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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한비자
  • 교수신문
  • 승인 2021.03.0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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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지음 |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960쪽

 

난세의 군주가 갖춰야 할 통치의 모든 것

 

사마천의 『사기』를 세계 최초로 개인이 완역했던 고전 번역의 대가 김원중 교수(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가 17년 만에 『한비자』의 완역본을 출간했다. 기존의 출간본이 위작시비가 있었던 20여 편을 제외하고 번역 출간했던 것을 이번에 모두 완역하고 기존의 번역도 더욱 가다듬었다. 이번 완역판은 천치여우의 『한비자교석』을 저본으로 삼아, 왕선신의 『한비자집해』 등을 참조하였고, 필요한 경우 여러 판본을 놓고 교감했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제왕들에게 난세를 평정하고 나라를 세워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한비자』는 진시황에 의해 읽힌 뒤, 중국의 통치술에 관한 고전으로 널리 읽혔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고전으로 꼽혀 왔다.

한비자가 제시하는 통치원리는 법 · 술 · 세라는 세 가지에 입각해 있다. 군주가 나라를 통치해야 할 때 가장 의존해야 할 근거로 ‘법’을 들었고, 신하들을 잘 부려 군주의 자리를 굳게 다지는 인사정책을 ‘술’로 들었으며, 군주만이 가지는 유일하고 배타적인 권위를 ‘세’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을 섣불리 믿지 않고 시스템과 정치술을 통해 군주의 자리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입장은 한편으로는 군주 독재일 수도 있으나,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법에 철저히 기반하는 법치주의 정치학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경쟁 체제의 비정함을 체감하고 실제로 군주가 제대로 통치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평생에 걸쳐 모색한 한비자의 목소리는 지금 읽어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법이 무너진 시대, 울분을 토하며 군주를 위해 쓴 제언

 

춘추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난세’였다. ‘전국’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야말로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나라는 나라끼리, 제후는 제후대로 저마다 생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 유세가들은 저마다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방법,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 등을 각 나라의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설파하여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한비자는 그 뛰어난 재능을 펼쳐내지 못하고 울분을 삼키며 『한비자』라는 책에 제후들이 지녀야 할 통치술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한비자는 자신의 고향인 한나라의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부강하게 하는 데 힘쓰지 않고, 실속 없는 인사들을 등용해 실제로 공이 있는 사람보다도 높은 대우를 하고, 유가의 경전에 입각해 왕에게 유세하는 사람들을 총애하다가, 정작 위급할 때는 실제로 싸울 수 있는 무사를 허겁지겁 등용하는 태도에 실망했다. 그래서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왕에게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비자』라는 책을 지었다.

『한비자』가 세상에 나온 뒤 진시황이 우연히 이 책을 읽고 감동하여 한비자를 직접 만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진시황이 직접 한비자를 만난 뒤, 한비자의 친구였던 이사의 모함으로 한비자는 진나라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진시황은 뒤늦게 후회하여 한비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진나라의 통치를 정비했다.

한비자가 내세운 통치론의 핵심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법’, ‘술’, ‘세’가 그것이다. 한비자는 현명한 군주는 제도를 시행할 때 공평하게 원칙을 지키고(‘법’), 인물을 가려 뽑는 데 귀신같이 밝았으므로 군주를 비방하거나 곤경에 빠뜨리는 자가 없었고(‘술’), 권세를 이용해 법을 엄하게 시행해도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백성이 없다(‘세’)고 보았다. 특히 한비자의 ‘법’사상은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행위준칙으로 모든 현실적인 대처에 우선하는 통치의 근간이 된다. 한비자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법조문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어 격려하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벌을 주어 뉘우치도록 하는 원칙을 강조했다. 한비자가 보기에 전국시대의 국제관계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므로 나라의 멸망을 피하려면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현실의, 현실에 의한, 현실을 위한 고전

 

한비자는 무엇보다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들이 고대의 성현만을 숭상하는 태도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한비자는 역사는 진화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견되면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보았다. 유명한 ‘수주대토’의 고사처럼 우연히 죽은 토끼를 기다리며 허송세월하는 태도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한비자의 현실론은 군주와 신하의 기본적인 관계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관계라고 본 것에서 출발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본성을 선하게 보고, 이상적인 고대의 성인들을 답습하려는 유가의 사상을 매우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여겼다.

특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제어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을 ‘법’이라고 본 것은 현대의 관점에서도 획기적이면서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던져준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로서 헌법에 기반한 법치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재력과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은연중 공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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