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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도시를 재생산하고 싶다면 ‘산업가부장제’부터 극복해야”
양승훈 “도시를 재생산하고 싶다면 ‘산업가부장제’부터 극복해야”
  • 박강수
  • 승인 2021.02.0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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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쓴 양승훈 경남대 교수

 

“거제는 순전히 국가와 국내 대자본의 힘으로 조성됐다.”(『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41쪽)

70년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터를 잡아 산업을 일으켰고 외지의 노동력이 유입돼 도시를 이뤘다. ‘조선소 두 개로 먹고 사는’ 산업도시의 탄생이다. 이후 거제 시민 중 조선소에서 일하는 비율은 한때 50%를 넘겼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곧 거제의 위기였고 산업정책의 실패는 곧 거제의 실패였다. 위기와 실패가 겹친 2015년 조선업 구조조정과 ‘대우조선 공적자금 지원’으로 거제의 악몽은 가시화된다. “지역민 모두가 산업을 매개로 ‘어우러졌던’ 삶”이 실은 “봉급을 따박따박 지급하는 조선소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다”(269쪽)는 사실이 드러났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과)는 2011년부터 2016년 사이에 대우조선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 거제를 관찰할 수 있었다. 기업과 조직 문화에 대한 사회학도의 호기심, 공부를 잠깐 쉬고 학비를 벌어보자는 결단, 대우조선 합격과 거제 발령이라는 우연이 빚어낸 결과였다. 연고도 없이 내려간 낯선 땅에서 5년을 보내고 양 교수는 구조조정의 절정기에 회사를 나왔다. 이후 당시에 보고 겪은 것을 기록과 분석으로 엮어 2019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오월의봄)를 썼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상한국사회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는 애초에 배제와 포섭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였다.”(114쪽) 책의 1부를 매듭짓는 결론이다. 산업을 바탕으로 끈끈하게 묶어낸 ‘중공업 가족’이라는 서사는 사실 “하청 노동자를 배제하고 여성의 공간을 결혼 생활의 영역에 한정 지어온” 불완전한 꿈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양 교수의 관심은 손가락질할 대상을 찾기보다 맥락과 원인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고 대안을 도모하는 데 있다. 사태의 겉모습만 보고 “귀족 노동자 운운하며 이 모든 책임을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너무도 불합리한 일”(307쪽)이라는 문제의식이 책을 쓰는 동력이 됐다. 후속작으로 산업도시 울산에 관한 책을 쓰다가 서울에 올라온 그를 지난달 29일 합정동 카페에서 만났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과). 학부에는 정치학을, 대학원에서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했고 대우조선에서 5년간 회사 생활을 했다. 이 독특한 이력이 '르포 같은 사회학술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로 이어졌다.

 

△ 시간이 꽤 지났다. 에필로그에도 ‘거제와 한국조선업의 위기는 일단락된 상황’이라고 썼다. 상반기 내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가 마무리될 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 상황을 진단한다면.

“두 가지를 분리해야 할 것 같다. 산업을 보자면 조선업은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 2018년부터 나아지고 있었는데 전염병이 퍼졌다. 배는 사람 만나서 대면으로 협상하는 과정이 많은데 그게 안 되니까 발주가 많이 늦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괜찮을 거다. 중국은 잘 못하고 한국은 잘 하는 LNG 선박을 수주할 수 있으니. 다만 2000년대 중반기 같은 초호황은 이제 없다. 중국 경기가 폭발하고 해양플랜트도 잘 되고 유조선, 컨테이너선 발주가 쏟아지던 그런 호황은 없다. 축소지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지가 목표인 그런 산업이 됐다. 산업의 성숙기가 온 거다.

