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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 교수신문
  • 승인 2021.02.1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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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환 지음 | 파람북 | 280쪽

영혼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고 투명한 언어,

고난의 시대를 건너는 깊은 영성으로의 초대!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이 말을 벗들에게, 터널과도 같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이웃들에게, 무엇보다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당신도 그 말을 내게 들려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는 최대환 신부의 성서 묵상집으로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영성의 깊은 울림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지성양성을 담당하고 있는 최대환 신부는 고전과 현대문학을 두루 섭렵한 탐서가, 음악과 영화에 정통한 예술 애호가이며 독일에서 중세 철학, 근대 철학, 윤리학 등을 전공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 특유의 지성과 영성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직조한 아름다운 묵상집이다.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와 신뢰,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긍정의 회복이 일체의 과장과 치장을 허락하지 않는 순결한 언어에 담긴다. 겨울 한복판에서 시작하여 봄의 절정에 이르는 시기를 동반하는 말씀 묵상에서 우리는 “흰 눈이 뺨에 닿은 감각에 깜짝 놀라 기뻐하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맑고 투명한 한 사제의 영혼과 만날 수 있으며, 또한 예술과 철학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광대한 인문적 사유를 만날 수 있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책 제목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는 20세기의 위대한 재즈 아티스트 빌 에반스의 곡 '당신은 봄을 믿어야 해요(You must believe in spring)'를 차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알코올중독, 마약, 형의 자살 등 극심한 고통이 겪다 그 후유증으로 죽어가면서 녹음한 곡이다. 겨울의 끝을 살다 보면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지만, 봄을 믿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바탕에 깔고 있다. 출판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던 첫 책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이 돈 맥클린의 '빈센트(Vincent)'의 노랫말 중 ‘이제 알겠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에서 착안했다는 것, 그가 현재 가톨릭 평화방송(Cpbc)에서 ‘최대한 신부의 음악서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지독한 음악 중독자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전문가급 예술 애호가이다.

저자의 내면에는 늘 ‘무지개를 바라보는 천진한 아이’처럼 아름다움을 향한 순수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잡식성 탐미주의자는 절대 아니다. 저자가 예술을 통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철학적 이해, 신성(神聖)에 다가가려는 의지의 숭고함, 세계와 인간 그리고 신의 이상적인 관계, 영성의 깊고 심오한 전율 등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이번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비단 예술의 영역만이 아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베토벤이 말년에 남긴 현악 사중주 마지막 악장 악보 위에 남겼다는 메모는 유명하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인내와 의지로 고통을?이겨내고 인생과 작품에 있어 높은 경지에 이르렀던 베토벤의 진지한 삶의 태도와 고뇌에 찬 결단을 예로 들어 저자는 ‘말씀은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실행해야 한다’라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전한다. 자주 말씀을 접하면서 실행하지 못하는 우리의 나약한 마음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의 세속화와 현실도피의 경향에 대한 비판에 대해 저자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대한 오해가 있다 하더라도 성찰과 쇄신의 노력이 따라야 함을 피력하면서 정치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를 인용한다. 중세의 그리스도교가 놀라운 정신사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세계경멸Contemptus Mundi’의 사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세계사랑Amor Mundi’의 사상으로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태어 그는 자신의 안위에만 집착하지 않고 올바르고 자유롭게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이상이자 특권이며 증언해야 할 가치임을 강조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바닷가에 죽은 나무를 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 소년은 늙은 아버지가 들려준 한 수도승의 전설에 따라 바닷가의 죽은 나무에 물을 준다. 우리에게 가해지는 불의와 고난을 생각하면 부질없어 보이는 일이지만, 저자는 고목에서 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며 물을 주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걸어가고 헌신하는 사람만이 새로워진 자기 자신과 만날 것임을 말한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의 묵상이다.

그의 묵상에 등장하는 예술가와 사상가, 영성가와 철학자의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언뜻 버겁게 느껴질 듯도 하지만, 그들의 관념적이고 난해한 개념들이 저자 특유의 친절하고 겸손하기까지 한 구어체에 담기면 쉽고 편하게 다가온다. 철학은 결국 운명과의 대화이므로 종교와 긴밀한 관계에 놓인다. 어떤 운명도 고통을 피해갈 수 없으니, 철학이든 종교든 인간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고통을 인정하고 거기에 선을 더해 행복을 추구할 것, 더불어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할 것을 권고한다.

저자는 나가는 글에서 저명한 고고인류학자이자, 독창적이며 영감에 찬 철학자이고 신학자였던 삐에르 떼아르 드 샤르댕 신부를 거론하며,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모시키는 유일한 힘은 사랑이며, ‘오직 사랑만이 남을 것’이라는 그의 신념에 힘을 싣는다.

겨울 한복판에 봄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다. 추운 겨울 지나고 봄이 맞이하면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새로운 힘이 솟아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봄을 말할 때는 비단 계절의 봄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힘겨운 시간을 보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견뎌내는 바탕은 ‘지금여기’다. 결국 봄은 마냥 기다리기보다 봄을 갈망하는 ‘지금여기’에서 굳세게 이겨내고 다져가면서 맞이해가는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을 힘겹게 견디면서 ‘일상의 회복’이라는 봄을 갈망하고 있다. 하여 비단 팬데믹뿐만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힘겨운 상황을 견뎌내는 내적 힘을 키우는 것이 소중하다. 최대환 신부의 인문학적 성서 묵상은 우리 내면의 힘을 키워가는 소중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계절의 봄, 인생의 봄, 세상의 봄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봄을 향해 달려가는 힘을 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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