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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출판 70년의 역사,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73년사』
대학출판 70년의 역사,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73년사』
  • 조준태
  • 승인 2021.02.0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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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수로 오래된 출판사가 사라지는가 하면, 사소한 계기로 새 출판사가 탄생하기도 한다. 고착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다양한 임프린트로 출판 폭을 넓히기도 한다.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저 하늘 별처럼 무수한 출판사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73년사』는 그래서 더 눈길을 끈다. 

70여 년간 회사를 유지하는 것은 어느 업종이든 어렵겠지만 출판은 특히 더 그렇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내용과 더불어 형식까지도 모두 바꿔야 하는 까닭이다. 1947년에 창설돼 인쇄공장, 전산조판을 거쳐 전자책을 출판하기까지 서울대 출판문화원(이하 출판문화원)의 여정이 이 책에 담겼다.

1948년, 출판문화원은 『신세기의 원자세력』을 펴낸다. 이 책은 출판문화원이 처음으로 발행한 책일 뿐 아니라 국내 대학출판부가 펴낸 첫 책이다. 원자력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힌 이 책은 당시의 원자무기에 대한 무지와 그로부터 비롯된 공포를 보여준다. 같은 시기 ‘서울대학신문사출판부’에서 펴낸 『사회주의정당사론』에서도 그때의 분위기가 읽힌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사회주의정당의 역사를 서술한 이 책은 그 시기의 진보적 정치관을 드러낸다.

 

컴퓨터 조판 도입부터 전자책 출판까지

1962년 인쇄공장을 준공한 출판문화원은 본격적인 출판에 돌입한다. 이후 다양한 연구서적과 논문서, 대학 교재 등을 펴내면서 당시 대학출판계의 학술서 출판을 대표한다. 관악캠퍼스로의 이전도 함께한 출판문화원은 1983년 컴퓨터 조판 방식을 도입한다. 조판(組版)은 본디 활자를 하나하나 배치해 인쇄판을 짜던 일이었다. 출판문화원은 대학출판부 중 처음으로 “문선에서 조판까지 타이핑 하나로 단순화”하는 전산조판기를 도입했다.

다양한 책을 펴내면서 역량을 키운 출판문화원은 1976년, 기획출판에 도전한다. ‘한국문화연구총서’를 비롯해 ‘대학고전총서’, ‘사회과학총서’와 ‘교육학총서’, ‘문학비평총서’ 등 관련 연구소와 연계해 능동적으로 출판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1998년 10월, 출판문화원은 발간 도서 1천 종을 돌파하게 된다. 이후 디자인을 개선하고 신사옥으로 이전하는 등 시대를 따라잡기 위해 다각도로 변화를 추구한다.

2013년에는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사와 콘텐츠 제휴를 맺으며 전자책 시장에 진출했다. 2015년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재, 『사랑해요 한국어』를 펴내며 한류에 발맞췄다. 2020년에는 대중교양서 브랜드 ‘스누북스’를 선보였다. 현재 출판문화원은 서울대 내 출판사 역할뿐만 아니라 학술기관이자 문화기관으로서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인문학 공개강좌와 직원 해외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대학출판을 이끈 고집과 유연함

출판문화원의 73년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출판이 겪은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50년대를 여실히 드러내는 원자력과 사회주의, 70년대 임금 상승을 외친 인쇄공들의 파업, 컴퓨터 조판과 함께 80년대에 사라진 문선계 직원 등 출판문화원으로 상징되는 한국 출판의 역사가 이 책에 담겼다. 

면면마다 실린 사진 사료도 책의 생동감을 살리는 데 한몫한다. 이제는 책에서 사라진 인지가 붙은 50년대 판권지나 발간 계획서, 출판문화원을 소개하는 당시의 신문 기사에선 당대의 풍경을 찾아볼 수 있다. 전자 조판이 도입되기 전 원고지에 육필로 쓰인 원고나 교정지, 노트에 그린 표지 시안과 본문 레이아웃은 디지털 세대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 권 한 권 만들어진 책은 차례로 꽂혀 문화를 이룬다. 결국 출판은 문화라는 서가를 어떤 책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과정이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직하게 학술서를 채워온 출판문화원의 고민이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73년사』에 오롯이 담겼다. 대학출판과 학술출판을 이끈 고집과 유연함을 확인할 수 있다.

조준태 기자 ai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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