문제는 거제다. 요즘 울산 연구도 하고 있는데 2015년이 분기점이다. 부산, 울산, 경남 인구가 줄기 시작한 해다. 또 조선업 구조조정이 정점이었다. 일자리가 없어서 사람이 줄고, 출산율이 떨어지고, 이런 상황이 전혀 개선이 안 됐다. 호황의 핵심이던 해양플랜트(해양 천연자원 시추 구조물)는 이제 기름값이 낮아 발주가 안 난다. 조선소 노동자들이 늘었던 이유는 해양플랜트 때문이었다. 자동화도 안 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으니. 추산하자면 15년 이후로 5~6만 명 정도는 일자리를 잃었다고 봐야 한다. 거제에 있는 두 조선소에서만. 대부분 사내 하청, 혹은 ‘물량팀’이라고 부르는 초단기 노동자들이다. 그 자리를 복구하기는 쉽지 않다.”

 

△ 해양플랜트는 완전히 저물었다고 봐야 하나.

“기름이 너무 싸다. 중동에서 캐면 배럴당 한 20불, 셰일오일이 요즘 25~30불인데 바다에서 캐면 70불 정도 된다. 유가는 40~50불 언저리인데. 그러니 (바다에서) 캘 이유가 없다. 유가가 폭등해 호황이 오는 일도 없을 것이고, 유가가 오른다고 해도 기름보다는 전기나 수소로 수요가 몰릴 것이다.”

 

△ 산업도시 거제를 혁신하는 일은 지역균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서울의 힘을 견제할 ‘메가 시티’를 동남권 지역에 조성해 플랫폼을 분산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엊그제도 경상남도 메가시티추진단 관련 회의에 도정자문위원으로 들어갔다 왔다. 부∙울∙경 동남권을 잘 엮어내는 메가시티 구상에는 찬성하는 편이다. 거제라는 도시를 자족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렵다. 갑자기 서비스 산업 유치한다고 서울이나 부산처럼 되지 않는다. 서비스, 공공부문, 대학 캠퍼스는 부산에 두되 연구개발단지는 그 접점인 양산, 김해에 유치하고 연결망 강화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인프라 투자를 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수도권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 그리고 그 많은 예산을 거기에 쏟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 여기에 대한 논리는 조금 더 보강될 필요가 있다. 행정통합에 대한 법률은 통과가 됐지만 아직은 구상하는 단계다.”

 

 

△ 산업도시 재생산을 위해 가장 시급한 조치가 “충분한 여성 엔지니어 채용”이라고 썼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에 울산 책에는 이렇게 썼다. ‘부∙울∙경의 산업 모델은 산업가부장제다.’ 산업구조, 일자리, 성 역할을 강제하는 시스템이다. 굉장히 견고하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가 하고 있듯 연봉을 많이 줘서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했다고 치자. 그 젊은 남성 엔지니어들한테 ‘왜 주말마다 서울로 가냐’ 물어보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두 번째는 ‘결혼이 하고 싶다.’ 여자친구가 거제로 안 내려온다는 거다. 다시 그 여성들에게 물어보면 ‘거제나 울산으로 내려온다는 것은 곧 경력단절’이라고 한다. 경력단절 맞다. 이 사람들이 갈 만한 산업 영역이 없다.

엔지니어 일자리 중에도 여성 일자리가 별로 없다. 생산직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무직, 기술직(엔지니어) 포지션에서 여성을 안 뽑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최소한 대학에서 뽑는 성비만큼은 뽑아야 한다. 공과대학에서 30% 이상 뽑는데 여기는 10% 이내로 뽑으니까. 이런 불균형을 바꾸는 게 생각보다 큰 기여일 수 있다. 흔히 ‘청년에게 일자리, 여성에게 정주여건’이라고 하는데 저는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일자리, 청년에게 정주여건’이다. 이 도시는 거꾸로 돼 있다. 청년은 오매불망 바라는데 ‘젠더’라는 필터가 없으면 해석도 안 되고 문제도 안 풀린다.”

 

△ ‘산업가부장제’라는 표현은 책에 나왔던 ‘남성생계부양모델’보다 강화된 표현인가.

