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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 ‘산책하기’로 퀴어 배제를 배제해보기
[문화 비틀어보기] ‘산책하기’로 퀴어 배제를 배제해보기
  • 김수아
  • 승인 2021.03.03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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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이론 산책하기 | 전혜은 지음 | 여이연 | 630쪽

김수아 교수의 서평 코너를 새롭게 마련한다. 김 교수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이면서, 여성학협동과정 겸무교수를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문화연구, 미디어와 젠더, 영상문화, 여성학 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족과 미디어』(공저),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공저) 등을 집필했다.

자본주의적 인식론을 벗어나는 산책
‘인식론적 겸손’을 강조하다

이 책의 제목은 ‘산책하기’인데, SNS에서는 그 내용의 깊이는 물론 626쪽에 달하는 두께 때문에라도 ‘등반하기’가 더 적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유머가 떠돌기도 했다. 보통 산책로라고 하면 단정하게 포장된 걷기 좋은 평지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산책인 것은 저자 스스로 서문에서 밝히는 것처럼, 생산성과 여가라는 자본주의적 인식론을 벗어나는 ‘일’로서의 산책의 의미, 그리고 지도에는 담기지 않는,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수많은 갈라진 길을 찾아내고 걷는 것을 함의하고 있어서 적절한 은유이기도 하다.

이 산책의 의미는 1장에서부터 분명하게 나타난다. 통상 이론사에서 시도하는 균질한 기원을 따라, 즉 포장로를 따라 걷는 것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선형적, 발전사적 서술이 시스젠더 동성애자가 아닌 퀴어의 역사와 언어를 빼앗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퀴어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를 다각도로 질문한다. 퀴어 리버럴리즘을 경계하고 퀴어 부정성을 설명하는 5장에서는 해당 논의의 의미를 “커브를 틀고 코너를 돌아가며 더듬더듬 구불구불한 길을 개척해 나아가려는 노력(437쪽)”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따라가는 것은 단 한 방향으로 결정된 포장로를 걷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를 확인해주는 정답지를 쥐려고 하는 일 역시 아니라는 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삶을 이루는 모순과 양가성, 불확실성 속에서 사유하는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점을 저자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모순과 양가성을 받아들이는 태도

이 책은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쟁점들을 진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시점에서는 물론 향후 역사적 자료로도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 터프(TERF,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적 여성)주의자의 주장이 어떠한 한계를 갖고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2장의 제목은 “트랜스 멍멍이를 버틀러가 논박하다”이다. 이미 국내에도 버틀러의 저작들이 다수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해설과 해제를 하는 저술과 논문이 많은 상황이지만, 이 책은 버틀러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보다 직접적으로 현재 우리 온라인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독과 무시에 근거한 주장들을 말 그대로 ‘논박’한다. 

이 논박은 역사적 맥락, 서구와 비서구권의 맥락 속에서 어떠한 논의들이 왜 등장했는지 그 위치성을 복합적으로 드러내어 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2장은 저자가 서문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지식을 익히는 것뿐 아니라 “그 자체로 생존 투쟁의 장”인 젠더, 섹스, 섹슈얼리티, 규범, 수행성, 수행적 모순 등의 학술적 개념을 촘촘하게 설명해낸다. 또한, 기존 번역서나 저술에서 나타나는 오역이나 오독의 문제 역시 각주를 통해 꼼꼼하게 지적하고, 참고할 수 있는 국내외 저술을 상세하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비록 포장도로는 아니지만 이 산책로의 고도와 샛길,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물론 주변의 숲 생태계까지도 상세하게 알려주는 섬세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퀴어 이론에 대한 섬세한 입문서

이러한 산책이 필요한 이유는, 규범적으로 안정적인 것이 말하는 쉽고 편하고 반듯한 길에서 밀려난, 포함되지 않은 자의 언어는 이러한 산책과 탐험을 통해 끌어내져야 하기 때문이다. 반려견의 사진이 매장마다 등장하고 글의 저자인 ‘나’의 존재가 계속 환기되는, 워낙 여러 분야에 걸쳐 논의해온 난해하다고 알려진 논자들의 저술을 이리저리 묶었기 때문에 버거울 수밖에 없는 산책길로 안내하면서 “나만 죽을 수 없다”라고 하는 이 책이 어떤 경우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학술적 글쓰기의 객관성이나 중립성에 대한 신화가 오랜 기간동안 규범으로 받아들여져서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나의 위치와 경험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 이 논의를 통해 성별이분법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퀴어의 존재를 낯설게 여기면서 자기도 모르게 퀴어 배제의 논리를 따르던 사람들이 다시 생각하고 자신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혐오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것으로 그 생생한 현실성을 드러낸다.

정치라는 공적 장에서 성소수자를 보지 않을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권리의 담론으로 등장하는 현실이다.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혐오 세력이 변화를 거부하고 고여 있기”(20쪽)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서도 “희망이 불가능한 요구라면 불가능성을 요구하는” 것이 퀴어 이론의 방향임을 강조하면서 마무리되는 이 책은 이 산책이 여하간 새로운 길을 찾아 계속되는, 여가가 아닌 ‘일’이어야 함을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산책로를 끊임없이 개척해나가는 모험가인 반려견이 저자와 백년해로하기를 독자 입장에서도 간절하게 바란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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