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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_파리 뤽상부르그 미술관 ‘나! 20세기의 자화상’ 展
미술비평_파리 뤽상부르그 미술관 ‘나! 20세기의 자화상’ 展
  • 김상채 파리통신원
  • 승인 200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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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존재를 향한 화가의 시선

그동안 미술사에 업적을 남긴 거장들의 회고전이나 왕성하게 활동하는 생존 작가들의 개인전이 주류를 이뤘던 파리 미술계에 오랜만에 흥미로운 주제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사학자로 25년간 자화상 연구에 몰두했던 파스칼 보나푸가 기획한 ‘나! 20세기의 자화상’展이 파리의 뤽상부르그 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것. 이번 전시는 그가 몇 년 전 메디치 궁정의 연구원으로 있을 때 우피치 미술관의 자화상도록 작업에 참여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1천 43점이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화상을 소장한 우피치 미술관은 17세기에 추기경 레오폴드 데 메디치가 수집하기 시작한 80여 점을 코시모 3세에게 기증하면서부터 자화상을 소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소장품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자화상만을 위한 전문 갤러리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자화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예술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自畵像 또는 自刻像을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구체적인 문헌자료나 서명작품이 남아 있지 않아서 작가의 존재를 알 길이 없다. 대체로 르네상스시대부터 자화상이 시작됐다고 하지만, 중세 때 성경의 필사본 가장자리에 필사자의 모습을 그려 신에게 봉헌하는 작업에 자신이 참여했음을 기록했던 작품들이 남아 있어 문헌상 최초로 자화상이 그려졌던 시기는 12세기부터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기, 엑스트라식 자화상의 강렬한 눈빛

주로 수녀들이 참여했던 이러한 작업에는 회화적 특성이나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서명으로서의 의미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격적인 자화상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 제작된 시기는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서다.

르네상스시기엔 인간에 대한 자각과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기 시작한다. 초기 자화상 형식은 단독이 아닌 다른 인물 속에 작가가 끼어드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행렬’이라는 메디치 궁정의 벽화 속에 작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채양없는 빨간 모자에 ‘베노초의 작품’이라고 명기함으로써 작가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비너스의 탄생’으로 알려진 보티첼리 역시 산 로렌초 성당의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작품에 자신을 함께 그려 넣었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명의 등장인물들 속에서 유일하게 감상자에게 눈을 맞추고 있는 이 작가들의 당당한 눈빛은 르네상스시기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존재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예술품속에 작가자신을 알리는 최초의 예술가 광고가 된 셈이다. 이 밖에 르네상스시기에 한스 멤링,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작가들이 자기 작품 속에 작가가 끼어 드는 엑스트라식 자화상들을 그렸던 화가들이다. 반면에 최초의 단독 자화상으로는 필리피노 립피의 것이 있다. 약간 벌어진 입과 부드럽고 선한 눈빛, 그러면서도 우수에 젖은 분위기, 비록 크지 않은 작품이지만 한 예술가의 외형적 특성뿐만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까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후 자화상은 다빈치, 뒤러, 렘브란트, 세잔, 고흐, 피카소 등 세계의 대가들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예술가들이 畵題로 다루면서 급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이 전시는 1900년 드가의 자화상부터 2000년 얀 페이 밍(중국)의 것에 이르기까지 1백년의 미술사이며, 20세기 역사를 자화상을 통해 읽어 낼 수 있는 밀도 있는 전시로 평가받고 있다. 회화, 조각, 사진, 등 약 1백 5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여섯 개의 섹션으로 구분해 기획자가 의도한 주제가 확연히 드러나도록 구성했다.

‘공통점과 차이점’ 섹션에서는 전통적인 사실주의적 자화상과 작가의 모습은 없고 기호화됐거나 서명만 남긴 ‘사인 자화상’(뒤샹), 문자화된 자화상 ‘나를 보세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벤) 등을 통해 작가와 작품사이의 관계, 그리고 전통방식과 현대적 자화상의 개념을 대비시킴으로써 자화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거에 부숴 버린다. 익살과 웃음의 다양한 감정표현을 담아내고 있는 ‘가면과 표정’에서는 인간의 허울을 보여주고 있다. 1917년 미군 징병 포스터와 나치의 유태인 만행 같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초상과 나아가 시대 속에서 변신을 꾀하는 예술가들의 새로운 도전의 모습을 다룬 '역사와 변신'에선 예술가들이 자화상을 통해 시대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자화상 속의 작가와 관객이 마주 바라보는 ‘아틀리에와 시선’은 “누가 누구를 보는가?” 라는 질문으로 정작 우리가 작가의 자화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마치 작가들이 자신의 시간 속에서 21세기 우리들의 자화상을 바라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거울과 사진’은 항상 또 다른 이미지다. 우리는 거울이나 사진이라는 매개물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바라볼 방법이 없다. 거울은 자화상의 필수조건이면서 거울 속의 허상을 본 딴 것이 작품인지, 그리고 예술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 준다. 어쩌면 이 전시의 핵심은 단지 시각적 차원을 벗어나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예술작품으로서의 자화상이 아닌 존재의 문제로서 자화상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던 전시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에 존재하는 인물,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 이미 주체와 객체가 전도돼 버린 이 전시회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파스칼 보나프가 의도했던 이번 전시의 화두다. “나는 누구인가?”

드가부터 시작해서 마티스, 피카소, 키리코,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만레이, 미로, 헨리 무어, 세자르, 워홀, 베이컨, 신디 셔먼, 바스키아 등 20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예술가들을 총 망라하고 있어서 20세기 작가들이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의 다양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입체파를 필두로 숨 가쁘게 진행됐던 20세기 미술사조의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나르시스의 자기애로부터 발원한 예술가들의 자화상, 이것은 자신을 시간 속에 박제시켜 영원히 현존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마지막 선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상채 / 미술사 파리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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