적 실재론, 객체지향 존재론, 신유물론 등의 새로운 철학적 경향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존재는 평평하다 : 평평한 존재론의 네 가지 논제
브라이언트가 제시하는 객체지향 존재론으로서의 ‘존재자론’이 옹호하는 ‘평평한 존재론’의 네 가지 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객체는 물러서 있다는 논제인데, 그리하여 현전 혹은 현실태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되는 객체는 전혀 없기에 모든 객체는 환원 불가능한 독자적인 실체성의 여지를 언제나 갖추고 있다. 둘째, ‘유일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제인데, 말하자면 모든 객체의 ‘단일한 조화로운 통일체’는 없으며 다양한 관계를 이루는 다수의 회집체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해서 평평한 존재론은 전체론을 배제하게 된다. 셋째, 객체들 사이의 어떤 종류의 관계도 여타 종류의 관계보다 특권적이지 않다는 논제인데, 여기서 브라이언트가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인간/세계 혹은 주체/객체가 어떤 의미에서도 근본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이자 넷째로, 모든 규모에서 온갖 종류의 객체는 그 존재론적 지위가 동등하다는 논제인데, 그리하여 어떤 존재자(혹은 어떤 종류의 존재자)도 여타 존재자의 근원으로서의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브라이언트의 존재자론은 “존재한다는 점에서 모든 객체가 동등하”기에 존재자들 사이에 어떤 주어진 위계도 허용하지 않는 존재론적 평등주의로서 ‘객체들의 민주주의’를 구성한다. 평평한 존재론이라는 틀을 통해서 브라이언트는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이론 및 철학 안에서 인간적이고 주관적이며 문화적인 것들에 대한 강박적인 집중을 줄이”고 “비인간 행위자들에 대한 더 올바른 이해를 계발하”는 활동을 고무하고자 한다.

객체의 이겹 구조 : 객체 = ‘잠재적 고유 존재’ + ‘국소적 표현’
객체지향 존재론으로서의 ‘존재자론’은 독자적인 개체로서의 객체라는 개념을 견지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첫째, 객체는 자신이 맺은 관계들과 자신의 성질들로부터 독립적인데, 브라이언트는 이들 특성을 각각 ‘물러서 있음’과 ‘자기타자화’라고 일컫는다. 또한, 객체는 자신의 성질이 변화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지속하는데, 이는 실체로서 객체의 개별성을 가리킨다. 요컨대, 객체는 자신의 성질을 나타내는 한에 있어서 다른 객체들과 관계를 맺는 동시에 언제나 그 관계들로부터 물러서 있기에 어떤 객체도 자신의 성질들 혹은 관계들로 환원될 수 없다. 따라서 존재자론은,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과 마찬가지로, 상관주의를 비롯하여 모든 종류의 관계주의를 배격한다.
브라이언트는 실체로서 객체의 개별성을 규정하는 것을 ‘잠재적 고유 존재’라고 일컫는데, 어떤 객체의 ‘잠재적 고유 존재’는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그 객체가 성질들을 나타낼 수 있는 역능들 혹은 역량들의 체계를 가리킨다. 한편으로, 브라이언트는 어떤 객체가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나타내는 성질을 ‘국소적 표현’이라고 일컫는데, 그 이유는 주어진 환경이 바뀌면 그 객체가 표현하는 성질도 바뀌기 때문이다. 어떤 객체의 ‘국소적 표현’은 그 객체가 주어진 환경에 감응하는 정동 활동의 결과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객체의 환경이 달라지면 그 객체가 자신의 잠재적 고유 존재를 유지하는 한편으로 다른 성질을 나타내기에 브라이언트는 어떤 객체가 처한 환경을 그 객체의 ‘끌림 체제’라고 일컫는다. 요컨대 우리는, 브라이언트의 객체 모형에 따르면, ‘객체 = 잠재적 고유 존재 + 국소적 표현’이라는 이겹 구조를 얻게 된다.
