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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과학사상'이 제안한 과학기술 출판 커뮤니케이션
진단: '과학사상'이 제안한 과학기술 출판 커뮤니케이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6.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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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위주 교육과정이 가장 큰 걸림돌

과학계를 닥달한 ‘이공계 위기’가 나라 안을 배회할 때, 한 편에서는 긴 안목의 논의보다 화려한 이벤트나 떠들썩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요란했다. 과학기술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모양새였지만, 위기 혹은 중병의 ‘급소’를 제대로 가격한 치유책은 될 수 없었다. 최근 ‘과학사상’ 제48호(2004년 제1권)에 이와 관련, 눈길을 끄는 글이 실렸다.

글의 주인공은 도서출판 지호의 장인용 대표. 그가 기고한 글의 제목은 ‘과학기술 출판, 그 커뮤니케이션을 위하여’다. 출판으로 밥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여럿 있지만, 이 출판사 장인용 대표는 그 가운데서도 ‘과학 교양서’로 명맥을 잇는 이다. 교수신문 역시 학술서 출판의 문제로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의 일단을 지면으로 나눠, 한 출판사 대표의 고뇌와 함께 여운을 남긴 바 있다(교수신문 317호, 318호). 장 대표의 ‘과학도서 출판’을 위한 제언은 같은 선상에서 문제를 곱씹어 볼만한 성질의 것이다.

일단, 그의 내력부터 관심을 끈다. 인문학의 세례를 받은 그의 내면을 발전시킨 것은 전파과학사와 범양사다. 그는 이 두 출판사를 통해 해외에서 건너온 과학도서를 흡입하면서 성장했다. 헨리 페트로스키의 ‘기술의 본질과 역사’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젊은 시절의 과학도서 읽기가 가져다준 선물의 힘이다. “아마도 1970, 1980년대에 전파과학사나 범양사의 선구적인 과학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과학 출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그는 고백한다.

장 대표에게는 ‘무엇 때문에 교양 과학서를 내야 하나’라는 자기 질문이 강력하게 던져져 있다. 그가 단행본 형태의 과학기술 도서에 주목하게 된 것은 매스 미디어로서의 적절한 탄력성과 함께 과학기술 대중화에 발빠르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2천부도 채 팔리지 않은 책들이 아직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람들을 키워내고 있다. 이를 조금 더 확대하면, 아동?청소년?일반인의 교양을 위해 지속적인 고리를 만들 수 있으며, 이는 당장 보이는 효과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다”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가 과학출판에 뛰어든 배경도 그런 2천부도 채 되지 않는 과학서들을 탐독했던 지난 시절의 경험과 무관치 않으니, 그의 지적은 온당하다.

장 대표는 과학기술서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더 많은 책들을 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는 척박한 한국의 과학교양(전문)서 시장 상황과도 밀접한 문제다. “(5만부, 10만부씩 발행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의 경우 초판 발행이 3천부를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심지어는 1천부씩 찍는 책들도 흔하다. 이렇듯 과학기술 교양서의 판매가 부진한 것이 이 분야의 책이 활발히 나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고, 이는 곧바로 과학기술에 대한 전체적인 무관심으로 이어진다”고 그는 진단한다. 인구가 거의 배나 늘어난 지금조차도 전파과학사와 범양사 시절의 부수를 크게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교양서 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 과정’을 도마위에 올려 놓았다. 과학은, 철학이나 수학처럼 지적 흥미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시험을 봐서 점수를 따야 할 대상”이며 “지겹고 어려운 과목이며, 시험만 끝나면 다시는 알고 싶지도 않는 그런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 학생 시절의 이 같은 무관심과 호기심 증발은 대학생이나 사회인이 돼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증이 아닐 수 없다. 장 대표는 근래의 ‘이공계 위기’도 결국은 입시위주의 과학교육의 결과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 교양서가 이만큼밖에 팔리지 앟는 상황에서 이공계 기피는 필수적인 현상”이라는 것.