“남성생계부양자경제가 산업가부장제의 하부구조다(웃음). 마르크스식으로 얘기하면 그게 토대인 거고 상부구조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인 거다. ‘여자애들은 그냥 서무나 하다가 시집가면 돼’, ‘남자 기 죽이면 안 돼’, 이런 생각이 팽배하다. 실제 기 죽이면 안 된다. 그렇게 벌어 오는데. 그런 경제고 그런 사회다.”

 

△ 울산에 대한 책은 어떤 내용인가.

“이번에는 실제 (직장을) 다니면서 쓴 책은 아니다.  먹물이 돼 가지고(웃음), 더 이론적이다. 1년 정도 매주 하루 이틀 이상 울산에 다니면서 인터뷰도 하고 공장도 보고 젊은 친구들 노는 데도 좀 가고 그렇게 필드 작업을 했다.

울산이야말로 국가가 총력전으로 지은 도시다. 중공업 산업 도시의 ‘프로토타입’이다. 창원, 거제는 울산의 후속작이다. 시제품이 폐기 안 되고 살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도시를 보는 일이 전체 궤적을 파악하는 데 의미가 있다.

‘산업가부장제’는 울산을 설명하기 위해 쓰는 단어다. 부∙울∙경이 대동소이하긴 하지만 그래도 구별이 된다. 부산, 창원은 여성이 일하는 도시다. 남성생계부양모델이라고 할 수 없다. 반면 거제나 울산은 철옹성이다. 그런 차이를 보는 거다.”

 

△ ‘가짜뉴스 퇴치’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를 운영하는 ‘새로운소통연구소’에도 참여하고 있다.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

“친구들이다. 미디어업 종사자, 전직 보좌관, 글쟁이, 전업 유튜버… 별 이상한 인간들이 다 모여 있다. 저는 공부해야 하는데 단톡방이 늘 시끄럽다(웃음). 2019년에 유튜브 가짜뉴스가 굉장히 화두였다. (뛰어들어서) ‘똥 묻히고 싸울 거’라고 하더라. ‘알아서 해라’ 했는데 ‘전화하면 잘 받으라’라더니 그대로 영상에 참여시킨 게 헬마우스 채널이다.

하다 보니 느껴지는 게 있었다. 이제 다른 종류의 정치, 혹은 다른 종류의 사회적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만든 게 새로운소통연구소다. 헬마우스가 비판에 초점을 둔 ‘뚝배기 깨기’ 공격 중심이라면 새로운소통연구소는 다시 대의를 만들고, 대표성의 정치에 대한 메시지를 고민하고, 다른 종류의 분석, 해석, 아젠다를 생산하고자 한다. 아직 시작 단계다.”

 

 

△ 새로운소통연구소에서 공저한 책(『추월의 시대』, 메디치)도 나왔다.

“『추월의 시대』에서는 ‘논의의 지점’이 되는 축을 옮겨오고 싶었다. 우리가 지금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민주주의가 아직 공고하지 않았을 때, 산업화가 미진했을 때 개도국 단계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에 가깝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겪는 모든 현상을 다 겪고 있다. 여기에 압축성장을 통해 만들어진 조직문화, 과로 등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걸 그냥 ‘헬조선’, ‘우리는 아직도 선진국이 안 됐어’ 이렇게 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 논의의 지형을 옮긴다는 건?

“예를 들어 공정성 문제를 보면, 대다수 취업전선에서는 공채가 다 없어지는 게 좋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중견기업 가고, 중견기업에서 스타트업 거쳤다가 대기업도 가고, 이런 게 건강한 노동시장 모델이고 한국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자꾸 게임을 공정으로 몰고 가면 다 고시 봐야 될 것 같고, 공무원 해야 할 것 같고, 아니면 죽을 것 같고, 불필요한 공포와 분노를 만들어 싸우게 된다. 그런 지평을 바꾸고 싶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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