 이 책에서 브라이언트는 객체의 이겹 구조 모형을 이해하는 실례로서 청색 머그잔의 색깔에 관해 고찰한다. 그 머그잔은 밝은 햇빛 아래서는 파란색을 나타내지만 빛이 없으면 검게 되는데, 말하자면 그 머그잔은 햇빛 아래서는 파란색을 나타내는 역능이 발휘되지만 빛이 없으면 색깔을 나타내는 역능이 발휘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서, 햇빛 아래서 사파이어와 루비는 각각 파란색과 빨간색을 나타내는데, 이는 사파이어와 루비의 색깔을 나타내는 역능, 즉 ‘잠재적 고유 존재’가 각기 다름을 뜻한다. 여기서 어떤 객체의 성질은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발휘되는 그 역능이 산출하는 독특한 사건이고 그 객체가 세계에 드러내는 것은 성질밖에 없다는 사실을 참작하면, 어떤 객체의 실체성은 ‘끌림 체제’와 결부된 ‘국소적 표현’을 관찰함으로써 추정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어떤 객체의 고유한 역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그 객체가 처해 있는 국소적 환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런 결과는 존재자론의 존재론적 통찰이 사회사상과 정치사상과 연계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부분은 전체로부터 자율적이고 전체는 부분으로부터 자율적이다 : ‘기묘한’ 부분전체론
존재자론에 따르면, 모든 객체는 다른 객체들로 이루어진 회집체이면서 모든 객체는 환원 불가능하게도 물러서 있다. 하나의 전체로서 내 몸은 세포들의 회집체이고 내 몸의 부분들로서 세포들도 각각 내 몸에 못지않은 객체이며, 그리고 기업, 정부, 국가 등 다양한 규모의 수많은 인간 및 비인간 존재자로 이루어진 사회적 체계도 마찬가지다. 내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끊임없이 교체되고 사회적 체계의 구성 요소들도 정기적으로 교체되지만 내 몸과 사회적 체계는 하나의 독자적인 전체로서 유지된다. 그러므로 전체는 자신의 부분들로 환원되지 않고 전체의 실체성을 조성하는 것은 그 부분들이 이루는 조직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전체의 부분들도 각각 나름의 조직을 갖추고 있기에 부분과 전체는 독자적인 잠재적 고유 존재를 갖추고 있고, 따라서 “현존하는 것은 부분과 전체가 서로 별개이고 자율적이면서도 서로 관련된 의존성의 관계들”이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통찰은 전체가 저절로 유지되지 않으며 자신의 조직이 해체됨으로써 자신이 소멸하지 않도록 부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실행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회적 체계의 경우에 이런 안정화 작업이 주로 비인간 객체들의 하부구조에 의해 수행된다. 따라서 사회적 변화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비판 이론가들이 예상한 대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속아 넘어간 인간 주체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에 얽혀 있는 방식에서 비롯될 개연성이 높다.” 또한, 이런 통찰에 당연히 수반되는 것은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추동력이 부분들에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다는 ‘희망적인’ 결론이다. 그리하여 브라이언트는, 사회 및 정치 이론가들은 “비인간 행위자와 끌림 체제에 대한 자신의 공명 역량을 증진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3. 책의 구성
이 책은 서론과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에서 브라이언트는, “마침내 주체 없는 객체를 향하여”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와 지향점을 서술한다. 여기서 브라이언트는 데카르트와 칸트를 거쳐 20세기의 문화적 비판 이론에 이르기까지 ‘인간 주체에 대한 세계’에 관한 고찰로 특징지어지는 인간중심적인 근대성 철학이 바람직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을뿐더러 비인간 객체들이 증식하는 현시대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비인간 행위자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주목하게 만드는 포스트휴머니즘적인 세계관을 고무하고자 “인간의 응시에서 풀려나서 독자적으로 현존하는 객체들의 본질”을 반영하는 실재론적 존재론으로서 ‘존재자론’의 윤곽을 제시한다. 특히 저자가 추구한 목표는 “폭넓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분과학문과 실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물음과 기획을 생성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는 책”을 저술하는 것이었음을 밝힌다.
1장 「실재론적 존재론에 대한 근거」에서 저자는, 인간의 응시와 무관하게 “세계는 실험 활동이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되도록 특별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로이 바스카의 초험적 실재론에 의거하여 존재론적 실재론에 대한 근거를 상세히 제시한다. 그리고 인간중심적이고 상관주의적인 인식론적 실재론과 반실재론을 고찰함으로써 현시점에 존재론적 실재론을 구축하는 의의와 당위성이 제시된다.
2장 「실체의 역설」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과 더불어 실체와 성질들 사이의 관계가 탐구된다. “성질들은 변화할 수 있지만 실체는 지속한다는 점에서 실체는 자신의 성질들과 구분”되는 한편으로, 객체의 바로 그 존재, 즉 특이성으로서의 ”실체는 자신의 성질들을 통해서 표현될 따름”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실체의 바로 그 본질이 물러서 있음에 있는 동시에 자기타자화에도 있다”라고 주장한다.