과학도서 시장은 더 확대될 수 있다. 출판시장 부흥이 과거와 같은 이공계 부흥을 가져다 줄 지는 불분명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국내의 경우 청소년, 성인용을 합쳐 과학기술 교양서라고 할 만한 책이 1년에 3백종을 넘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가 과학기술 출판의 커뮤니케이션을 외치는 것도 이런 상황을 전제해서다.
걸림돌과 가능성 부분을 지적했으니, 이제 차례는 ‘가능성’을 확대하는 일이다. 장 대표에게 어떤 복안이 있을까. 그는 세 부분의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지식을 알기 쉽게 풀이해 전달할 수 잇는 필력을 지닌 저자군, 예컨대 영미권의 칼 세이건,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파인만, 린 마굴리스, 헨리 페트로스키 등 별과 같은 과학기술 분야의 베스트 셀러 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과학기술분야의 열악한 국내저자집단을 떠올리게 만든다. “저자군이 희박하기에 일 년에 발간되는 국내 저자의 책도 의미있는 교양 과학기술서의 경우 열 권을 채 넘기기 힘들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물론 저자군이 형성되지 않는 몇가지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전공자들의 학문에 대한 엄숙주의. 그는 “대학에서 연구 논문 이외의 글씨기를 백안시하는 경향이 짙다”라고 질타하면서, “모든 전공자가 대중성의 집필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각 학문 영역별로 대중적인 저자를 선발해 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함도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둘째는 대학이나 연구기관 그리고 당국의 무관심을 들 수 있다. 강단 학자들은 연구나 강의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에 과학대중서를 쓰기가 쉽지 않다. “저술기금이나 지원을 통해 대학이나 연구소에 부담을 덜어주고 보다 안정된 상태에서 집필에 전념하게 함은 당국이나 공익재단에서 힘써야 한다”라는 그의 주문은, 비단 과학출판에만 한정되지 않는 폭넓은 요구일 것이다. 셋째로 저널의 부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대중적인 의미에서의 글쓰기를 촉진하지 못하는 요인이다. 훌륭한 잠재적 저술가의 활동을 막고 있는 저널 부족 현상 역시 시급히 타개해야 할 문제다.

저술가 집단의 부족만이 문제가 아니고 과학기술 번역자의 양성도 문제다. 적절하고 전문적인 번역자가 부족하다보니, 근래에 들어와서는 이미 저작권 계약이 완료된 책마저도 번역자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과학기술서의 번역은 해당 언어나 국어 문장 실력만 가지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번역자의 과학기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고난도의 작업”이라는게 이 바닥 전문가의 고백이다. 장 대표는 이 부분 역시 ‘과학기술서 번역 기금과 같은 공공의 역할’론을 강조한다.
일손 부족한 편집 부문도 중요한 문제다. 안목을 갖춘 편집자가 얼마나 중요하냐는 문제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출판계의 영세성과 인재 양성에 등한시한 결과기도 하지만, 이공계 출신 편집자가 드문 한국적 상황도 간과할 수 없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굳이 과학기술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과학기술에 대한 폭넓은 소양과 이해를 갖춘 편집자의 탄생은, 동어반복이긴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과학기술 책들을 읽고 내면을 키운 인재의 탄생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과학기술서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전부일까. 해외 저작권료가 그런 장애물의 하나다. 최근 국내 출판사들간의 과당 경쟁으로 유명 저자의 저작권료의 선불금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과학쪽도 예외일 수 없다. 장 대표는 “2천~3천부도 제대로 소화해내기 힘든 실정에서 저작권료의 선불금이 높아간다면 과학기술서를 출간하려는 많은 출판사의 의욕을 꺾을 위험이 있다”라면서, “출판사들간에 남이 선점한 것은 넘보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한 있으면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작권료 문제와 함께 거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서의 다양한 독자군과 난이도 문제다. 잘 팔린다고 해서 어느 한 부분만을 공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장 대표는 청소년기에 흥미를 유발하고, 이를 다시 체계화하는, 장기 출판 전략을 제시한다. 

과연, 과학기술서 출판의 황금시대를 가능할까. 이 대목에서 장 대표의 제언은 아주 익숙한 목소리로 들려온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많은 역할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능력있는 저자와 번역자의 발굴과 지원에 힘쓰는 방법은, ‘과학기술저술번역기금’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장에 과학기술 출판에 몇 푼 보태거나, 우수 출판물을 구입해 배포하는 것 등은 미봉책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콘덴츠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만이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성과물의 소유권 문제는 “지원은 지원에 그쳐야 하고 그 성과물은 개인의 공로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는게 장 대표의 지론. 그는 미국의 국립인문기금이나 구게하임 펠로 같은 공익성을 지닌 지원은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과학서를 내는 출판사들에겐? 공공적인 통로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공동도서관, 대학도서관, 각급 학교 도선관에 적합한 책이 제대로 공급될 수 있게 ‘공공성’을 확립해 달라는 주문. 절박한 출판인의 목소리다. 교과과정의 개선, 과학 저널에 대한 지원 등도 물론 덧붙이고 있다.

장 대표의 제언을 따라가다보면, 이 실타래가 한 데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을 철학, 수학 등 기초학문의 이름으로 바꿔 놓아도, 거의가 딱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학문과 출판은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장 대표는 바람직한 환경을 주문했지만, 그 전제는 철저한 학문-출판 종사자들의 자기반성일 것이다. 그의 제언은 이 전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장인용 대표가 꼽은 교양 과학서 출판사
김영사, 까치, 사이언스북스, 생각의 나무, 지성사, 다른세상, 세종서적, 궁리, 양문, 바다, 지호, 전파과학사, 범양사

장인용 대표가 꼽은 국내 과학기술 방면의 대중성 있는 필자
장회익, 김제완, 김명자, 송상용, 박성래, 최재천, 권오길, 이면우, 이재열, 이인식, 임경순, 정재승

과학기술서의 번역가
김명자, 이덕환, 홍욱희, 과학세대(김동광), 이충호, 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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