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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전시_日本 동경현대미술관 외 '근대일본의 회화전'
해외전시_日本 동경현대미술관 외 '근대일본의 회화전'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6.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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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연스러운 표정에 깃든 독특한 분위기

이번 근대 일본의 회화전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닌다. 미술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지 1백20년. 이미 만들어진 틀 안을 채우기에 여념 없었던 일본의 근대회화가 서양흉내내기라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이를 벗어나려했던 현대미술조차 서구라는 상대를 보고 달려가는 건 여전한 듯하다. 일본 회화사에선 일본화조차 양화와 대립된 구성의 발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본 전시가 잘 구성된 것이라고 하기 전에 이런 전시를 기획했다는 것 자체가 여태까지 일본 미술계가 지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한 방편으로 보인다. 서구의 잣대로 자신의 키를 재온 일본의 근대사 1백년이며, 또한 한국의 근대회화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나라이기에 그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 전시는 한국 미술계도 지켜봐야할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번 전시의 취지는 메이지시기(1868~1912)와 다이쇼시대(1912~1926), 쇼와시기(1926~1989)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미술이 회화에 중점을 두고 유화기법과 조각개념을 도입하는 과정, 전통적인 서화에서 회화가 독립되는 부분, 박람회나 미술관이 건립되는 과정, 화단의 성립이 과감히 서구화에 발맞추려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오늘날 국제화라는 흐름 앞에서 미술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모색하려는 게 이번 전시의 의의다. 근대 이후의 회화사를 재구축하는 건 여태껏 큰 역할을 해 온 미의식의 변환을 꾀하고자 함이다.

일본의 근대회화사를 재조명 하려는 이런 시도는 동경도 현대미술관, 동경 예술대학 대학미술관, 세종미술관이라는 서로 다른 역사와 성격을 가진 세 개 미술관의 공동 기획으로 마련됐다. 이들 미술관이 메이지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 전후에 걸쳐 소장한 방대한 컬렉션을 선별해, 일본 각지에서 올라온 명작들과 함께 동경 예술대학 대학미술관과 동경도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19세기 말부터 1백년에 걸친 일본의 근대 회화 6백여 점이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1, 2부로 나눠져 있는데, 동경예술대학 대학미술관에서 전시되는 1부는 박람회 미술, 아카데미의 형성, 풍경론, 정물론으로 구성돼 있다. 동경도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는 2부는, 화가와 모델-모더니즘의 시각, 이상화와 대중성, 일상에의 시선-근대의 규범,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운동, 동양과 일본, 전쟁의 표현, 전쟁후의 시대, 리셋트: 1950~1960년대, 물과 관념, 일본의 팝, 회화의 세기로 이뤄졌다.

전시의 테마에서 볼 수 있듯이 메이지 시대부터 목조조각과 세공품등의 전시가 시작됐다. 근대의 전단계로 미술관이 없던 시대에 공예품이 박람회라는 곳을 통해 국제 시장에 얼굴을 내밀게 되면서 서구의 문물이 유입된다. 그런 면에서 공예품이나 목조조각이 전시장 머리를 장식하며 진행되는 것은 꽤 그럴듯했다. 비교적 적절한 규모의 전시가 역사, 테마별로 짜임새 있게 체계적으로 정리된 전시다.

동경도 현대미술관의 ‘화가와 모델-모더니즘의 시각’의 전시실에선 근대회화시기 서양화를 배우는 80여명의 젊은 작가 자화상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워 관람객을 뜨거운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는듯 했다. 아직 몸에 배지 않은 서양의 유화기법에 의해 그려진 자화상들은 그려진 물질의 기법이나 색채가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개개인의 근대를 향한 열정이 전해지는 듯했다. 작가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근대화라는 커다란 파도앞에서 그 물결에 삼킴을 당할지, 멋지게 파도를 탈지 알 순 없지만 그 곳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 80여명의 작가들 속에서 내 눈을 멈추게 한 것은 고의동의 푸른색 한복차림의 자화상이다. 근대 회화라는 새로운 표현방법과 얽매인 식민지인으로서 자신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는지 그의 심경을 헤아려 보려 그 앞에 머물렀다. 개화된 서양식의 옷차림도 아닌, 반듯이 한복을 차려입고 거울 앞에 마주 앉은 본인의 모습을 서양의 기호에 맞춰 그려나가는 모습이 근대 일본과 한국의 모습이리라. 거기서 보여지는 옷차림이나 꽉 다문 입매에서 이야기 다하지 못한 근대를 향한 그의 강한 자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사고에 자신을 표현한 것들이 서양의 것을 빌려온 측면에서만 평가하기보다 그 안에 깃든 작가의 자의식과 그 시대의 새로운 물결에 대한 고민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작가로서의 동료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80여명의 자화상은 어설픈 기법과 서양화 기법에서 벗어나는 묘함과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표정들을 보여주며 서양의 작가들에게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 맛을 서양의 작품에선 볼 수 없었다.

배상순 / 작가, 일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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