3장 「잠재적 고유 존재」에서 저자는 들뢰즈의 존재론을 소개하면서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구분한다. 저자는 “개별적인 것이 잠재적인 것에 선행하기에 잠재태는 언제나 실체의 잠재태”라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객체의 ‘잠재적 고유 존재’라고 일컫는다. 여기서 ‘잠재적 고유 존재’는 객체의 실체성을 규정하는 것으로서 객체의 역능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잠재적 고유 존재’에서 산출되는 성질을 ‘국소적 표현’이라고 일컫고서 “객체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 행위, 혹은 활동”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해서 3장에서는 ‘객체 = 잠재적 고유 존재 + 국소적 표현’이라는 이겹 구조의 존재론이 구축된다.
4장 「객체의 내부」에서는 니클라스 루만의 자기생산 이론에 의거하여 서로 물러서 있는 객체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저자는 객체의 ‘조작적 폐쇄성’과 주변 환경에의 ‘선택적 개방성’이라는 두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객체들 사이의 관계는 해당 객체들이 상대방 객체에서 비롯되는 교란을 정보, 즉 체계 상태를 선택하는 사건으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리하여 “한 객체가 다른 한 객체와 상호작용할 때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산출되는 번역 과정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5장 「끌림 체제, 부분, 그리고 구조」에서는 객체들 사이의 제약 조건, 부분전체론, 시간화된 구조에 관한 문제들이 다루어진다. 브라이언트는 발달 체계 이론에 근거하여 특정 환경으로서의 ‘끌림 체제’라는 개념을 구축함으로써 객체의 국소적 표현이 특정한 형태를 띠게 되는 제약 조건을 설명한다. 한편으로, 저자는 부분과 전체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면서 부분을 이루는 객체들이 그것들로 구성된 전체로서의 객체로부터 자율적이고 전체 역시 부분들로부터 자율적이라는 ‘기묘한 부분전체론’을 제시한다. 또한, 브라이언트는 객체가 시간의 경과에 따른 해체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을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6장 「평평한 존재론의 네 가지 논제」에서는 ‘존재자론’이라는 브라이언트의 객체지향 존재론이 옹호하는 ‘평평한 존재론’의 네 가지 논제가 라캉의 성별화 그래프에 의거하여 개괄된다. 요컨대 평평한 존재론에 따르면, 어떤 존재자도 여타 존재자의 근원으로서의 특권적 지위를 누릴 수 없다. 평평한 존재론은 “존재한다는 점에서 모든 객체가 동등하다”라는 존재론적 평등주의이고, 따라서 “어떤 객체든지 그것을 한낱 또 다른 객체의 구성물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면서 삭제하는 행위”는 철저히 배격된다.

4. 지은이, 옮긴이 소개

지은이  레비 R. 브라이언트 Levi R. Bryant, 1974~

미합중국의 라캉주의 정신분석가이자 철학자. 현재 텍사스주에 위치한 콜린 칼리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4년에 로욜라대학교에서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분석한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 그 논문을 저본으로 하여 2008년에 『차이와 소여 : 들뢰즈의 초험적 경험주의와 내재성의 존재론』(Difference and Givenness : Deleuze’s Transcendental Empiricism and the Ontology of Immanence)을 첫 번째 저서로 출판했다. 그레이엄 하먼과 함께 객체지향 철학 운동을 이끌었으며 2009년에 ‘세계는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그 운동의 논제를 가리키기 위해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이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2011년에는 들뢰즈와 라투르에 기반을 두고서 ‘존재자론’(onticology)이라는 독자적인 객체지향 사상을 전개하는 『객체들의 민주주의』(The Democracy of Objects ; 갈무리, 2021)를 출판했다. 또 21세기 초에 발흥한 대륙 철학의 새로운 실재론적 경향에 관한 독본으로서 『사변적 전회 : 대륙 유물론과 실재론』(The Speculative Turn : Continental Materialism and Realism)을 공동으로 편집하였다. 2014년에는 ‘세계는 온전히 기계들 또는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주장하는 ‘기계지향 존재론’(machine-oriented ontology, MOO)과 포스트휴머니즘 매체생태론으로서의 ‘존재지도학’(onto-cartography)을 제시하는 『존재의 지도 :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Onto-Cartography : An Ontology of Machines and Media; 갈무리, 2020)을 출판했다. 2006년부터 진지한 철학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온라인 회합 장소로서 <라발 서브젝츠>(Larval Subjects)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옮긴이  김효진 Kim Hyojin, 1962~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였다. 자본세 기후변화와 세계관의 변천사에 관심이 많으며, 블로그 <사물의 풍경>에 관련 글을 올리고 있다. 옮긴 책으로 『네트워크의 군주』(갈무리, 2019)와 『비유물론』(갈무리, 2020),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갈무리, 2020), 『존재의 지도』(갈무리,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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