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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남성작가편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남성작가편
  • 교수신문
  • 승인 2021.02.0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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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지음 | 추수밭 | 352쪽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서평가 ‘로쟈’로 이름을 알린 이현우가 한국문학을 주제로 진행한 강의를 묶어 펴낸 책이다. 그간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을 가지고 다양한 강의를 펼쳐온 저자가 세계문학의 흐름에 바탕을 두고 한국문학을 읽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2020년 초에 발간된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을 개정한 이 책은 남성작가 12인의 대표작들을 살펴본다. 초판에서 구성되었던 10인의 작가에서 한 명을 덜어내고 비교적 최근의 흐름까지 조망할 수 있게끔 세 명의 작가(이문구, 김원일, 김훈)를 추가했으며 결과적으로 40퍼센트 정도 내용이 수정됐다. 이 책은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여성작가 편과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동시에 저자에게는 그간 진행해온 현대문학사 강의를 총결산한다는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이 될 수 있는가?”

세계문학 해설가 로쟈와 읽는 남성작가와 여성작가의 한국문학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한 후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아울러 한국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가 매번 화제가 되면서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으로 알리기 위한 번역 작업이 중요해졌다. 이처럼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에 한국문학이 목을 매고 있는 실정이지만, 정작 우리에게 세계문학의 ‘필독서’로 손꼽힐 만한 작품이 있는지를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지금도 국내에서는 수백 종의 작품이 쏟아지고 수십 가지 문학상이 수여되고 있지만, 세계문학이라는 큰 맥락 안에서 한국문학의 의의를 찾거나 각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일은 여전히 미진한 상태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서평가 ‘로쟈’로 이름을 알린 이현우가 한국문학을 주제로 진행한 강의를 묶어 펴낸 책이다. 그간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을 가지고 다양한 강의를 펼쳐온 저자가 세계문학의 흐름에 바탕을 두고 한국문학을 읽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2020년 초에 발간된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을 개정한 이 책은 현대의 문을 열었던 다양한 한국소설을 남성작가 12인과 여성작가 10인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특히 남성작가 편은 초판에서 구성되었던 10인의 작가에서 1950년대 손창섭을 덜어내고 비교적 최근의 흐름까지 조망할 수 있게끔 세 명의 작가(이문구, 김원일, 김훈)를 추가했으며 결과적으로 40퍼센트 정도 내용이 수정됐다. 단순히 각 작품의 내용 소개를 넘어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들여다보는 이 책은 한국소설이 도달했거나 도달하지 못했던 현대문학의 길을 제시하며 그 성과와 한계를 면밀하게 짚어본다.

 

1960년대 최인훈부터 1970년대 황석영까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한국인을 탐구하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대략 10년을 주기로 형성된 한국문학의 흐름을 추적하며 시대의 변화를 포착해온 문학사조의 양상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쁜 흐름 속에서 소설가들은 효율과 체계, 합리성을 폭력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한국인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최인훈의 『광장』과 이병주의 『관부연락선』은 좌우 이념의 대립 속에 놓인 인물들을 내세우며 어떤 체제에도 포섭되지 않는 개별적 인간의 형상을 탐구했다. 아울러 근대화를 맞이하면서 변화하는 인간상을 사회 계층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여준 소설로는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이 있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주인공이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멈추거나 물러섰던 중?단편소설과 달리, 『관부연락선』과 같이 주인공이 돌파해나가는 과정을 규모 있게 묘사한 장편소설이야말로 현대문학의 핵심임을 지적한다.

 

1970년대 이청준부터 1980년대 김원일까지

근대화 과정을 겪는 한국 사회 전체의 모습을 조망하다

 

한국문학은 전쟁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근대화 과정에서 어떤 것이 파괴되고 또 새롭게 재건되었는지 보여주며 사회 전체의 모습을 조망하고자 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197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를 소록도 한센병 환자촌의 실화를 바탕으로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에 일어나는 첨예한 갈등을 묘사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은 도시화로 인해 소외되고 스러져갈 수밖에 없는 농촌공동체의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려냈다. 또한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이념이 아닌 가족 중심의 피해 서사로 그려낸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 있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이들 각 작품의 주제에 대응하는 세계문학의 흐름까지 보여주며 한국소설이 ‘비판적 리얼리즘’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한계까지 지적한다.

 

1980년대 이문열에서 2000년대 김훈까지

개인의 삶의 과제를 문학적 주제로 승화시키다

 

한국소설은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짚는 것을 넘어 ‘개인’이 겪는 삶의 문제에 주목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1980년대부터 등장한 작품들은 작가의 개인적 삶이나 세계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형식을 많이 띠었다. 방황을 거쳐 고시 공부를 하고 대학 생활을 하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펼쳐낸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예술과 지식에 대한 ‘교양’을 함양함으로써 중산층으로 도약하려는 독자들의 열망을 자극했다. 이인성은 『낯선 시간 속으로』를 통해 막강한 아버지 앞에 주눅 든 아들의 형상을 난해하지만 개성 있는 문체로 그려내며 한국소설에서 모더니즘의 길을 개척했다. 이승우의 『생의 이면』은 작가가 자신의 삶에 비추어 오이디푸스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공감과 치료의 문학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해외의 독자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역사적 인물 이순신에게 근대인의 ‘내면성’을 부여하고 작가 자신의 분신으로서 목소리를 내게 하며 한국소설의 흐름 가운데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한국문학에서 ‘현대’는 완성되었는가?”

문학의 본질로 돌아가 다시 묻는 한국소설의 의미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남성작가 편은 각 작품의 세계관과 그에 조응한 시대적 흐름을 짚어내며 기존 문학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색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가령 최인훈의 『광장』을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과 함께 읽어나가며 소설에서 제기된 문제의식(광장 대 밀실의 이분법)에 대한 해답을 철학에서 얻기도 한다. 또한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인 ‘주체와 아버지(대타자)와의 관계’에 주목하며 한국문학에서 과연 아버지 권력을 대체할 수 있는 현대적인 주체가 완성되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저자는 장편소설이 미흡하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취약한 한국문학의 한계가 바로 이와 같은 ‘미약한 주체 형성’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 책은 신화나 서사시, 고전문학과 구분되는 현대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당대의 역사성’을 제시한다. 현대소설은 ‘근대의 발명품’으로서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천착하고 파고드는 문학이지 단순히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소설을 하나의 ‘장르’ 내지는 ‘이야기’로만 소비해왔던 우리에게 이 책은 세계문학과 견주어 날카로운 시각으로 한국문학을 읽기 위한 하나의 독법을 제시한다. 현대인의 삶과 역사에 비추어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정교하게 추적하는 이 책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그에 걸맞은 위대한 작품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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